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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수채화 교실 - 매일매일 행복을 느끼게 하는
윈저 지음, 이나경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수채화'. 이 매력적인 채색 기법과 나와의 인연은 그리 깊지 못하다.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완성한 포스터나 상상화, 석고 조각 등 이런 작품에선 -본의 아니게 자랑 같지만- 높은 점수를 늘 유지했다. 하지만 수채화는 미술학원을 다니고 있는 아이들의 전유물이었다. 반 전체를 훑어보면 미술학원을 다니는 학생과 안 다니는 학생은 수채화에서 늘 드러날 정도로 극명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미술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전혀 부럽지는 않았던 것이, 그 아이들이 그려낸 수채화는 하나같이 기법이 똑같아 보여서 개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천편일률적인 수채화 작품들을 보며 멋진 수채화란 미술책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되자 안 그래도 친하지 않은 수채화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까지 가지게 되었더랬다. 하지만 그 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기저기서 보아온 아름다운 일러스트 속 수채 기법은 여전히 내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흔들어댔다. 그러다 결국(마침내!), 한 미술책의 효과적인 광고에 넘어간 건지는 몰라도 어쨌든 '수채화를 한 번 해볼까?' 하는 용기를 처음으로 조심스레 내어보게 되었다. 나에게 이 용기를 내게 해 준 책의 이름은 다름 아닌 <나만의 수채화 교실>.

한가로운 오후,
나만의 수채화 시간을 누려보세요.
[본서 면지에서]
고운 색감의 수국화와 나뭇잎들이 넘실대고 있는 서정적인 표지부터 아주 그냥 내 맘을 흔들어대고 있는 책이다. 애초에 수채화를 조금씩 공부해보겠다고 난생처음 마음먹은 것도 어쩌면 이 책의 아름다운 표지와 면지에 적힌 저 짧은 글귀가 크게 한몫했을 거다. '나만의 수채화 시간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렸다. 물론 물감이 내가 마음먹은 대로 잘 움직여주고 있다는 흐뭇한 상상 아래 말이다. 그렇게 이 책과 함께 수채화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진 지도 거의 일주일이 되어간다.
저자 '윈저'는 지인들이 초보자에게 맞는 수채화 교본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마다 자신의 생각과 완벽히 일치하는 책이 별로 없어서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책 전반에 걸쳐 초보자들을 배려하고 있다는 게 잘 느껴진다. 이는 책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Q & A'와 'Tips'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특히 이 책에 수록된 모든 그림 견본에 저자가 쓴 종이, 물감, 붓의 브랜드를 구체적으로 적어놓음으로써 실용성을 더하고 있다.

총 10 파트로 구성된 이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수채화의 기본 도구인 종이, 물감, 붓 등이 소개되고 있다. 종이 재료에 한해선 물감에서도 역시 제안하고 있는 '초보자를 위한 추천' 제품뿐만 아니라 저자가 자주 사용하는 브랜드를 추가로 적어놓은 게 눈에 띈다. 그 덕에 물감만큼 중요한 재료가 종이라는 걸 느꼈다. 또한 수채화 종이 표면에는 아교가 한 층 칠해져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는데, 그래서 인터넷 쇼핑의 너무 낮은 금액의 수채화 종이를 살 경우 이 아교가 떨어져 나간 재고품일 확률이 굉장히 높으니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별표 세 개!).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그림 재료를 찾으려면 반드시 연습 기간을 거쳐야 한다는데, 지금 나와 같은 속도라면 그 기간은 어마어마하게 길 거라 예상된다(...노력 없이 좋은 결과는 없을 지니).
파트 1의 마지막에 저자는 수채화 실력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따라서 하기'라며 단풍잎 그리기로 바로 워밍업에 들어가는데, 이걸 따라 그렸던 지난 일요일을 떠올리면 악몽처럼 느껴진다. 단풍나무의 잎과 열매를 그리는, 이 짧은 수업을 긴 시간 동안 따라 그린 뒤 난 여러 가지를 깨달았다. 내가 그림을 그리지 않은 그 긴 세월 동안 내 그림 실력이 얼마나 많이 퇴보했는지, 그리고 그림을 틈틈이 그린다고 하며 얼마나 농땡이를 쳤는지, 그에 비해 저자 윈저는 스케치는 기본이요 수채 채색이 뛰어나다 못해 얼마나 수준급인지를, 또한 이 세상에 뽀글이 퍼머의 밥 아저씨 같은 사람은 많다는 걸 말이다.
스케치할 때부터 그다지 편치 않았던 내 마음은 채색하는 동안 생각대로 되지 않는 붓 터치에 그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저자 윈저는 저렇게 예쁘게 잘만 색칠하는데, 나는 저리 번져 나가고, 이리 번져 나가고, 열매에 그린 줄무늬마저 삐뚤빼뚤... 하아. 파트 2의 조색까지 아직 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한계를 느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이 책을 따라가며 바로바로 따라 그리려고 했던 노선을 변경해서 일단 책을 끝까지 읽어본 뒤따라 그리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조색, 색칠과 붓질, 색채 혼합 등 모든 파트들을 붓을 들지 않고 하나하나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읽어 나가는 동안 여러 노하우와 팁들을 꽤 많이 얻었다. 앞으로 차차 실제 적용해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일단 단풍잎으로 워밍업 할 때보단 이론상의 지식이 꽤 많아져서 흡족하다고나 할까. '아트마스킹 플루이드'와 '소금 뿌리기' 등 재밌는 기법들을 알아가며 멘붕이었던 내 마음도 서서히 회복되었다. 이 책의 마지막 파트인 '간단한 일러스트 창작'은 커녕 사진을 보며 꽃을 그리는 단계조차 버거운 지금의 나지만, 서툴다고 한들 내가 수채화를 즐기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나는 수채화랑 친해지기로 결심했고, 그 길에 이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가득한 <나만의 수채화 교실>이 많은 도움을 줄 거라 기대한다.
저자 윈저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수채화라는 장르는 엄격하지 않고 정교하게 그릴 필요도 없습니다.
소박하지만 자유롭게 그리는 것도 굉장한 재미가 있지요.
우선 여러분만의 화풍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1장 때 그린 그림을 보면 자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본문 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