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란 무엇인가 - 책 만드는 사람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김학원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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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관련된 거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필독서, 편집자를 알면 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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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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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우리는 모두 생활(수준)의 기준이 아니라 삶의 기준으로, 부(가진 것)의 척도가 아니라 나눔의 척도로, 표면적인 위대함이 아니라 내면적인 선함으로 평가될 것이다. -윌리엄 아서 워드

누군가가 그랬다, 성장은 본능이라고. 그렇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성장한다. 그러나 그 성장의 끝에는 반드시 소멸이 있다. 생성, 성장, 소멸 이 세 가지는 불변의 진리다. 이 책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는 그 중 성장과 소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경제신문의 한편에서는 오르내리는 환율과 주가와 함께 경제성장률이 어떻게 바뀔지 시시각각 전달한다. 도대체 경제성장률을 어떻게 계산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지면에 오르고 있는 경제성장률 수치는 마치 성장하지 않으면 곧 죽음이라는 마법의 주문 같이 사람을 현혹하고 있다.

그러나 정반대다. 빠른 성장은 오히려 소멸의 시간을 더 빨리 재촉하고 있을 뿐이다. 많은 학자들이 지구 환경의 위기를 이야기하면서 지금 당장 자원의 소비를 줄이고, 환경과 생태를 고려한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현실적인 문제’를 들어 그런 경고를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지구환경은 이미 재앙의 혼돈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두 번 다시는 안 일어날 거라는 확신을 아무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경제성장에 대한 환상은 이제 접어도 되지 않을까. 문제는 성장의 수치가 아니라 성장의 질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세상에 나온 것은 오래전 일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저자는 국가와 폭력에 관해 알기 쉽게 정리해 주었다. 20세기 국가에게 절대 권력을 주고 교전권을 준 결과가 1, 2차 세계대전이며, 최근의 대부분의 분쟁은 국가와 자국민 사이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통해 과연 국가에게 전쟁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 합당한지 묻고 있다. 그리고 결코 모두를 부자로 만들 수 없는 지금의 시스템을 지적하고, 빈부는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의’는 경제적인 결정이 아니라 정치적인 결정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나아가 경제 제도를 민주화하기 위해 정치적인 민주화의 중요성 등을 강조했다.

우리는 집단적 욕망과 개인적 두려움, 그리고 무기력 속에서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켰다.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는 우리에게 만원 한 장의 행복이 사라진 팍팍한 일상을 선물했고, 허약한 민주주의를 뒷골목으로 쫓아내고야 말았다. 인간이 가지는 최소한의 권리, 결코 물러서서는 안 되는 인권을 무참히 짓밟고 게다가 한반도 남쪽의 산하를 온통 공사판 먼지구덩이로 만들고야 말 태세다.

이런 불합리와 부정과 반인권, 반생태가 판치는 사회에 살고 있는 나는 지금, 밤 11시로 향하는 사무실에 앉아 이 글을 마무리 짓고 있다. 넘어오지 않는 교정지를 기다리고, 책에 들어가야 할 사진을 찾아야 하는 시간인데 오래 묵혀둔 책을 뒤적거리며 정리하는 지금이 그래도 행복하다.

문득 책을 덮었더니 이런 말이 나온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 씌어졌다.

- 과로에 지쳐 있는, 혹은 노동 현장의 부자유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 (샐러리맨이나 사무직 여성을 포함하여) 노동자.

이 외에도 권하는 유형의 사람은 많지만 꽤 나를 자극하는 저 말은 맨 위에 첫 번째로 나온 문장이다. 아, 마지막 문장도 나에게 딱 맞다.

“왠지 모르게 위기감을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막연하고, 분명히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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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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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인간이 되지 못한다 해도 괴물은 되지 말자. 맞다, 그런 말이 있다. 아무리 지금 상황이 고달프고 벼랑끝으로 몰린다 해도,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인간성을 잃어버리면 안된다. 우리는 누구나 그렇게 말하지만, 정작 인간성을 지킬 수 없는 극한 상황에 다달을 때면 어떻게 바뀔까. 이에 대해 주제 사라마구라는 작가는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소설에서 그의 상상력을 펼쳤다. 
 

