만조를 기다리며 위픽
조예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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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信念), 굳게 믿는 마음.

신념의 힘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언제나 입을 떡 벌어지는 이야기를 써놓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유유히 다음 세계로 떠나는 조예은 작가님을.. 매우 애정 한다. 저자의 작품을 거의 다 읽었다. <스노볼 드라이브>, <트로피컬 나이트>,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칵테일, 러브 ,좀비>... 나는 아직 스노볼 디스토피아에 빠져있는데 저자는 이미 섬찟하고 경쾌한 호러 스릴러의 세계로 넘어가있다. 후다닥 달려가 조예은표 할로윈을 한껏 즐기고 나왔더니 이번에는 섬이다. 섬 한가운데 우뚝 솟은 사이비 종교 '영산교'를 통해 미신과 기도에 의지해서라도 재회하고 싶은 소망을 그린다.

주인공인 정해가 소꿉친구 우영이 만조의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소식을 받으며 시작되는 소설은 짧지만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우영의 죽음 속에 숨겨진 영산교의 비밀을 파헤치는 정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함께 휘몰아치며 영산(山)의 꼭대기에 올라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종교건 미신이건, 혼란한 세상 속에서 자기만의 마음 기댈 곳이 있다는 건 꽤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기대겠다고 타인의 자리를 빼앗아서는 안되지. 모태신앙으로 자라 스무 살 전까지는 매주 교회 가는 게 당연했던 사람으로서, 어떤 종교 집단에도 절대선은 존재할 수 없음을 감히 단언한다. 아무리 선의로 모였다고 해도 결국 인간이다. 그게 인간이다. 우영의 진심이, 신념이 고작 인간 때문에 그렇게 망가졌다는 게 씁쓸하다. 하지만, 아무리 우영이 진심으로 믿었다고 하지만. 내가 정해였다면? 사이비 종교에 깊은 신념을 가진 친구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최근 사이비 관련 이슈들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서 더욱 마음이 복잡하다. 썰물에 갯벌이 드러나듯, 만조의 검은 바다가 감추고 있는 모든 것들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정해가 우영을 향한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정해에게 우영은 그저 우영, 사랑하는 우영,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해주는 우영. 그런 관계도 있는 거다.


나는 혼자잖아. 영산에 뿌려진다는 건 누군가 나를 그리워해야 가능한 일이야.

누군가 나를, 죽은 나를 보고싶어 해야 가능한 거라고. 그런데 난 아무도 없잖아.

만조를 기다리며, 조예은 (72P.)

우영은 영산에 뿌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우영을, 죽은 우영을 보고 싶어 할 테니까.

그리고 모든 비밀을 안은 채 뻔뻔하게 잘 지낼 테니까.


🔖 #책속의한줄

(48p.) 우영은 정해가 하자고 하는 모든 것에 좋다고 했다. 조개껍데기를 줍자고 해도 좋다 했고, 주운 조개껍데기로 팔찌와 목걸이를 만들자 해도 좋다 했다. 만든 목걸이를 머리에 얹고 춤을 추라고 해도 좋다 했다. 우영은 정해의 모든 걸 좋다고 했다. 우영과 노는 동안에는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55p.) 물속에서 갈퀴처럼 마른 팔이 튀어나와 암석을 더듬었다. 정해는 드디어 심해의 사신이 자신을 데리러 왔다고 생각했다. 겁에 질린 채 암석을 타고 올라 구멍으로 발을 딛는 형체를 주시했다. 검은 바닷물 속에서 나타난 유령은 정해를 향해 태연히 말했다. "찾으러 왔어."

(72p.) 나는 혼자잖아. 영산에 뿌려진다는 건 누군가 나를 그리워해야 가능한 일이야. 누군가 나를, 죽은 나를 보고 싶어 해야 가능한 거라고. 그런데 난 아무도 없잖아.

(77p.) 그 사람들을 속이는 게 미안하진 않아? 우영은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속이다니, 뭘?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준다는 게 속이는 거지 뭐야."

우영의 반응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난 그 사람들 속인 적 없어."

그리고 정해가 지금껏 보았던 얼굴 중 가장 차가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며 말했다.

"넌 단 한 번도 내 말을 진심으로 믿은 적이 없구나."

고시원을 나간 우영은 그날 이후로 연락을 하지도, 받지도 않았다.

(131p.) 혹시라도 섬을 나간 후의 정해를 상상하신다면, 미아도의 비밀을 간직한 채 현실로 돌아가 뻔뻔하게 잘 지내는 모습을 떠올려주시길 바랍니다.


#위즈덤하우스#위클리픽션

‘단 한 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

위즈덤하우스는 2022년 11월부터 단편소설 연재 프로젝트 ‘위클리 픽션’을 통해 오늘 한국문학의 가장 다양한 모습, 가장 새로운 이야기를 일주일에 한 편씩 소개하고 있다. 연재는 매주 수요일 위즈덤하우스 홈페이지와 뉴스레터 ‘위픽’을 통해 공개된다. 구병모 작가의 〈파쇄〉를 시작으로 1년 동안 50편의 이야기가 독자를 찾아간다. 위픽 시리즈는 이렇게 연재를 마친 소설들을 순차적으로 출간한다. 3월 8일 첫 5종을 선보이고, 이후 매월 둘째 수요일에 4종씩 출간하며 1년 동안 50가지 이야기 축제를 펼쳐 보일 예정이다. 이때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한데 묶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단 한 편’의 단편만으로 책을 구성하는 이례적인 시도를 통해 독자들에게 한 편 한 편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위픽은 소재나 형식 등 그 어떤 기준과 구분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직 ‘단 한 편의 이야기’라는 완결성에 주목한다. 소설가뿐만 아니라 논픽션 작가, 시인, 청소년문학 작가 등 다양한 작가들의 소설을 통해 장르와 경계를 허물며 이야기의 가능성과 재미를 확장한다.

또한 책 속에는 특별한 선물이 들어 있다. 소설 한 편 전체를 한 장의 포스터에 담은 부록 ‘한 장의 소설’이다. 한 장의 소설은 독자들에게 이야기 한 편을 새롭게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 작은 조각이 당신의 세계를 넓혀줄 새로운 한 조각이 되기를,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모여 당신의 이야기가 되기를,

당신의 가슴에 깊이 새겨질 한 조각의 문학이 되기를 꿈꿉니다.

(출처: 위즈덤하우스)

처음 <파쇄>가 나왔을 때부터 너무 기대했던 시리즈..

이런 새로운 시도들 너무 좋구요 요즘 영상도 쇼츠, 숏폼이 유행하는 트렌드에 빠르게 발 맞춘건가? 싶기도 하구...

단편으로 완결되었지만 장편으로 뒷얘기가 더 읽고 싶다! 혼자 궁금해하기도 하구....

무엇보다 경기도인에게 '한 장의 소설'은 축복이다.. 어깨 건강도 지켜주는 위즈덤(♥)

6월 신간으로 나온 파스텔톤 표지 컬러 작품들도 너무 궁금하다-! 기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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