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미디어 인간 이상은 이렇게 말했다
김민수 지음 / 생각의나무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모든 현전은 비동시적인 상이한 시간들의 혼합이며, 한 시대의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사실 다음에 올 뿐만 아니라 시차로 다가온다.”(p.245)

제5장 「시각 예술의 관점에서 본 李箱 詩의 혁명성」을 소실점으로 해서 벡터적 궤도의 형태를 지닌 이 책이 담아내고 있는 담론의 궤적은 압도적이다. 읽어내기가 수월하지도 않을뿐더러 읽었다고 해도 건질 수 있는 건 - 얄팍한 전공 지식을 뽐내는 피리스틴들을 포함하여 - 비선형의 곡선을 그리는 내 무지의 궤도라고 하면 지나칠까?

저자는 ‘인문학의 위기’ 담론이 팽배한 이 시대에 위기의 정체는 학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문하는 사람들의 지적 태도라고 꼬집으면서, 「이미지 시대, 학문의 道」(제1장)를 설명하면서 이 시대의 주류를 이루는 디지털 풍경에 대한 논의 -「전자적 가상 공간의 문화적 정체성과 디자인의 미래」(2장), 「사이버커뮤니케이션의 삶과 죽음」(3장), 「디지털 주사위 던지기:하이퍼미디어와 시각문화」(4장) -를 전개한다. 이러한 논의는 제5장 「시각 예술의 관점에서 본 李箱 詩의 혁명성」으로 모아지며 이 논문의 탄탄한 백그라운가 되어준다. 마지막 장 「멀티미디어 인간, 이상은 이렇게 말했다」는 이제까지 논의에 대한 저자의 재발견, 이상 시의 재문맥화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부제-디지털 풍경・마음의 道‘가 말해주듯 이 책은 저자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풍경을 좀더 침착하게 바라보고 마음을 추스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기획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리 가볍게 읽어 넘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절대 아니다.

“현대시의 모든 이론은 다만 「詩學」에 붙여진 정교한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이 책은 이상 시에 대한 정교한 주석에 다름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지나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번째 불연속 -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共進化)
브루스 매즐리시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저자는 ‘인간과 기계는 함께 진화한다’는 테제를 역사적으로 밝히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이제껏 인류는 세 가지 불연속을 거치면서 그 불연속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해왔고, 작금에 있어서 네 번째 불연속과 마주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인간은 자신이 기계보다 특별하고 우월한 존재”라는 믿음이다. 저자는 이러한 믿음, 즉 기계에 대한 궁극적 불신이 인간의 본질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방해인자라고 보고 인간과 기계의 위상에 대해 진화론적 관점으로 접근한다.

이제껏 인류는 세 가지 불연속을 경험하였다. 그 첫 번째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중심은 지구가 아님을 밝힌 것이고,, 두 번째는 찰스 다윈이 인간이 동물의 후손이라는 점을 밝힌 것이며, 세 번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존재를 밝혀 인간이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이제 저자는 인류가 경험한 세 가지 불연속을 지나 네 번째 불연속에 직면해있다고 주장하며, 그 불연속을 걷어내고자 진화론적 관점으로 기계와 인간의 본질을 추적하여 인간과 기계 사이의 불연속을 걷어내고자 한다.

저자는 I부에서 17세기의 쟁점이었던 ‘동물-기계’문제로부터 출발하여, 그 후의 광범위한 자동인형-현대 로봇의 전단계-에 관한 논의를 다루고,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인간 진화의 새로운 방향-기계를 향한-을 분석한다. II부에서는 주로 다윈을 효시로 한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를 검토하면서 프로이트와 파브로프를 통해 인간 본성이 가진 두 부분의 접점, 즉 동물과 기계가 만나는 곳에 초점을 두고 논의를 전개한다. III부에서는 이 시대까지 있어온 동물의 ‘기계화’를 위한 인간 노력의 절정인 ‘유전자 혁명’그리고 컴퓨터와 뇌과학, 특히 인공지능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논의를 전개해간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이제까지의 논의를 평가하면서 기계가 점증하는 추세에서 진화- 넓은 의미로-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11
J.G. 헤르더 지음, 강성호 옮김 / 책세상 / 200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서 헤르더가 기술하고 있는 것은 단순하다. 계몽의 중심이 되는 이성은 역사의 진보를 보장해주는 것이고, 자연법칙은 이러한 이성의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귀결될 것이다. 신의 대리인인 인간만이 이러한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며, 사용하게 될 것이며, 완벽한 인간성을 실현할 것이다. 헤르더가 기술하고 있는 것은 명쾌하다. 그러나 그것은 관념론에 지나지않는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는 점도 확실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춤추는 죽음 1
진중권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생의 한가운데에 우리는 죽음에 사로잡혀 있다”

