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과 어울릴 때 그 사람과 이 '왠지 모르게'라는 감각에 바탕한 상호이해가 가능하냐 아니냐를 판단하여, 호흡이 맞지 않을 때는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사람이 아니려니 하며 서서히 멀리하곤 했다.-30쪽
공적인 슬픔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슬픔이란 한 사람 한 사람이 견뎌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진정한 의미의 공적인 분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분노나 슬픔을 불특정 다수의 동포와 나누어가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아름다운 환상에 불과하다. 아픔이란 우선 개인에 머물러 있음으로 해서 구체화되는 것이다.-65쪽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왠지 모르게' 말하게 하여 상처를 드러내게 하는 인간은 무관심하고 냉담한 타인보다 위험한 존재가 아닐까?-94쪽
회사를 그만두고 더 이상 상사나 동료와 밥을 먹지 않고 친구도 안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사람이 있기에 비로소 나는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타인과 만나지 않으면 나는 무너져 내릴거다.-61쪽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예상하는 것과 다르다. 그저 온몸을 귀로 삼아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거다.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자신들이 평균대 위에 있다는 것만 안다. 이해는 불가능하고, 오해만이 가능하다. 모른다는 사실을 더 깊이 확인하고 싶어서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113쪽
남녀 사이에도 우정은 샘솟는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우정을 지나치게 깨끗한 걸로 생각해서다. 우정이라는 건 친밀감과 질투와 에로스와 의존심을 믹서로 갈아 만드는 것이다. 당연히 끈적끈적하다. 연애 비슷한 것과 성가신 기분을 뛰어넘어 우정은 계속된다.-132쪽
선입관과 고정관념은 살면서 경험 속에서 축적되는 거니까 피할 수는 없죠. 그런데 문제는 그 고정관념 속에서 편견이 생기고 편견은 작은 차별이나 폭력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위험한거에요.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성질이 급하더라' 여기까지는 고정관념이죠. 하지만 '이탈리아 사람은 성질이 급하니 재수 없어, 한 대 패줘야지'라는 결론으로 흐르면 심각해지는 거예요.-15쪽
아버지는 내게 모든 걸 다 잃어도 품위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것만이 나의 유산이다.' 아버지는 그 말을 하길 좋아했다.-151쪽
내가 지켜야 할 건 품위가 아니라 자존심이라는 것.-152쪽
슬럼프에 빠져버렸다.슬럼프는언젠가는 극복될 운명을 갖고 있기에존채가치가 있는 것이지만몸이 아픈 것과 함께 와버리니기약 없는 무기력에빠지고 말았다.-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