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란 말 따위 - 딸을 빼앗긴 엄마의 마약 카르텔 추적기
아잠 아흐메드 지음, 정해영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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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단상

은 아니면 납ᴾˡᵃᵗᵃ ᵒ ᴾˡᵒᵐᵒ

: 뇌물 아니면 죽음(총탄)이라는 뜻.

《두려움이란 말 따위》

아잠 아흐메드

동아시아


미국의 마약 8할은 멕시코, 콜롬비아 등 중남미에서 유통된다. 그것에 미국에서는 수차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마초 밭을 통째로 불태우거나, 카르텔 두목을 사살하는 등 나름의 총력을 기울여 소정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근원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2010년 이래로 멕시코의 주요 마약 카르텔 범죄는 늘어만 갔다. 2022년 세계에서 가장 살인율이 높은 인구 30만 이상 도시 1~8위를 모두 멕시코가 기록했다는 전무후무한 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도 이제는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2011년 약 7,000건에서 2023년 약 27,000건으로 12년 동안 4배 가깝게 증가했다. 2025년 현재도 20,000건이 넘는다. 마약 사범이 늘어난다는 것은, 단순하게 범죄자의 수가 늘어난 것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투약으로 인한 정신착란 등으로 타인에 대한 위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매해 2만 명의 노동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고, 그 2만 명 중 절반만 일반 시민에 금전적, 신체적 손실을 입히면 더 높은 수치로 경제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정부에서는 대체로 그 피해를 ‘세금’으로 메꾼다. 실상 득 보는 것은 마약을 유통 판매하는 범죄 집단과 그것을 비호 하는 부패 정치인이다.

중남미의 관료들은 적어도 납(총탄), 즉 죽음이라는 협박이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오롯이 플라타ᴾˡᵃᵗᵃ, 뇌물밖에 없다. 정의로운 공무원이 많은 것보다, 악행을 저지르는 공무원이 다수인 것이 더 우려되는 부분일 수밖에 없다. 양아치(조폭)는 아직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이 높은 관료를 협박할 수단은 많지 않다. 오롯이 뇌물이 전부일 것이다. 심지어 높낮이를 구분했을 때, 자연의 물이 위로 솟아오를 수 없듯이 양아치의 알력에 굴복하는 의원은 존재하기 어렵다. 그만큼 한국의 정부 인사들이 얼마나 썩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좌우 할 것 없이 누구든 범죄와의, 마약과의 전쟁을 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앞으로의 대한민국이, 그곳을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이 청정한 국가에서 행복한 삶을 누렸으면 한다.

···

2010년 한적한 아침,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열어보니 어떤 영상이었는데, 사막에서 남자 둘이 포박당해 있었다. 그들은 손과 발이 묶인 채 체념과 두려움이 섞인 눈을 멀뚱히 뜨고 있었다. 주변엔 중무장한 남성 네댓 명이 보였고, 무어라 말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때 갑작스레 마체테를 들고 있던 남성이 묶여 있는 남자의 목을 썰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돼지 멱따는 음성과 서걱서걱하는 섬뜩한 소리가 퍼져갔다. 살아있는 사람을 무차별하게. 그것이 카르텔 델 걸프ᶜᵃʳᵗᵉˡ ᵈᵉˡ ᴳᵒˡᶠᵒ 와 로스 세타스ᴸᵒˢ ᶻᵉᵗᵃˢ, ᵀʰᵉ ᶻˢ 의 타마울리파스ᵀᵃᵐᵃᵘˡᶦᵖᵃˢ, 누에보레온ᴺᵘᵉᵛᵒᴸᵉᵒⁿ, 베라크루스ⱽᵉʳᵃᶜʳᵘᶻ 등을 중심으로 벌어진 조직 간 전쟁이라는 것은 아주 오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참수 영상을 목격한 후부터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원래부터 죽음에 대한 집요한 생각이 있었던 고교 시절이었지만, 그토록 본질적인 두려움을 접한 것은 처음이었다. 범죄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어떤 무력함에 신경이 곤두섰다. 나는 더욱 운동에 몰두했다. 나와 가족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온몸에 퍼지는 염증도 외면하게 했다. 대한민국에도 존재하는 양아치들만으로도 이렇게 불쾌함과 불편함이 느껴지는데, 정부와 긴밀하게 연결된 마약 카르텔이 산재하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큰 고난일까. 우리나라도 현재 마약이 미친 듯이 유통되고 있다. 심지어 접하는 나이도 너무 어려지고 있다. 범죄자는 합당한 죗값을 받지 않고 쉽게 풀려난다. 멕시코가 범죄 천국이 되어가는 과정과 흡사하고 느끼는 것은 과한 해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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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뜬구름
찬쉐 지음, 김태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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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려드는

감시자들

《오래된 뜬구름》

찬쉐

열린책들


우리는 얽히고설킨 대 혐오의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다. 해결보다는 방관하며 자신들의 투정을 들어주길 바라고, 해석보다는 추상적인 느낌으로 공감만을 바란다. 그 행태에 반대급부는 조롱으로 응수하고, 또 다른 혐오를 양산한다.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용어를 만들어내 혐오를 부추기고, 그 혐오로 책을 만들어 돈 버는 앞잡이들이 넘친다. 그 앞잡이들은 박사이고, 모 대학의 교수였고, 어떤 단체의 수장이다. 경험 없이 남의 글로 타인을 혐오하고, 무시하고, 괄시하고, 멸시하고, 등한시하는 현 세태에 유감을 표한다. 그리고 나 또한 당신들을 혐오한다.

