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 프랑스 현대문학선 2 프랑스 현대문학선 2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지음 / 세계사 / 199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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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의 회상을 읽었다. 내가 읽은 독일어 번역본에는 Ich zaehmte die Woelfin이라는 제목이 추가되어 있다: 나는 암늑대를 길들였다... 하드리아누스가 길들인 암늑대는 로마이자, 유르스나르였다. 하드리아누스가 유르스나르가 된 건지, 유르스나르가 하드리아누스가 된 건지. 글을 읽으며, 계속해서 여성의 음성을 들었다. 유려한 문체가 어떨 때엔 거부감도 주었다. 유르스나르의 치밀함과 섬세함이 실존 인물인 하드리아누스의 실존성을 이상화해서, 그 이상화된 하드리아누스가 나에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하드리아누스의 매개되지 않은 음성을 들으려고 한 것이 애초에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글을 읽으면서, 글솜씨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수십년을 거쳐 집요하게 한 과거속의 인물에 매달려 생각을 하고, 학술적, 비학술적 자료를 모으고, 그가 살았던 장소들을 방문하고, 그를 잊으려고 애쓰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다시 그를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했던 작가의 열정이 대단하게 여겨졌다. 하드리아누스와 유르스나르의 십여 세기를 건넌 숙명적 만남. 우스운 말이지만,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한 사람을 알기가, 아니 안다기 보다는 이해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한 사람과의 만남이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을. 죽은 사람이든 산 사람이든. 그리스 로마 문화가 추구했던 인간의 완성이라는 이상이 유르스나르가 하드리아누스를 통해 다시 꿈꾸고자 한 게 아닐까 싶다. 잃어버린 나를 되찾기. 한 인간인 내가, 인간으로서 성숙된다는 것. 종이 아니라 자유인으로 산다는 것. 사막의 고독이 아니라 시장의 번잡함을 선택하고, 근사하고 고귀한 것을 이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간을 속되다고, 오만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그들은 너무나 철저하게 인간적이지 않은가, 비인간적일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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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둥개 2005-04-25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암늑대를 길들였다? 정말 재미있는 부제인데요! 제가 있는 곳은 내내 계속되던 봄비가 그치고 드디어 약간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어요. 며칠 내내 여기저기 아파서 앓다가 일어나서 뭔가 해보려고 움직이는 시늉을 합니다. 참, 봄맞이로 입춘대길을 써붙이지는 못했지만 카드를 보냈어요. ^^ 봄꽃 즐기는 날 되세요! 푱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