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관의 살인 1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키리고에 저택 읽고 맘에 들어서 <십각관의 살인>와 <암흑관의 살인>을 읽었다. 무슨 정보를 알고 읽은건 아닌데 결과적으로 <십각관> 이후에 <암흑관>을 읽은게 아주 잘한 일이었다. 두 소설에 연결점이 있는데 순서가 반대였다면 재미가 30퍼센트는 반감했을듯. 아 이 작가 정말...취향이라기엔 너무 음산하다. 하지만 거부할 수가 없게 매력적이다. 추리소설로서의 트릭도 만만찮고 여러권의 책에 걸쳐(이라고 해봐야 아직 세 권 밖에 안읽었지만) 모두 통하는 정교한 세계를 만들어간다던가 하는 솜씨도 굉장히 특이하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정통 미스터리물의 모든 요소가 다 갖춰져 있어서 좋았다...라지만 사실 <암흑관>은 트릭보다는 분위기가 더 강력하다. 이렇게까지 무서운 이야긴줄 모르고 시작했다가 보고나서 이틀째 밤에 불을 못끄고 자고 있다. 덜덜...으악 미칠 지경이다. 내용만 보면 판타지 호러라고 해도 될 정도로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한번 빠지면 현실로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은 무시무시하고 악마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오래된 저택에 사는 집안의 비밀, 이런 설정은 추리소설에 흔히 있는 것이지만 그 비밀이 상식을 초월해서 거의 오컬트스러운 환상 속으로 들어간다. 판타지가 아니라 미스터리 장르인만큼 당연히 이런 악마적 세계를 현실로 인정하고는 있지 않지만, 약간, 아주 약간의 여지를 남겨두는데 이게 정말 사람을 오싹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너무 무서워서 이쪽을 오래 상상하긴 좀 그렇지만 암튼 이 어둠의 포스가 꽤나 강하고 그 점이 트릭이나 추리의 논리성 같은거보다(물론 그런게 없지는 않다) 더 이 소설 전체를 이끌어나간다. 아 정말 책 다 읽고나서 밝은 세계가 그리울 정도였다. 아예 처음부터 판타지 호러라면 이렇게 무섭지는 않았을거 같고 그런 요소가 없는 명쾌한 추리라면 또 아우라가 없었을거 같은데 이 아슬아슬한 경계선이 뭔가 두근두근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물론 심하게 취향을 탈 것 같은 책인데다 일단 길이가 너무 길고 - 쓸데없이 긴건 아니라는 작가의 말이 앞에 있었지만 조금은 줄였으면 싶었다(분량 자체로만 보면 좀 천천히 읽을 책이 필요했던 나에겐 오히려 좋았지만) - 추리적 요소가 분위기에 눌리는 느낌 등 단점이 없는건 아니지만 압도적인 분위기로 이 모든 걸 상쇄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야아츠지 소설 세 권 읽어본 바에 따르면 책마다 내 맘에 드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하나씩 들어있더라. 그것도 남자가 쓴 소설치고는 남자 캐릭터가 매력적인 경우가 많아서 흐뭇했다. <키리고에 저택>에서는 (남자는 아니지만) 미즈키가 인상적이었고,<십각관>에서는 엘러리가 맘에 들었는데, <암흑관>에서는 겐지와 츄야가 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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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겐지와 츄야 둘 사이는 (나만 느낀건줄 알았는데 다른 리뷰보니 딴 사람들도 느낀 바더라!) BL 만화 같은 묘한 느낌마저 주는데 둘 다 내 맘에 든 캐릭터라 이 설정도 좋았다...라지만 사실 처음엔 감을 잘 못잡고 왜 겐지는 츄야를 특별대접하는게지 이렇게만 생각하다가 뒷부분에서 아 이거 분위기 묘하다! 이렇게 느낌. 다만 이 둘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미래를 좀 주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어둡진 않았을거 같다. 교고쿠 나츠히코 소설 역시 어둡지만 그래도 우리의 주인공들은 밝은 쪽에 있기 때문에 좀 안심이 되는 것에 비해 <암흑관>은 정말 너무 어둡다. 츄야의 본명이 밝혀지는 순간 정말 숨넘어갈뻔 했고, 겐지가 진짜 겐지가 아니라는걸 안순간 살짝 실망하기까지 했지만(달리아의 마성! 그 미모! 그 포스가 너무 강해서 그게 없는 겐지는 왠지 좀 평범해진거 같아서), 곧, 아냐 그래도 이 제대로 미친 집안의 피를 안받은게 다행이지. 겐지, 이제 과거는 잊고 츄야랑 새출발하는거야! 하는 순간 허망한 결말. 흑. 이 커플(?)이 맘에 들어서 겐지와 츄야를 위해서는 이 이야기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미스터리>가 아니라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판타지>이기를 개인적으로 살짝 바래기까지 했다. 부활해서, 츄야가 암흑관으로 돌아오기를 몇백년동안 기다리고 있는 겐지...를 상상해보다가도 집어치우게 된다. 만약 정말 그런 설정이었다면 오히려 덜 재미있었을거 같다. 어디까지나 이 세계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세계이고 이 소설의 장르는 판타지가 아니다. 으휴..어둠의 포스를 좀 잊어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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