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 나이가 들어도 몸의 시간은 젊게
정희원 지음 / 더퀘스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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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전문의가 쓴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는 가속노화 사이클의 악순환과 그 근본적인 해결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가속노화를 늦추는 해결책으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인 내재역량 관리를 제안한다. 여기서 '내재역량'이란 2015년에 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한 개념으로 얼마나 건강하게 나이 들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를 말한다. 이 내재역량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써 저자는 미국병원협회와 미국노인병학회에서 만든 4M을 살짝 수정한 '이동성 Mobility', '마음건강 Mentation', '건강과 질병 Medical issues', '나에게 중요한 것 What Matters', 이렇게 네 가지 축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4M 건강법을 의학 및 과학적 측면은 물론 경제학, 인문학, 종교적 측면 등 다양한 분야의 이론과 연구 결과를 토대로 설명한다. 4M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4M의 도메인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만드는 선순환을 통해 가속노화 사이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계속 강조한다. 책 내용 중 몰입을 방해하는 단순당과 탄수화물은 수면제와 마찬가지이며 몰입에 도움이 되는 식습관은 채소와 단백질 위주의 식단이라는 사실이나, 근력이 개선되는 실제 주요 기전 및 '다양한 근육을 적당한 강도로 자극하는 일반인 수준의 근력운동은 웬만해서는 근섬유를 손상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알고 있던 통념 몇 개가 와장창 부서졌고, 이 사실이 나를 기쁘게 했다.



   적절한 운동으로 이동성을 건강하게 유지하라, 자세를 바르게 하지 않으면 운동도 소용없다, 상업적으로 쏟아지는 도파민 자극원 중독에서 벗어나라, 마음챙김으로 마음을 돌보며 마음의 엔트로피를 낮추는 훈련을 하라, 수면 부족에 시달리지 않도록 주의하라, 식습관 좀 올바르게 만들어라,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사회자원을 잘 형성하라, 소비자본주의의 세뇌와 잘못된 소비 습관에서 벗어나라, 올바른 경제관념을 가져서 노후를 든든하게 대비하라. 그냥 헤드라인만 읽으면 뻔해 보일 이런 다양한 해결법을 이 책은 뻔하지 않게 독자를 설득하고 있어서 꽤 흥미롭다. 저자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4M 건강법을 여러 연구 결과를 들이밀며 중요하다고 끊임없이 강조하는데, 책 전체에다 밑줄을 긋지 않는 게 되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설득력이 어마어마하다.


우리가 먹는 음식들이 뇌에 작용하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영화 <매트릭스 The Matrix>에서 네오가 빨간약을 먹어 매트릭스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과 비슷하다. 현대 식품산업이 만들어낸 중독의 굴레와 거짓말을 직시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가장 우스꽝스러운 사례는 몸의 염증을 줄이고 체내 독소를 배출해준다는 '해독주스'다. 어떤 재료를 갈고 짜 넣든 간에 탄수화물을 액체로 만들어서 들이켜면 즉각적으로 혈당이 상승하고 인슐린이 분비되며 곧바로 혈당이 떨어지기 때문에 몸이 정화될 리가 만무하다.

- 본서 174쪽


   생활습관 개선은 불가능하다고 전제하며 드러난 현상만 고치려 하는 다른 의사들과는 다르게 가속노화의 원인을 한 도메인에서만 찾지 않고 환자의 삶을 다면적으로 분석하여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현 노년내과 전문의인 저자의 태도가 마음에 든다. 특히 책에서 틈만 나면 불교의 삼독(인간의 고통을 만드는 근원)인 탐욕, 분노, 어리석음을 언급하며 이에 빠지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 그의 가치관도 참으로 매력적이다. 또한 대개의 자기계발서에서 한 가지 습관만을 더 열심히 유지하라고 강조하는 것에 반기를 들며, 생활습관 개선을 방해하는 방치된 요소를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자세는 무척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가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자꾸만 회의감이 밀려왔다. '내가 도파민 리모델링을 제대로 해내서 정제곡물을 끊을 수 있긴 할까, 빵이 이렇게나 좋은데?', '안팎에서 MIND 식단을 현실적으로 지켜낼 수 있을까?', '코로나19의 재감염률 상승과 더불어 치명률이 덩달아 상승하고 있는 이 시국에 책에서 말하는 대로 오프라인 모임 참여를 통한 사회적 관계 형성이 과연 가당키나 할까? 강한 연대(가족)도 약해지고 있음을 느끼는 마당에...', '헬스장 가기가 여전히 두려운데... 이 책에서 제안하는 대로 운동 습관 형성이 그리 쉽게 자리 잡을 수 있으려나? 집에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걸!'

   이러한 내 마음을 읽어낸 듯 저자는 말한다. 겹겹이 쌓여있는 정신적 걸림돌을 극복해야만 일상생활을 다면적으로 개선하는 선순환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본능을 따르고자 하는 심리적 기제에 유의하라고. 많은 사람이 이 책에 나오는 조언을 따르지 못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의 기본 심리 때문이라고. 귀찮더라도 그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능동적으로 행동에 나서십시오, 그리하면 급속하게 골골대는 노년이 아닌 느리게 늙어가는 활기찬 노년을 맞이할 수 있을 터이니!


   지금 거기서 '난 이미 글러먹은 것 같아, 이리 살다 죽을래'라고 생각하는 당신을 위한 조언 또한 저자는 잊지 않았다. 아래에 인용할 테니 깊이 새겨들으시라. 그리고 이 책을 완독해보길 바란다. 노화에 대한 생각과 세상을 보는 눈이 동시에 달라질 테니.


자신은 이미 늦었으니 즐겁고 편하게 살다가 죽겠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이런 자세는 자신에 대한 폭력일 뿐 아니라, 고장 난 자신을 상당 기간 돌보아야 할 주변 사람들에 대한 무책임한 테러행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자신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보자.

- 본서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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