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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남은 아름다운 날들
베스 켑하트 지음, 윌리엄 설릿 사진, 공경희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챈티클리어라는 정원 가까이에 사는 저자. 이 책은 그녀가 챈티클리어와 2년간 조우하며 쓴 짧은 산문집이다. 소망의 봄과 빛나는 여름, 청명한 가을과 쓸쓸한 겨울을 두 번 나는 동안 저자는 자연의 위대함, 정원사의 인내가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책 속지를 세 장쯤 넘겼을 때 나는 아득해졌다.
'대지와 나무에 핀 고운 꽃송이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바칩니다.'
저자의 마음이 담긴 한 줄 헌사다. 내가 이 책을 읽을 자격이 과연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공원도 수고로워하며 자주 가지 않는 나다. 미안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책을 한 장씩 넘겨 보았다. 그리고 나는 곧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과 서정적인 문체의 글에 매료되었다. 자연이 그녀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 것일까?
'가끔 그 땅에 내가 심어지고 싶었다. 차라리 내가 꽃이 되고 싶었다.'
'정원은 어떤 비유든 어울린다. 정원은 음악이고 정원은 캠퍼스이고, 정원은 성만찬이요 희생이다.'
정말 아름다운 말이다.
또 정원사들이 겨울을 준비하는 모습은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9월이 오고 10월이 11월로 넘어갈 즈음, 챈티클리어에서는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해두고 싶다.(중략) 그러나 정원사들은 계속해서 일했다. 다질 것을 다지고 씨앗을 털어내고 거적을 씌워야 될 곳에는 거적을 씌웠다. 정원사들은 맡은 일을 하느라 분주했다. 그들은 계절을 존중하는 법을 안다.'
우리는 모두 정원사다. 주어진 삶을 가꾸는 정원사다. 맡은 일을 하느라 분주해야 하고 자신의 삶을 존중해야 한다. 몸이 흙투성이가 되고 혹은 돌을 고르고 잡풀을 뽑다가 손이 베일지라도 쾌활하게 삶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나누어 달라고 부탁할 때 흔쾌히 그것들을 내어 주어야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연과 삶을 사유하는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 정원사로서의 내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라도 열매를 위해 무언가를 심어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수고하고 인내해야 한다. 땅에 희망을 심고 믿음을 가지고 지켜봐야만 한다. 그리고 정원의 주인이 와서 수확한 것을 내보이라고 할 때 성실한 정원사로서 자신있게 열매를 내어 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내 생에 남은 날은 아름다울 거라는 확신이 들어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