백색실명증. 어느 순간 갑자기 눈앞에 하얀 우윳빛이 점차 번지고, 그러다가 시야는 온통 백색으로 가득차 앞으로 보지 못하는 병. 게다가 이건 전염병이다. 전염도 매우 쉬워서 눈과 눈이 마주치면 하루 정도 지나 완전하게 전염되고 만다. 도시는 순식간에 백색실명증이 퍼지기 시작하는데, 안과의사의 아내만이 유일하게 백색실명증에 걸리지 않는다. 전염이 안되는 유일한 개체가 된 것이다. 정부당국은 백색실명증의 급속한 전파에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갖추어진 보건시설이나 사후대책없이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을 집단 시설에 수용한다. 안과의사의 아내는 비록 실명을 당하지 않았지만, 마치 실명을 한 것처럼 꾸며 자신의 남편과 함께 이 집단 수용 시설로 들어간다. 수용시설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법과 제도는 무색했다. 문제는 수용시설에서 폭발한다. 인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용 시설은 물론, 수용인원에 맞는 복지 지원이나 서비스는 전무하고, 수용시설 외곽은 군인이 완전무장하고 경계를 서면서 수용시설을 나가려는 사람들에게 가차없이 총격을 가했다. 수용시설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병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외에도 배고픔과 허기, 위생과의 전쟁을 치러야했다. 급기야 식량 보급마저 끊기고, 아비규환의 싸움터로 변하는 과정에서 무장한 맹인 남성들이 식량을 독점하고 여성과 금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안과의사의 아내는 그 모든 과정을 눈뜨고 본다는 것이 무척이나 괴로웠다. 그는 인간성이 파괴되고 야만과 모욕으로 점철된 시설 안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사람으로 그 모든 장면들을 쏙쏙 들이 목격해야 했다. 그리고 음식을 독점하고 여성을 유린한 폭력집단의 두목을 살해하기에 이르른다. 그리고 그 싸움의 끝에 수용시설은 불에 타고, 많은 사람들이 불에 타 죽거나 건물이 무너져 깔려 죽는다. 안과의사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만이 수용시설을 탈출하고, 그때는 이미 전 도시가 눈이 멀어 지키는 군인도 관리도 없었다. 허기와 공포에 지친 사람들을 이끄는 안과의사 아내의 헌신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풍요롭진 못해도 허기를 면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됐다. 그러던 어느날 마침내 한사람씩 실명상태에서 돌아와 앞을 보기 시작한다.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버린단는 설정 자체부터 파격이다. 작가는 왜 사람들의 눈을 갑자기 멀게 했을까. 그리고 이런 사건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그의 이야기는? 여기에는 인간성에 대한 깊은 관심이 담겨있다. 시각을 잃어버린 인간은 감각과 본능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우리가 말하는 인간성을 하나씩 하나씩 잃어갔다. 그리고 유일하게 시력을 가진 안과의사의 아내만이 이를 목격하며, 괴로워한다. 만일 내가, 그리고 당신이 그 도시에서 유일하게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을 상상할 수 있을까. 도시는 점차 인간성을 잃어가고 사람들은 하나둘 동물과 다름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다. 유일하게 눈 뜬 사람으로서 눈먼 사람들의 안내자이며 보호자로서 자처할 수 있는가. 눈앞에서 뻔히 벌어지고 있는 폭력에 대해 유일하게 저항할 수 있다면 살인을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인간성은 무엇인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갖추어야할 인간의 존엄성의 가치는 어떻게 매김할 것이며,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이런 문제을 던져주는 문제작이다. 자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당신만이 눈을 뜨고 있다.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참혹한 상황을 보면서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그리고 다시 돌아와,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지금의 세상.. 그래 지금 현실을 당신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 야만과 폭력의 현장에서 지금 당신은 눈먼자가 아닌가? 아니 당신이 지금 그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면 당신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자면,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에요."이다. 당신은 눈뜬 사람인가, 눈먼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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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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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이미지를 접한다. 일상적인 이미지도 있지만, 세계 곳곳의 매체들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이미지들도 있다. 전 세계에서 보내서 우리 안방까지 들어오는 이미지들이 주는 느낌은 그리 유괘하지만은 않다. 이스라엘 폭격으로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아동도 있고, 자국의 내전에 시달리다 못해 이웃 나라의 국경지대의 텐트촌에서 생활하는 아프리카의 어느 모자의 모습도 있다. 가깝게는 기아에 시달리는 북한 아동의 갸냘픈 팔다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사진도 볼 수 있다.

