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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 ㅣ 어린이작가정신 클래식 9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한상남 옮김, 찰스 산토레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22년 7월
평점 :
몇 살 때였더라. 아주아주 어린 꼬꼬마였을 무렵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그림 동화로 처음 읽고 느꼈던 그 충격은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슬픈 엔딩에 가슴이 너무 아려 거의 한 달 동안 <인어공주> 생각만 했다. 어린이용으로 쉽고 짧게 편집된 버전이었음에도, 어린 나는 너무 슬프게 느꼈었나 보다. 뭔가에 홀린 듯 멍하니 한 달을 보냈으니 말이다.
나이를 좀 더 먹은 후 원문 그대로 읽은 <인어공주>는 여전히 슬프게 다가왔다. 어른의 눈으로 다시 만난 <인어공주>는 지금의 사고방식과는 다소 동떨어진 설정이 눈에 살짝 들어오긴 했지만, 어릴 때 느꼈던 감동은 그대로였다.
막내 공주는 자기 목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이 기뻤다. 하지만 막내 공주는 멋진 왕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왕자와 함께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을 갖고 싶었다.
- 본서 21쪽
안데르센 동화 중 마음이 아프게 느껴지는 동화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항상 이 <인어공주>를 가장 먼저 꼽을 정도로 인어공주의 사랑은 지금도 너무 슬프다. 그래서 가슴 아픈 이 동화를 한동안 읽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략한 부분이 없는 원작 내용과 찰스 산토레의 그림으로 완성된 <인어공주>를 본 순간 그 생각이 싹 사라져버렸다.

그린이 찰스 산토레는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많은 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뉴욕 현대미술관과 필라델피아 자유도서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은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그의 출중한 그림 실력은 본서 <인어공주>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각기 다른 색깔과 무늬를 지닌 물고기와 바다의 물결, 그리고 물거품은 그 디테일이 수준급이어서 넋을 잃게 만든다. 여섯 인어공주들의 아름다움은 글로는 표현하기 힘들 만큼 아름답다. 섬세하게 표현한 인어공주의 검고 긴 머리카락과 우아한 몸의 곡선, 매력적인 표정, 비늘, 화려한 장신구들은 찰스 산토레의 상상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보여준다. 그의 뛰어난 표현력은 이 환상적인 바닷속 공간이 어딘가에 실재하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짙고 푸른 녹색 빛깔로 에워싸인 차가운 바다 공간과 대비되는, 노란색과 붉은 계열 색깔로 표현된 범선 및 지상 궁전의 색감은 인어들의 세상과 인간들의 세상을 극명히 나누고 있다.
인어공주는 다시 한번 왕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 곧바로 온몸이 물거품으로 녹아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다 위로 태양이 솟았다. 따뜻한 햇볕이 바다의 차디찬 물거품 위로 부드럽게 쏟아졌다. 인어공주는 죽음의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머리 위로 빛나는 태양과 이리저리 떠다니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공기 방울 수백 개를 보았다.
- 본서 42쪽

인어공주의 맹목적인 사랑과 왕자의 이중적인 태도 및 배신, 큰 희생이 따르는 거래를 제안하는 마녀 등 인어공주를 애절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요소들은 때때로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어공주> 이야기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인어공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신의 목소리를 버릴 만큼 뜨거운 사랑을 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진실했으면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를 선택한 왕자의 심장을 찌르고 다시 인어로 돌아갈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물거품이 되는 걸 선택했다.
어린 시절 이 동화를 읽지 않았다면, 나도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인어공주의 사랑은 참으로 순수해서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게 곧 인어공주에게 독이 되었듯 나도 그렇게 쓰디쓴 맛을 본 경험이 있다. 찰스 산토레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가득 채워진 <인어공주>는 이러한 쓴맛도 달콤한 맛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진실한 사랑이라는 건, 달콤 씁쓸한 초콜릿처럼 원래 그런 것이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