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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된 희망
폴리 토인비 지음, 이창신 옮김 / 개마고원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어머니는 오랫동안 국세청 구내식당에서 일해 오셨다. 주로 밥과 국을 담당하셨다고 하니, 그 오랜 기간 동안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어보지 않은 국세청 직원은 없을 것이다. 한때 국세청 구내식당이 직영으로 운영되었을 때만 해도 근무조건이나 환경은 꽤 좋은 편이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위탁업체를 선정해 계약하고 있는 지금은 그저 그렇다는 게 어머니의 생각이다. 일이 고되고 힘들다 보니 사람이 자주 바뀌고, 하루 휴가를 내더라도 눈치 봐야 하며, 아파도 아픈 걸 이야기 힘들다. 그래도 어머니는 줄곧 국세청 구내식당에서 줄곧 밥 퍼주는 아줌마로 일하고 계시다. 근 20년 가까운 세월을 그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사정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작은 월급이지만 아끼고 아끼셔서 가족들이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닦으셨고, 건축 현장 일을 하시던 아버지가 이제 은퇴하시고 집에만 머물러 있는 지금도 집안의 생계를 위해 새벽 일찍 일터로 나가신다.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은 고단하다. 젊은 날에는 여자라는 이유로 임금 차별을 당하더니 결혼하고 아이를 임신하면서 회사에서 주는 눈치 때문에 일을 그만두거나, 보육의 어려움 때문에 회사를 떠난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아이들이 커서 다시 일자리를 찾다 보면 저임금 일자리만 넘쳐난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한 내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4110원. 작년에 비해 2.7%만 인상됐다. 소비자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실질임금은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재계는 당초 오히려 최저임금을 5.8% 인하할 것을 주장하면서 “최저임금의 지나친 인상은 영세·중소 사업장의 고용률 하락과 폐업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과연 지금의 최저임금이 지나친 인상인지 의문이 들며, 최저임금의 인상이 고용률 하락과 폐업을 이어질지도 의문이다. 또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간의 격차도 문제다. 4인가족의 최저생계비는 117만원인데, 최저생계비 기준이 1999년 도시근로자 가구 평균소득의 38.2%였으나, 2006년에는 31.1%까지 떨어졌다.또 근로자 가구의 중위 소득과 견줘도, 1999년에 44% 수준이었던 최저생계비가 2005년에는 36%로 낮아졌다. 빈곤저지선이라고 하는 최저 생계비가 이처럼 계속 후퇴하고 있는 것도 빈곤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과연 우리는 88만원의 최저임금으로, 4인가족의 최저생계비라는 117만원으로 한 달 동안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게 가능할까?
빈곤은 세습되고 있다. 최저임금을 받는 부모들은 빈곤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매달리게 되고,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방치되는 일이 잦아진다. 또 빈곤층이 살아야 하는 주거 환경 역시 열악해 온갖 범죄에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김길태가 범행을 저지른 곳도 재개발로 어수선한 치안의 사각지대였다. 가난은 온갖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을 높이고, 또 교육 여건과 질도 떨어뜨린다. 아이들은 쉽게 범죄의 대상이 되거나 가담하여 전과자 딱지를 붙인다. 그리고 저임금 노동으로 내몰리면서 헤어나기 힘든 빈곤의 늪으로 빠지는 악순환이 나타난다.
폴리 토인비의 <거세된 희망>은 이처럼 악화되는 빈곤의 양극화와 빈곤의 악순환을 르포 작가의 체험으로 사실감 있게 보여 주었다.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넉넉한 중산층의 삶을 살면서 명성과 부를 가진 여성 칼럼니스트 폴리 토인비는 뜻하지 않는 제안을 받는다. 바로 저임금 노동자로 살아가는 체험을 하는 것. 그녀는 가난한 빈곤층 동네인 클램퍼파크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사는 가난한 50대 여성 가장으로서 빌딩 청소원, 병원 환자 운반원, 빵공장 노동자, 급식업체 종업원, 텔레마케터, 보육교사, 간병인 등의 직업을 전전한다. 대부분의 직업이 여성이 종사하며 최저임금을 받는 일들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희망이 되지 못하는 노동의 절망을 이야기했다.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을 실제 체험에서 우러나는 글로 표현했고, 이를 통해 사회 제도와 시스템을 고발했다. 그러면서도 노동 현장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수행하고 있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노고와 헌신에 경의를 표했다.
오늘날 가난을 광범위하게 정의하는 말이 있다면 바로 '제외'라는 말이리라. 평범한 즐거움에는 하나같이 '출입금지' 표지판이 대문짝만하게 걸려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소비사회는 '출입금지'를 명한다. 이보다 더한 차별정책이 또 있으랴. '제외'는 도시 풍경을 살벌하게 만들었다. 이걸 사라, 저걸 사라며 소비자를 현혹하는 번쩍번쩍 빛나는 상점은 총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돈이 모자라 가장 싼 음식을 고르는 일은 결코 즐거운 쇼핑이 될 수 없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괴로움만 더해갔다. - 383쪽
2004년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최저생계비 계측에서 ‘가족 단위 외식’은 빈곤층 삶의 질을 놓고 벌어진 첨예한 논쟁거리였다. 당시 위원회는 4인 가구 기준 최저생계비 가운데 식비 항목에 가족 단위 외식 비용은 반영하지 않았다. 아니 제외됐다. 가난은 이처럼 기본적인 가족 구성원이 누려야 할 작은 권리들을 무참히 제외시켜 버린다. 분명 대한민국의 가구당 외식 횟수가 석달 평균 2.93회를 기록했지만, 가난한 이들의 회식은 여기서 제외되고 만다.
아내와 함께 시장을 볼 때마다 평범한 두부판에 널려 있는 값싼 두부와 친환경 두부라는 글자를 큼직하게 찍어놓은 메이커(?) 두부 사이에서 항상 갈등한다. 돈이 모자라 가장 싼 음식을 고르는 일은 결코 즐거운 쇼핑이 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가난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 그 경계선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