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연대기 -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과 위대한 미술의 만남
이언 자체크 엮음, 이기수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그제는 태풍 '링링'이 한국을 강타했지요. 링링이 수도권 근처에 왔던 순간 저는 방 안 창가에 서서, 무섭게 덜컹거리는 베란다 창이 깨질까 봐 걱정하면서도 눈은 창 너머의 공원을 계속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세찬 바람에 쉴 새 없이 쓰러질 듯 춤을 추는 나무들이 여름 내내 정신없이 바빴던 저의 머릿속을 시원하게 비워 내주는 느낌이 들어서, 아마 태풍 링링이 수도권에 도착하고 떠나갈 때까지 -거의 6시간을- 창밖만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바람에 쓰러질 듯 흐느적대는 나무들을 휴대폰 카메라로 줌인해서 찍어보았습니다. 찍고 난 후 사진을 보니 마치 유화물감을 쓴 듯한 효과가 느껴졌습니다. 굉장히 신기했어요. 사진을 보고 다시 창밖을 보고 있으니, 강풍에 춤을 추는 저 공원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태풍 링링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그림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저를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생각해 보면 미술과 역사는 참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요. 최근 일주일 동안 틈틈이 읽어본 책 <미술사 연대기>는 이러한 관계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끔 매우 잘 구성된 책이었습니다.



   이 책의 서론에도 언급되고 있듯이 보통 미술사 개론서는 역사적 시대와 미술 분파, 미술 운동으로 주제를 나누어 설명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 책은 그런 형식을 탈피하고 있습니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 세계를 중심으로 일어난 미술 발전을 연대표를 이용해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핵심적인 예술 작품들을 함께 연관 지어 설명하고 있는데요. 정말 기막힌 방법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미술사 책을 저는 본 적이 없거든요.


   덕분에 이 책을 읽는 내내 매혹적인 미술 작품 감상과 더불어 역사 공부도 간만에 같이 할 수 있었습니다. (연대표를 따라 쭈욱 읽어가기만 하면 되니까요!) 이 책은 한 명이 주도적으로 기술한 게 아니라 여러 명의 기고자들이 쓴 내용을 정리하고 편집해놓은 미술서인데요. 미술사 분야의 각기 다른 전문가들이 기고했기에 정확도가 더욱 올라간 느낌이 들었고, 그 덕에 읽는 내내 아주 쾌적한 미술사 여행을 하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예술의 태동기인 고대와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와 바로크에 도착한 뒤, 로코코를 거쳐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으로 위시되는 낭만주의를 지나서 근대에 도달한 후, 잭슨 폴록과 데미언 허스트가 기다리고 있는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이 책 한 권이면 미술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미알못(미술 알지 못하는 사람)'도 역사적 사실들을 기반한 미술사적 지식을 개괄적으로 습득할 수 있을 겁니다. 저 같은 미알못도 역시 그랬으니까요. 1948년 물리학자 조지 가모프와 랠프 앨퍼가 '빅뱅 이론'을 만든 2년 후 잭슨 폴록이 그 유명한 '넘버 1, 1950(라벤더 미스트)'을 그렸다는 걸 나란히 연결 지어 놓고 있는 책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런 면에서 미술을 전공했든 안 했든 미술사를 잘 모르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픈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