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속의한줄
(220p.) 사랑은 할머니를 울게 했다. 모욕이나 상처조차도 건드리지 못하는 마음을 건드렸다.
(259p.) 사진관에서 나온 그들은 거북이 해변으로 걸어갔다. 더운 날이었지만 바다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새비 아주머니는 모래사장에 풀썩 주저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다가 고무신과 버선을 벗고 치맛자락을 무릎까지 올린 뒤에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큰 파도가 밀려와 종아리까지 물이 닿자 새비 아주머니가 새된 소리를 지르며 큰소리로 웃었다. 새비 아주머니는 조금 더 깊은 곳까지 걸어갔다 파도가 들이치면 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모래사장으로 달려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할머니와 증조모와 엄마에게 손을 흔들면서 오래도록 바다에서 놀았다.
'새비아주머니는 그날 바다에서 놀았다.' 할머니는 그날의 일을 한 문장으로 기억했다. 새비 아주머니도 바다도, 놀다, 라는 말도 그날에 다 들어 있었다. 모두 할머니가 좋아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299p.) 내 어깨에 기댄 여자는 편안한 얼굴로 잠을 자고 있었다. 청명한 오후였다.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좋았다. 나는 내게 어깨를 빌려준 이름 모를 여자들을 떠올렸다. 그녀들에게도 어깨를 빌려준 여자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이렇게 정신을 놓고 자나, 조금이라도 편하게 자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 별것 아닌 듯한 그 마음이 떄로는 사람을 살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깨에 기대는 사람도,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도. 구름 사이로 햇빛이 한 자락 내려오듯이 내게도 다시 그런 마음이 내려왔다는 생각을 했고 안도했다.
(335p.) 김희자 박사에게 갈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가라고 했던 새비 아주머니의 말을 나는 종종 생각했다. 그 말은 단순히 물리적 거리만을 뜻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딸이 다른 차원으로 가기를 바랐던 마음이 있겠지. 본인이 느꼈던 현실의 중력이 더는 작용하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딸이 더 가벼워지고 더 자유로워지기를 바랐던 새비 아주머니의 마음을 나는 오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