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
하미나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자들이 이 글에서 여성을 우울하게 만든 정확한 원인과 이를 폭로하는 증언을 듣기를 바란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발견한 것은 그보다는 어떤 모순, 혼란, 복잡성, 양가성 등 이다. 나는 사람들이 명료해지기보다 함께 흔들리길 바란다.

연루되길 바란다. 선 긋고 피해자와 자신을 분리하는 대신 자신이 이미 선 안에 있던 존재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이것은 더 어려운 일이겠지만, 세상에 많은 좋은 것들이 그렇듯 더 보람찰 것이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하미나 (162p.)

문장뿐 아니라 페이지 자체가 너무 좋아서.. 적어둔 부분이 넘쳤다. 복잡하게 떠다니던 마음의 단어들이 도서를 통해 문장화됨을 느꼈다. 저자의 바람대로 기꺼이 함께 흔들리며, 깊이 연루되었다. 나 역시 선 안에 있는 존재임을.

저자는 자신의 고백과 주변 사람들과의 진솔한 인터뷰를 통해 이삼십대 여성 우울증을 입체감 있게 엮어낸다. 여성 우울증의 역사와 진단, 사회문화적 요인들을 통한 연구는 여성 우울증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만든다. 이 정의는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정리된 문장으로 읽음으로써 알고, 이해하고, 마침내 '넘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아가 강조되기보다 자아가 해체될 때, 그래서 애초에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될 때, 마음은 더 평온해진다.(113p.)는 저자의 통찰이 이를 설명한다. 나를 향한 몰두에서 벗어나 삶의 시작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된다.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사랑이 구원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여전히 사랑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을 받을 때가 아니라 줄 때,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 구원의 대상이 아닌, 구원의 주체가 될 때만이 사랑은 구원이 된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뿐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꼭 인간일 필요는 없다. 동물일 수도 있고, 글쓰기와 같은 행위일 수도 있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하미나 (185p.)

“사랑이 구원이 될 수 있다"라고 담담히 믿는 저자의 확신에 기대보려 한다. 삶은 자주 치사하고 못됐지만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살아가는 이들 옆에 자리하고 싶다. 각자의 삶을 구원하기 위해 '함께' 애쓴다면 그 무게가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 사랑의 대상을 확장시키는 과정도 즐겁다. 곳곳에 사랑을 쪼개어 넣어두고 자주 꺼내 닿으려 한다. 그리고 닿음을 통해 나도 사랑을 닮아가야지.


🔖 #책속의한줄

(113p.) DMN의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자아에 대한 감각과 인식이 강해지며 내면세계에 몰두하게 되는데, 그 활발해진 상태의 극단이 우울 중독 강박이다. ISD는 DVN의 활동을 저해함으로써 자아가 해체되는 느낌과 함께 억눌려 있던 뇌의 다양한 영역들을 일깨운다. LSD를 치료제로 쓸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 같은 연구 결과는 통찰을 준다.

우울은 그게 어떤 종류의 생각이든 나를 향한 몰두와 관련이 있다. 자아가 강조되기보다 자아가 해체될 때, 그래서 애초에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될 때, 마음은 더 평온해진다.

(131p.) 사람들은 낯선 행복보다는 익숙한 고통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162p.) 별일이 있었으되, 별일이 아니었음을 드러내기. 일이 벌어진 것은 나의 책임도 나의 잘못도 아니지만, 동시에 나의 인생 경로 어디쯤에서 분명 나를 취약하게 만든 원인이 있었으며, 그 원인 역시 스스로 가장 열심히 담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폭력의 증언자가 되는 것이 어떤 일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와 만나 내게 폭력의 역사를 증언해 준 여자들이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들이 외로워지지 않기를 바란다.

(170p.)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를 쭉 들려주던 지은은 내게 말했다.

"우울증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되면 그 이름에 매몰되는 것 같아 요. 우울증 증상에 저를 맞춰보게 되고요. 이제는 그런 거 다 없애버렸어요. 제 기분에 어떤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했어요. 우울증도 길어지니까 끝이 없네요. 매번 새롭게 알아가요. 사랑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고, 인생 전반을 다시 해석하고 또 다른 실마리를 찾게 돼요. 결국 제일 잘 알게 되는 건 나 자신이에요. 나란 사람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니까. 앞으로 남은 인생이 모두 그런 시간일 것 같아요."

(186p.) 사랑을 받는 일은, 사랑을 주는 이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학의 않거나 곁에서 사라지면 멈춰진다. 사랑을 주는 일은, 우리 마음 안에 타인을 향한 사랑이 남아 있는 한,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영원히 외로워지지 않는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 (2014, 마음산책)에서 신형철이 썼던 글을 인용하며 이번 장을 마무리하고 싶다.

<이제 여기서는 욕망과 사랑의 구조적 차이를 이렇게 요약해 보려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 계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너의 '있음'으로 나의 '없음'을 채울 수 있을 거라 믿고 격렬해지지만, 너의 있음'이 마침내 없어지면 나는 이제는 다른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 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이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304p.) 지현은 동물보호센터에서 봉사 활동을 한 것이 우울증에 대 처하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약물치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한 명의 개인으로서 성공적으로 사는 삶 말고, 시민으로서 공동체에 참여하면서 무언가를 지지하는 활동을 할 때 회복되는 것이 있다고 했다.


자기 삶의 저자인 여자는 웬만큼 다 미쳐 있다는 문장이 맴돈다. 미친 우리를 위해서 위로의 태도보다 연대의 자세를 보이고 싶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우리들이 기꺼이 자신을 구원하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