요즘에는 더욱 잔인한 영상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용산 참사 장면을 담은 여러 이미지들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만날 수도 있었다. 아침 출근 시간 뉴스로 보여지는 영상들은 불과 한두시간 전의 영상들이 아침 밥상에 올라온 것이다. 그만큼 빠르게 그리고 더 적나라하게, 더 사실적으로, 더 현실감 있게 세상의 맨살을 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이미지, 즉 타인의 고통을 담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과연 이런 이미지는 언론들의 먹잇감으로 사냥이 되어 스펙터클의 감각을 자극하는 소비재일 뿐일까? 이제는 너무나 닳고 닳아서 감흥이 오질 않는 진부한 흥미거리일 뿐일까?

누군가는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개입할 여지를 잃어가고 있다고 개탄한다. 누군가는 우리의 가슴이 너무나 닳고 닳아서 이제 석화되고 있는 것이라며 슬퍼한다. 그런걸까? 정말 나와 당신의 가슴은 그렇게 차갑게 얼어붙어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수전 손택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지들이 가지는 의미를 설명하면서, 지금의 이미지들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연민이라는 감정에 솔직하게 다가서자고 역설하고 있다.

"감정을 무디게 만드는 것은 수동성이다. 냉담한 것으로, 혹은 도덕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무감각한 것으로 묘사된 상황은 따지고 보면 감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분노의 감정, 좌절의 감정으로 말이다."

연민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수동성이 문제다. 감정은 여전히 우리에게 살아 있는 양날의 검이다. 우리가 지구 저편의 고통에 대해 눈으로 보고 그친다면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를 더욱 더 절망과 좌절로 이끄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귀기울이고, 그 고통을 없애거나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고통을 목도한 사람의 의무다. 

"특권(타인의 고통을 이미지로 보는 것)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쌓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 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 <타인의 고통> 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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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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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행성에서 지적 생물이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생물이 자기의 존재 이유를 처음으로 알아냈을 때이다. 만약 우주의 다른 곳에서 지적으로 뛰어난 생물이 지구를 방문했을 때, 그들이 우리의 문명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맨 처음 던지는 질문은 "당신들은 진화를 발견했는가?"라는 물음일 것이다. - <이기적 유전자> 40쪽 

 

어떤 나라에서 지적 사회가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사회가 자기의 존재 이유를 처음으로 알아냈을 때이다. 만약 지구의 다른 곳에서 문명이 뛰어난 사회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들이 우리의 문명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맨 처음 던지는 질문은 “당신들은 사회의 진화(진보)를 발견했는가?”라는 물음일 것이다.  

 원문을 쓴 리처드 도킨스에게는 참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 사회의 미개함을 꾸짖고 싶어 그의 글을 차용해 봤다. 이렇게 한 의도에는 작금의 현실의 야만성도 한몫했다. 쉽게 이야기되는 막장 문화는 둘째 치고, 여전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벌어지는 연쇄살인의 극악함, 거기다가 밑도 끝도 없이 벌어지는 공권력의 무지막지함과 그 저열함에 있다. 우리 사회의 진보는 가능한가? 있기는 한가?  

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얼마 전에 읽은 책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저, 을유문화사)를 이야기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니 본론으로 충실해 보자.  