시궁쥐와 목이 잘린 꽃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의 시선을 잡고, 냄새를 풍기지 않는가. 세상엔 시궁쥐가 너무도 많다. 시궁창에서 영위하는 쥐새끼가 오물 묻는 것을 두려워하는 기현상이 즐비하다. 그 쥐들은 우중충한 날엔 절대로 나와서 걷지 않는다. 맑은 하늘에서 비가 내릴 리가 만무한데도 말이다. 나는 늘 그 악취에 코를 부여잡고 한껏 인상을 썼다. 여기도, 저기도, 어디에도 쥐와 목 잘린 꽃들이 산재해 있다. 아, 잠들지 않는 밤. 누에콩을 한 줌 쥐어 아가리에 쑤셔 넣었다. 어쩐지, 내장에서 시궁창 냄새가 나는 듯하다.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었다. 곧장 바깥으로 나가 널브러진 목 잘린 꽃들을 짓이겼다. 밟고, 또 밟았다.

*찬쉐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으면 다소 난해할 수 있는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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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 없음 - 관념을 깨고 나답게 사는 기술
정용훈 지음 / 채륜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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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루틴

《루틴 없음》

정용훈

채륜


본인에게 맞는 루틴을 찾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렇기에 시도해 봐야 한다. 자신이 어느 시간에 가장 활력이 생기고, 창의력이 샘솟는지 파악해야 한다. 힘든 것과 안 되는 것은 명확하게 다르다. 그러니까,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지만, 막상 일어나서 일과를 진행하면 어느 때보다 순조롭다. 인간은 보통 해가 떠 있을 때 생기를 얻는다. 보편적으로 해가 지면 장기도 휴식할 준비를 한다. 의사, 한의사, 약사 등 건강 관련한 박사들은 말한다. 밤에 일찍 자고, 아침 이른 기상을 하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나의 생체 리듬은 아침형 인간이 아니다’라고. 실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게으른 것이 원인이다. 그저 밤에 늦게 잤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신체의 특이성으로 인해서 하루 10시간의 수면을 해야만 피로를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22시에 자서 6시에 일어나는 게 ‘불가능’할 수는 없다. 대체로 6~8시에 일어나서 22~0시에는 잠에 드는 게 이롭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과학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논문이나 여타 자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난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저녁형이든, 아침형이든 중요한 것은 리듬이다. 생체 리듬을 잘 통제하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것은 반박할 여지가 없다. 소수의 특별하고, 특이한 사람에게 자신을 끼워 맞춘다고 달라질 수 없다. 그저 게으르고, 부족한 사람으로 평생 이상향만 바라보며 원하지 않는 곳에서 머물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야 한다.

···

일찍 일어나는 것은 그만큼 이른 시간에 잠에 들었다는 것이고, 이른 시간에 잠에 들었다는 것은 쓸데없는 것들을 최대한 자중했다는 것이다. 그 자중으로서 오는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크지만, 잠을 자지 않아 느끼는 피로의 스트레스보다는 확연하게 작다. 프리랜서라면 일찍 일어나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회사원들은 조기 취침 후 이른 기상이 훨씬 긍정적이다. 물론 가끔의 술자리처럼 일탈은 필수다. 항상 정제된 인생을 살아갈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늘 정제를 거부한다고 매번 새로움이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시작은 적어도 중간은 가야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 중간이 모여 다양성을 만드는 것이다. 시작만 100번 했다고 100번의 경험이 생길 수는 없다. 100번 핥았다고, 100가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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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맨 만큼 내 땅이다
김상현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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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글쓰기

헤맨 만큼 내 땅이다

김상현

필름출판사


“꿈이 있는 것은 참 멋진 일입니다. 저는 꿈이 없어서 걱정이거든요.”

통계에 기반한 수월한 길은 존재한다. 저마다 다르게 사고하고 움직이는 인간에게 똑같은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폭력에 가까운 오답이다. 지름길이 잘 맞는 사람이 있고, 빠르게 올라간 만큼, 급속도로 추락하는 인간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꿈이 있어야만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꿈이 없다고 반드시 실패한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하루하루 착실히 살아내는 인간은 꿈이 있든 없든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말이다.

특히, 글이라는 분야가 참으로 애매하다. 극단적으로 누군가는 쓰레기라고 부르는 도서를, 어떤 사람은 최고의 책이라고 명명한다. 10년 동안 총 세 곳의 독서 모임에 참석하고, 운영하면서 느낀 것은 역시 ‘정답은 없다’이다. 연한 색의 도서가 있다면, 짙은 색의 도서가 있는 것이고, 얕음과 깊음의 기준은 읽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렸다.

