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가 된 만화가, 이현세 - 우리시대 마이스터 2
이현세 지음 / 예문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될 지 모르겠다. 내 젊은 날의 우상을 직접 만난 듯한 기분이 들어 책이 도착한 날부터 책장을 덮은 지금까지도 가슴이 벌렁벌렁 거린다.  
 
어릴 적 만화에 대한 기억은 '까치'와 '둘리'에서 시작된다. 이 '까치'는 <외인구단>의 까치가 아니라 육영재단이 발행했던 <보물섬>에 연재됐던 '떠돌이 까치' 설까치다.(내 기억이 맞다면.) 그 당시 시대 분위기에 걸맞게 우리 집에서도 '만화는 악(惡)'이었는데, 어쩌다 국민학교 1학년 때 생일 선물로 <보물섬>을 선물로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나는 <보물섬>과 거기에 실린 만화들에 반해 버렸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만화에 대한 열정은 거기서 일단락이 났다. 만화는 나쁘니까 보면 안 된다며 더 이상 사 주시지 않으셨던 것이다.

한 2년쯤 지나서 나는 다시 <보물섬>을 만날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포항에 살다 서울에 올라온 내가 반 아이들과 친해지지 못하면서 성적이 확 떨어지자, 어머니께서 자구책으로 좋은 성적을 냈을 때 <보물섬>을 사 주셨던 것이다. 다만 시험이 매달 있는 것도 아니고 매번 내가 좋은 성적을 얻지도 못해서, 띄엄띄엄 사서 보니 볼 때마다 새로운 만화거나, 스토리가 전혀 연결되지 않았지만 그저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까치와 둘리가 있는 것이다.(다른 만화들도 좋아는 했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역시 띄엄띄엄 본 탓이겠지...)
 
내가 이현세 씨를 좋아하는 이유는, 위의 이유에 플러스 알파로 그의 특이한 이력이 하나 더 붙는다. 언젠가 그의 삶을 다룬 방송물을 볼 일이 있었는데, 소위 '빨갱이' 집안이었던 것, 아들이 없이 일찍 돌아가신 큰아버지 댁에 양자를 들어갔던 것, 미대에 가려고 했지만 색약이라서 갈 수 없었던 것, 기존의 만화가들이 문하생으로 받아 주지 않아 순정만화가 밑에서 처음 펜을 잡았던 것 등 특별한 이력이 꽤 있었다.(이현세의 남성적이고 각진 그림체로 봤을 때 순정만화가 밑에서 처음 일을 배웠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 책에 보니 그 후에 다른 작가에게서도 만화를 배운 걸로 쓰여져 있다.)
하지만 가장 내 눈을 끌었던 것은 만화가가 되기 전의 에피소드였다. 만화의 꿈을 접고 일반 직장을 다니게 되었는데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장부고 서류고 온통 만화를 그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렸다고 한다. 그걸 보는 순간 내 가슴 속에 '아!'라는 부르짖음이 절로 나왔다. 이현세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왜 그가 만화가로서 이만한 위치에 오를 수밖에 없었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먼 길을 갈 때면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가기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늘 자전거를 타고 가는 느낌이다. 페달을 놓으면 자전거는 그 자리에 선다. 꾸준히 밟지 않으면 멈추고 만다. 누구에게 의지할 수도 없다. 혼자 힘으로 줄기차게 페달을 밟아야 한다. 그렇게 힘차게 밟을수록 자전거는 더 빨라직 힘도 덜 든다. 그래서 내 인생은 자전거와 닮았다. 어지간히 열심히 밟지 않으면 멈출 수밖에 없었기에 쉬지 않고 달렸다. 그렇게 먼 길을 넘어지기 싫어 달리고 또 달렸더니 여기까지 왔다.
-p245
 