많은 이들(그러니까 나를 포함해서)이 이 책의 제목만으로 헛된 망상과 철학을 늘어놓았다. 이거 뭐지? 인간은 그러니까 그 근본부터 이기적 존재라는 것인가? 그러니 이 사회는 적자생존의 정글 논리가 지배하는 게 당연하고 약육강식에 따라 질서가 재편되어야 한다는 건가? 강한 놈이 이기는 것이니 재주껏 살아남을 수 있도록 강한 놈에게 빌붙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얼마전 강만수 장관이 돈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게 될 종부세 폐지를 밀어붙이고 감세정책을 발표하면서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정책은 오래 가기 힘들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생각하는 인간의 본성이 아마 저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 책의 핵심은 이렇다.  

지구 생명체의 진화는 유전자가 더 많은 복제품을 남기는 쪽으로 진행되었다. 이를 통해 유전자는 불멸의 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에 따라 인간을 비롯해 모든 생명체는 그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 마련된 생체기계일 뿐이며, 생체 기계인 생명체는 유전자의 이익, 즉 후세에 유전자의 복제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프로그램 되어 있다는 것이다. 진화의 기본단위는 유전자이며, 이 유전자를 이해할 때 진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유전자의 자기 복제에 대한 욕구를 ‘이기적’이라는 말로 은유적으로 표현했는데, 나는 그런 엄청난 오해(?)를 하고 말았다. 무식해서 부끄러울 뿐이다. 강만수 당신도 무식한 건 마찬가지다.  

생물학적으로 유전자 입장에서 본 이타성은 불가능한 개념이다. 그런 유전자가 있다면 애초에 사라지고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것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치환하는 오류를 범할 사람을 위해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의 특성에 반하는 밈(Meme) 이론, 즉 문화유전론을 내놓았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낳아 준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하거나 더 필요하다면 우리를 교화시킨 이기적 밈에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라는 것은 자연계에는 안주할 여지가 없고 세계의 전 역사를 통해 과거에 존재한 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교육하는 방법도 논할 수 있다. 우리는 유전자 기계로서 조립되었지만 밈 기계로서 교화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들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전제에 반항할 수 있는 것이다. - 349쪽 

 최근 우리 사회는 새로운 문화 유전자를 발견했다. 바로 집단지성이다. 물론 집단 지성은 대중의 의식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단순한 의식의 반영이라는 대중 의식과 계속해서 발전하는 집단 지성 사이에는 가장 큰 차이가 있다. 바로 소통이다. 막장 드라마라면서도 계속해서 시청률을 상회할 수 있는 것은 소통이 없는 대중 의식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단 지성은 이미 졸렬한 자극과 허무맹랑한 우연, 성찰이 없는 드라마를 막장으로 규정짓고 비판하고 있다. 소통이 만들어 낸 비판의식이다.  

반면 소통을 거부하고 오로지 제 갈 길(?)만 가겠다고 외치며 앞에 거치적거리는 시민들을 무참히 살해하면서 나아가는 저 정부는 그야말로 막장 중의 막장이다. 시민들은 소통의 장에서 지금의 현실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그에 저항하고자 결집하고 있다.  

 권력과 전제에 대항할 수 있는 힘, 그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있음을 <이기적 유전자>는 밝히고 있다.  

다시 도킨스의 말을 차용해 와 정리해 보면,  

우리에게는 우리가 먹여 살리는 공권력에 반항하거나 더 필요하다면 우리를 지배하려는 권력자에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라는 것은 이 사회에는 안주할 여지가 없고 세계의 전 역사를 통해 과거에 존재한 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교육하는 방법도 논할 수 있다. 우리는 시민의 한 사람이라는 형식으로 조립되었지만 국민으로서 교화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들 권력자들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대한민국에서 깨어있는 시민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권력자의 전제에 반항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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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해


물론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은 참 좋은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먼저 읽었던 나로서는 왜 이렇게 읽기가 더딘지, 이해가 안 가는 문장은 왜 이리 많은지 나의 무식을 탓해야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책의 번역이 엉망이란다.

그러니 되도록 이 전에 나온 동아출판사 <이기적인 유전자>를 볼 것을 추천한다(물론 절판이다, 헌책방 뒤져야 한다). 나도 이 책 팔고 그 책을 찾아서 다시 볼까 생각중이다. 네이버에서 ‘이기적 유전자 번역’만 쳐도 관련 이야기는 쏟아져 나올 것이니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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