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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평점 :
영혼 번호 103-683 . 당신을 심판합니다
사후세계와 연관진 스토리는 현생에서의 진부한 스토리에 비하면 매우 판타스틱한 줄거리이다. 특히 이런 사후세계는 지금 현생을 영위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라 무궁한 상상력이 발휘되곤 한다. 사후세계에 대한 갑론을박이 많지만 적어도 이런 상상력이나 과장의 나래가 펼쳐질 수 있는 문학의 영역이라면 충분한 소재로 나올 수 있는 화제이다. 이런 미지의 세계를 다룬 소설이나 여타의 장르는 자칫 허무맥락의 과장이나 오버로 치닫을 수 있는 위험을 따르지만 허구를 단지 재미와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시청자, 혹은 지금은 나는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냉소적이지 않다. 죽음과 관련해 그 다음 세계에 대해 어떻게 이끌어 가고 있을까? 그리고 어떠한 재미를 안겨줄까. 그리고 문학작품도 결국에는 교훈이나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기대하게 하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사후세계에 배경을 담은 작품을 많이 접하지는 않았다. 판타지 분야를 그리 좋아하는 성향이 아니었기에 찾아서 읽어보지는 않을 정도인 내가 이 책이 더욱 끌렸는 이유는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작품이기도 한 이유가 있다. 학창시절에 <뇌> 작품을 읽고 심오한 분야의 이야기로만 알고 있다가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작품을 종종 읽어왔다. 육아에 바쁜 일상을 보내고 약간의 틈을 내어 아이들이 낮잠 잘 시간에 읽어보려했던 이 책은 예상과 다르게 책을 받은 그 날밤에 아이들을 재우고 단숨에 읽어내렸다. 책을 끼고 살았던 임신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심판> 이란 책 제목이 많은 내용을 내포하고 있는 느낌이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사이즈로 들어 온 이 책은 휴대하기 편해서 종종 읽어내리고 싶었으나 어찌하다 단 숨에 읽어 내린 걸까? 작가의 명성답게 전개가 물 흐르듯이 막힘없이 잔잔하게 이어진다. 다만 우리나라 작품이 아니기에 이름을 되새기려 앞부분을 잠시 넘겨본 것 외에는 술술 읽게 된다. 이 작품은 희곡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 빠진 나머지 읽는 내내 연극의 무대와 배경이 눈 앞에 그려질 정도이다. 내가 마치 관객이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생전에 자신을 좋은 남편, 좋은 아빠, 좋은 시민 등등 으로 생각하고 있는 주인공 아나톨이 죽음에 직면하고 그 다음 스크린을 통해 전생을 꼼꼼히 되돌아보며 전생의 업적에 대해 심판을 받는 간단하면서도 아이러니한 스토리다. 아이러니하다고 느낀 이유는 그의 전생은 심판을 주업으로 삼아 온 판사이기 때문이다.
한 창 휴가철로 바쁜 대낮에 수술을 받게 된 그는 법정 근로시간을 꽉채운 운이 없는 의사의 무책임한 수술도 한 몫을 하여 죽음을 맞이한다.
<놀라움으로 가득한 긴 여행을 준비하세요>
아나톨. 그가 처한 상황을 예견하는 그의 오늘 운세이다. 하루 담배 세 갑씩 그의 일상에 더럽게 운도 없도록 집도의를 만나 그는 긴 여행을 맞이한다. 삶은 여행의 일부라는 카롤린의 대화 내용도 인상깊다. 그의 죽음을 어렵게 인지시켜주는 그의 수호천사이다. 어느새 그를 변호하고 있는 카롤린, 그리고 전생의 그의 잘못을 꼬집은 카롤린의 전 남편 지금은 현 검사인 베르트랑 그리고 그를 심판하는 가브리엘! 여기는 법정이다.
그는 전생에 재능을 낭비하고 알맞지 않은 배우자를 선태한 등등의 죄목을 심판받게 된다. 즉 아나톨이 좋은 역할을 했다고 자부했던 전생의 일과를 조목조목 따지듯이 말이다.
카르마 25%, 유전 25%, 자유의지 50%
성별 뿐만아니라 국적, 부모,핸디캡, 직업,심지어 사망 나이까지 플랜을 짠다는 역설적인 탄생은 무의식으로 의지를 거슬르지 않은다면 물 흐르듯 지켜지는 프레임인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자유의지라는 발판이 있기에 운명을 역행해서 방향을 일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조금이나마 인지할 수 있다. 자유의지라는 방책이 없다면 우리는 모두 방향성을 잃고 말테니까 말이다.
심판 결과 아나톨은 소위 말하자만 전생의 유죄와 같은 최고 벌을 받는다. 한 시대를 판사의 직책으로 법을 아우르던 그가 아이러니하게 유죄를 받다니, 그리고 그보다 더 아이러이한 반전은 최고형의 종착지는 바로 환생이다.
물론 이 작품의 최대 반전 결말은 있지만 더이상 서평 쓰기에는 스포가 될 것같다. 법정의 공평정대를 상징하는 저울 든 여인이 책표지에 있는 이 책은 한 인간의 전생을 판단하며 심판하는 일련의 스토리를 모티브로 담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이 상황에 비추어 많은 것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가령 인간의 물욕이 얼마나 탐욕스러운가 그리고 얼마나 더 추악할 수 있나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다. 지금 코로나19 라는 위기의 전염병 아래 문화, 공연 하물며 슬리퍼 신고 집앞 영화관에서 관람할 수 있는 일상 전체가 stop 되었지만 (물론 나는 육아 전쟁에 제약있는 문화 관람이지만;) 어쨋든 유명한 희곡 한 편을 집안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감상하게 하는 찐여운이 남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