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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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딱 이맘 때 즈음 팟캐스트 #여둘톡 을 통해 추천받았다. 두 작가님의 열정적인 리뷰에 홀려 장바구니에 넣어뒀지만.. (벌써 1년이 지났다니) 그 사이 늘어난 리뷰들에는 백이면 백 다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다는 말이 있었다. 이걸 읽고 울지 않으면 싸이코패스라는 과격한 감탄이 난무하기도😂

세상에 우리 엄마만큼 내 기분을 있는 대로 잡쳐놓을 수 있는 신랄한 사람도 없지만, 또 우리 엄마만큼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피터조차도 그렇게는 못 했다. 나는 언제나 엄마가 하는 말을 마음속 깊이 믿었다. 내 머리가 조금이라도 헝클어졌거나 화장이 진하게 됐을 때 내게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줄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H마트에서 울다, 미셸자우너

그리고 나는.. 다행히 싸이코패스가 아니였음을… 지하철에서 읽는 내내 눈물이 자꾸 차올라 이를 꽉 깨무느라 입 안이 얼얼할 정도였다. 언제나 엄마 얘기에는 늘 속절없이 무너지고야 만다. 늘 엄마에게 하는 농담(반 진심 반)이 있다. 엄마가 없으면 나도 없을 거라고, 엄마는 내 목숨까지 두 사람 몫을 산다고 생각하면서 건강 잘 챙겨야 한다고. 내가 속해온 모든 집단의 사람들 이름을 다 알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내 안의 모-든 이야기를 엄마와 나눴다. 아주 작은 시시한 것부터 너무 크고 무거운 것들까지도 온전히 필터 없이 전할 수 있는 상대는 엄마가 유일했고, 지금도 여전히 유일하다.

내 기꺼운 약점인 엄마, 나는 저자처럼 씩씩하게 엄마가 없는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미국에서 아시아 식재료를 파는 H마트의 H는 ‘한아름’의 줄임말이다. ‘두 팔로 감싸 안을 만큼의 크기’라는 뜻이다. 엄마를 잃고 찾아간 그곳에서, 저자는 엄마가 미각에 강렬하게 새긴 맛을 되찾으며 위안을 얻고 회복해나간다. 저자의 ‘솔직함’은 이 에세이의 가장 큰 무기이다. 이런 것까지 다 얘기해도 괜찮은 건가..? 싶은고백이 이어진다. 가감 없이 자신의 내면을, 사건을, 방황을 드러내는 저자를 보며 이런 사람이 하는 예술이라면 무엇이든 한번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전에 한 교수님께서 해주셨던 얘기도 떠올랐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안에 가득 찬 무언가를 꺼내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낼 수 없다고, 그런 사람들이 예술을 하는 거라고. 예술로 승화시켜 스스로를 살게 하는 거라고.

지나온 상실 속에서 찾은 엄마의 사랑과 정체성이 저자를 한아름 안아주어 살게 하길 바란다.

이건 저자를 향한 응원이자 동시에 또 언젠가의 같은 상실을 겪을 나를 향한 응원이다.


기독교는 이모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였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종교가 그 순간에 이모 곁에 있어줘서 감사했다.

H마트에서 울다, 미셸자우너

같은 지구 다른 세계를 사는 우리에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 ‘가능한 소통의 형태’는 참으로 소중하다. 꼭 말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데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저자가 겪은 것처럼 종교가 그러하고, 내가 겪어온 바로는 음악·춤·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러하다. 가열찬 n극화로 인해 보고, 듣고, 입고, 먹고, 말하는 모든 것에 접점이 전혀 없어도 이상하지 않은 때가 되었다. 따라서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지구 안에서 숨 쉬고 있긴 하지만, 개개인의 세계는 완전히 다른 것 같단 생각을 종종 한다. 분명 같은 언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도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씁쓸하지만 나와 다른 세계임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모든 언어를 이해하고 싶다는 욕심은 감히 부리지 않기로 한다. 다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범주에 조금이라도 교집합이 있다면, 더 깊은 소통으로 이어질 궁리를 한다. 내 세계에만 갇혀 고독사 하는 일이 없도록. 기쁜 마음으로 서로 초대를 주고받으며 자주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다녀오길 소망한다.


🔖 #책속의한줄

*yes24 도서관 뷰어 기준 '%'

(122%) 세상에 우리 엄마만큼 내 기분을 있는 대로 잡쳐놓을 수 있는 신랄한 사람도 없지만, 또 우 리 엄마만큼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피터조차도 그렇게는 못 했다. 나는 언제나 엄마가 하는 말을 마음속 깊이 믿었다. 내 머리가 조금이라도 헝클어졌거나 화장이 진하게 됐을 때 내게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줄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엄마가 고쳐주기를 계속 기다렸지만 엄마는 아무 지적도 하지 않았다. 엄마 는 약간 멍한 표정으로 웃고만 있었다. 어쩌면 약에 취해 제대로 분간을 못 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소한 비판이 더는 중요하지 않다고 내심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123%) 나는 사랑은 행위이고, 본능이고, 계획하지 않은 순간들과 작은 몸짓들이 불러일으키는 반응이며,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36%) '사랑스럽다'는 말은 엄마가 굉장히 좋아하는 형용사였다. 엄마는 나를 딱 한 단어로만 표현 해야 한다면 '사랑스럽다'는 말을 고를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엄마에게는 그 단어가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열정을 아우르는 말처럼 느껴졌나보다. 그것은 엄마의 묘비명에 새겨 넣기에도 딱 알맞은 단어였다. 자애로운loving 엄마는 남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지만 사랑스러운lovely 엄마는 온전히 자신만의 매력을 지닌 사람이니까.

(138%) 기독교는 이모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였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종교가 그 순간에 이모 곁에 있어줘서 감사했다.

(146%) 우울처럼 슬픔도 가장 간단한 일조차 해내기 힘들게 했다. 우리는 멋진 경관에 무감각했고 무감동했으며 조용히 비참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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