이 대전제 아래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서양미술에 나타난 죽음의 미학을 밝혀보겠다는 필자의 기획은 자못 의미가 있어 보인다. 필자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가 죽음에 관한 역사적 고찰을 위해 세운 틀을 원용하여, 서양 미술사에 나타난 죽음을 역사적이 아닌 미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필자가 원용한 틀은 1. 우리의 죽음(중세 초기에서 중세 전성기), 2. 나의 죽음(중세 정성기에서 르네상스), 3. 멀고도 가까운 죽음(르네상스에서 바로크), 4. 너의 죽음(낭만주의 시대), 5. 반대물로 전화한 죽음(현대)의 다섯 가지로 분류된 것이다.

이 책에서 필자는 머리말에서 독자로 하여금 유럽의 역사 속에서 죽음에 대한 관념의 변화를 추적하는 것(첫 번째 목적)과 도상적 지표에 대한 초보적 이해(두 번째 목적), 죽음의 미학적 성취(세 번째 목적)을 의도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는 동안 필자가 의도했던 세 가지 목적 중 두 가지는 어느 정도 실현된 듯 보이나 마지막 목적, 즉 독자로 하여금 ‘죽음의 미학적 성취’를 이루게 하겠다는 목적에는 다다르지 못한 것 같다.

혹 그의 또 다른 저서인 <미학 오딧세이> 1,2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도 반복되는 그의 서술방식에 식상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그의 서술방식은 키치적 스타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또한 도상학 혹은 도상해석학에 관한 입문서를 한 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아니면 그에 준하는 교양서) 그의 해석도 그저 그런 수준이라는 것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관건은 그가 의도했던 마지막 목적(이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인데, 밝혀 보겠다던 죽음의 美는 그의 글쓰기에선 실종된 듯 보이고, 초보적 수준의 도상해석학만이 누수된 미학적 분석의 여백을 땜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칭찬할 만한 것이다. 그가 의도했던 두 가지 목적은 충분히 실현될 수 있을 만큼 재기발랄하게 꾸며져 있으며, 도록을 수집하기 위해 발품을 판 그의 노력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윤리 21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 사회평론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꽤 정치한 주제를 간결한 필치로 비교적 평이하게 서술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잘 쓰여진 책 같다. 이 책에서 가라타니는 '도덕'을 공동체 사회에서의 규범으로, '윤리'를 코스모폴리탄의 도덕으로 규정하고, 윤리의 문제를 개인에서 사회로, 국가로 까지 확장시켜 파헤친다. 주로 칸트의 '자유'개념을 '윤리'의 문제와 불가분의관계로 파악하여 논지를 전개해나가고 있는 이 책은 근대사회에 있어서의 '윤리' 문제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가라타니의 기획이랄 수 있다.

일찌기 페르디난드 퇴티스가 게젤샤프트적 특성에 주목하여 인간 본래의 자연적인 '본질의지'가 억압되고, 모든 인간적, 사회적 관계를 각자의 이익과 목적에 따라 구획하는 '선택의지'가 지배적으로 되는 과정을 추동하는 근대성을 비판하며, '윤리'의 문제를 제기하여 '협동조합 기업'을 새로운 사회의 기반으로 봐야한다는 비젼을 세웠듯, 가라타니는 맑스의 코뮤니즘 -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 연합사회 - 에 기반을 둔 '생산협동조합의 연합사회'에로의 가능성을 언급한다. 한편 <윤리 21>은 '윤리'의 배면인 '원인'과 '책임'에 관한 글이기도 하다. 어떤 '윤리'를 다루는 데 있어서 '책임'이 윤리의 완성이듯, 가라타니는 '책임'의 문제 역시 정밀하게 다룬다. 특히 칸트의 '사적자유'에로의 희망과 그것을 전제로 하는 '책임'에 대한 정치한 내용이 상세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