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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렙 ㅣ 보르헤스 전집 3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6년 3월
평점 :
우리는 스페인어권 문화와 별로 친숙하지 않다. 세계문화사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듣긴 했지만, 우리의 일상 속에서 그것을 접할 기회는 적다. 투우, 축구 같은 것, 그 무모한 열정 같은 것이 전부이다. 나 역시 그것들에 대해 무지한 상태이지만, 그러나 그 문화의 깊이가 대단하다고는 짐작도 하고 또 잘 소개되기만 하면 우리 정서에 비교적 쉽게 친숙해질 것이라는 예상도 한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난해한 시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문학작품의 해석은 시대와 사람에 따라서 달라진다. 문학 작품의 의미는 텍스트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저자의 의도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독자의 해석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르헨티나의 문화와 역사와 전통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고, 보르헤스의 문학세계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 따라서 내가 읽은 보르헤스 소설은 나만의 해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내가 가장 중심을 둔 부분은 알렙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였다. 개념적이고 논리적인 사유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직관과 상상력으로 느끼는 `알 수 없는' 존재의 `알 수 없는' 근원이 알렙이다.
사람은 누구나 알렙을 볼 수 있다. 나도 모든 세상을 볼 수 있고 세상도 나를 알렙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알렙은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매개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철학자 하이데거를 좋아한다면 하이데거는 나에게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보던지 하이데거를 통해서 보게된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국어에 대한 것도 하이데거가 말하듯 하나의 숲길이 된다.
즉, 나는 완벽한 학문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길을 남들보다 앞서 걸어간다는 뜻이다. 현대는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사람들은 그것에만 치중한다. 인간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도구들이 이제 인간의 활동을 제한하는 그런 시대에 하이데거는 존재의 사유를 중요시 여겼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컴퓨터도 하이데거를 통하여 생각하면 좋지 않은 물건이 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한 알렙은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하면서도, 그것이 가치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보르헤스가 본 알렙이라는건 진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까를로스는 베아트리스의 사촌오빠이며, 보르헤스는 알렙 안에서 베아트리스가 쓴 편지들을 보게된다. 자신은 끊임없이 베아트리스에게 외면 당했지만 까를로스는 아니었다. 이것이 보르헤스가 질투를 느낀 이유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