보통은 여기쯤부터 내가 왜 쓰는지를 나열한다. 그저 단순하게 쓰고 싶어서도 될 수 있고, 내 영혼의 풍만함을 위해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 나는 왜 쓰는 것일까. 총 3단계의 목표 중 1단계는 등단이다. 2단계는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이고, 3단계는 부커상을 수상하는 것이다. 현재는 1단계에서 머물고 있다. 등단하기엔 내 소설의 수준이 현저히 낮을 수도 있고, 혹은 현대 문학의 기조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쓰는 것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해 나열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딱히 할 말이 없다. 100만 자쯤 쓰면,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은 나오겠지, 하고 생각했던 게 무색하다.

김상현 작가는 사랑하는 일로 돈을 벌지 못하면 곁가지로 남겨두라고 한다. 속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곁가지로 남겨둔 채로 삶의 풍요를 만끽하라고.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남들이 직업이라고 부르는, 생계를 존속하는 일을 곁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작문을 끊임없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곁가지는 당신들이 말하는 직업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나를 소개할 때, 곁가지가 아닌 정체성을 말한다. 아직 등단은 하지 못했으니, ‘글 쓰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내 섣부른 자아는 이미 작가라는 문패를 드높이 걸었기에, 그것을 취미로 격하시킬 명분이 없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세 번의 겨울을 마주했다. 금전적 보상은 연에 50만 원 남짓으로 수익이라고 말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작문은 곁가지가 아닌 심지라고 말한다. 심장 속 뿌리 깊게 박힌 심지를 뽑아낸 후 곁가지로 둔다고, 겨울을 피할 수는 없다. 앞으로 수십 번의 매서운 겨울이 남아있다. 그때까지 내 꿈이 곁가지가 될 일은 절대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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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 을유세계문학전집 144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재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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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뎌내고,

응시한다.

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을유문화사


선명한 기억의 최초, 나의 부모님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행동을 추구했다. 비슷한 사회의 격통에 시달린 후 돌아온 가정에서 아버지는 신문을 보셨고, 어머니는 밥을 안쳐야 했다. 이후 설거지했고, 방 청소가 끝나서야 쉴 수 있었다. 나의 직선적인 눈은 그것이 참으로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것에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운전하시잖아.”

그저 앉아서 핸들만 요리조리 꺾으면 되는 게 뭐가 그리 힘들까, 생각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나는 아버지 차를 탄 상태로 어떠한 사고도 겪은 적이 없다. 몇십 년 동안 ‘무사고’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된 것은 내가 면허를 딴 지 딱 10년이 되었을 때다. 아버지는 집에 필요한 소소한 가구를 직접 만들었고, 수명이 다한 전구를 교체했다. 어머니는 가족의 대소사부터 배우자와 자식들의 정신적, 신체적 긴장도를 완화했다.

이 밖에도 어떤 타당성과 피해를 찾으려고 하면 끝도 없이 찾을 수 있다. 여름휴가 및 가족 모임에서 혼자서만 일하러 갔던 아버지의 외로움, 명절마다 타자의 집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귀가하지 못하고 요리를 했던 어머니의 극심한 노고 등. 그러나 나의 부모님은 부정에 물들지 않았다. 고칠 수 없는 불합리함에서 서서히 멀어지길 택했고,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서로에게 보상을 전했다. 우리는 친가를 방문하지 않게 됐고, 아버지는 종종 요리에 빠져들었다.

타인의 환경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가장 가까웠던 각자의 선명한 선혈도 인지하지 못했으니까.

-

릴케의 시선은 추상적이면서도 놀랍도록 구체적이다. 정적인 사물을 동적으로 표현하고, 단일한 것에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삽입한다. 추상적임과 동시에 직설적이면서 또 부드럽다가 때론 거칠어진다. 전부 이해하지 않더라도, 공간과 상황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섬세한 사상가의 노래는 글을 읽는 내내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과감한 시인의 추상적인 손길이 독자를 어루만진다. 릴케의 글은 읽다 보면 불명확한 글에서도 명확한 뜻을 얻어가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어떤 비참함을, 또 어떤 비정함과 여타 부정을 시로써 매혹적이고, 명확하게 풀어낸 이 글은 이해를 내려놓고 단어 자체를 음미하다 보면 글의 진수를 느끼게 된다. 《말테의 수기》는 마치 산문처럼 느껴진다. 한 인간의 생애를 아주 덤덤하게 시적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곳엔 분명 온갖 감정과 격통이 존재하나, 대단히 우아하게 풀어냈다. 마치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세안하고 수염을 밀며 옷을 단정하게 매만지는 그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릴케의 글을 읽을 때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 릴케의 사상을 곡해하지 말고, 그대로 읽었으면 한다. 완독하고 나서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것까지 말리지는 않겠지만, 읽는 동안이라도 최대한 순수하게 음미하길 바란다. 릴케의 글로 분열을 조장하는 짓은 아주아주 몹쓸 짓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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