그래서 마이스터 시리즈에 '이현세'의 이름이 보이자 냉큼 선택하게 되었다. 하나에 온 인생을 다 사른 장인의 삶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멋지고 감격적인 일이다. 그의 녹록치 않은 인생이 이 책 한 권에 다 표현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 책에 담겨져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를 가슴 벅차게 하니까 말이다. 게다가 제목이 '신화가 된 만화가'라지 않는가? 누가 지었는지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현세 씨를 빼놓고 지금의 한국 만화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하다못해 <천국의 신화>로 인해 있었던 기소와 항소까지 포함한다면 그를 신화(영웅)라 불러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이현세 씨의 만화를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서술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위인전이나 자서전처럼 시간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그의 연표에 따른 개인사 등을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아쉬운 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화가이니 '만화'에 대해서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게 당연하다 싶기도 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는 적은 편이지만 만화에 대해서는 성공한 만화든 실패한 만화든 가리지 않고 적나라하게 당시의 이야기를 꺼내 놓고 있다. 특히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서 실패한 <아마게돈>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까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역시 이현세 씨답게 솔직 담백하게 말해 주었다. 또한 이런 실패를 다른 이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게 '백서'를 발행하기도 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것은 나를 믿고 맡긴 투자자들을 봐서라도 영화에 더 비중을 두었어야 한다는 도덕적*사회적인 현실과 미래를 직시하지 못한 내 무지의 결과였다. 내가 총감독을 맡았던 이상 개인적인 작업이었던 <남벌>을 중단하고서라도 영화의 모든 작업을 이끌었어야 했다. 이런 책임을 분명하게 감당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죄의식을 안고 있다.
-p208
 
이 책을 보면, 이현세 씨가 오늘 날 '신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그가 능력이 뛰어났거나 운이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그리고 또 그리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만화에 대해 생각하고, '까치'라는 캐릭터를 잡기 위해 1~2년을 고민하고(그러다 하루는 한강에 가서 빠져 죽을까도 하고), 억울한 누명을 썼을 때는 자신과 만화 전체를 위해서 투쟁도 하고... 쉴새 없이 달리고 또 달려왔던 것이다. 스스로 이야기 하듯,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아 왔던 것이다. 끊임없이! 만화를 떠나 있을 때도 종이만 보면 만화를 그려왔던 사람이니, 만화를 시작했을 때는 오죽했을까?
그런 면에서 나는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누가 등 떠밀어서 하고 있는 게 아닌 내가 선택한 일,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열심히 해 왔는가를. 그렇게 하지도 않으면서 대우가 부족하다거나 운이 없다고 말하는 건 '폭풍이 지난간 들녘에 핀/한 송이 꽃이 되기를/기다리는 일은(정호승 '폭풍' 중에서)' 아닌가 하고 말이다...
 
나는 언제나 '이것이 마지막이다'란 생각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시간에 얼마나 예민한지 스토리 작가들과 작업하면서도 작가들이 구상에만 몇 개월 이상을 보내면 나는 그 아이템을 다시 찾아와 버린다. 그래서 다른 작가들에게 넘기거나 내가 직접 해버릴 정도다. 내가 내일 교통사고가 날 수도, 어떤 병에 걸리 수도, 혹 내 인기가 떨어져 지면이 없어질 수도 있고 가장 심하게는 내가 갑자기 싫어져서 그 작품을 안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기 의식은 항상 있는 법이다. 나는 이미 마흔에 그 생각을 했다.
-p115
 
이 책으로 알게 된, 그리고 내가 이현세 씨를 더 좋아하게 만든 사실은 <천국의 신화>로 인한 기소 부분이다. 그 일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도 '심의'로 점철되어 고사되어 가고 있던 우리 만화계의 숨통이 트일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 트이더라도 무척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이다. 이 일로 5년을 끌었고, 그 동안의 무리로 인해 심장까지 나빠졌지만 결국은 투쟁해서 무죄를 받아 나가는 모습. 어쩌면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만화가로서 그에게 주어진 '숙명'은 아니었을까 싶긴 하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많이 갈등하고 아파하면서도 끝내 져버리지 않은 것에 대해서 무한한 감사와 찬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반가운 사실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지옥의 링>이 드라마화 된다고 한다. 책에도 나오는 그 마지막 장면-엄지에게 자기가 맷집이 좋았던 게 아니라 사실은 맞을 때마다 무척 아팠다는 말을 고백하며 죽어가는-을 보면서 참 많이 울었던 작품이었다. 권투 대신 K1으로 각색하여 일본과 공동제작*방영된다고 한다. 이 작품이 나온 게 1983년이니 2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 흘러간 것을 반영하듯 배경이 됐던 스포츠도 바뀌는 게 당연하겠지? 그렇다면 과연 21세기의 까치와 엄지는 어떤 모습일까? 너무도 궁금하다. 이처럼 장인의 작품은 시대가 흘러도 계속 그 힘을 이어가는 것 같다. 이현세 씨가 추구하는 바대로 '까치를 뛰어넘는' 새로운 인물 혹은 '포스트 이현세'를 탄생시키기를 기대하면서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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