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미쳐보자

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라고 해서 이해하기 어렵고 읽는 데 심호흡이 필요한 책일 줄 알았다. 생각보다 편하게 읽혀서 참 다행이었다. 작가가 뜻 풀이를 일일이 해 준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마이너들의 세계가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쉽게 말해 광기와 열정이 녹아 있던 그네들의 삶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 주고 있는 책인 것이다. 더함도 덜함도 없이 딱 그것이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쳐야 미치는 것이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1.벽癖에 들린 사람들

2.맛난 만남

3.일상 속의 깨달음

 

1장 속엔 책에 미친 사람, 한 권의 책을 수만, 수억 번씩 읽은 사람, 천재적인 천문학자 등 시대를 잘못 타고 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특히 나는 굶어 죽은 천문학자 김 영의 이야기에서 가슴이 참 아팠다. 작가가 직접 든 주인 잃은 개의 비유나 홍길주가 '세상은 재주 있는 자를 결코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쓴 문구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능력 있는 사람이 손가락질당하는 세상, 모자란 것들이 작당을 지어 욕을 하고 주먹질을 해대는 사회, 그러고는 슬쩍 남의 것을 훔쳐다가 제 것인 양 속이는 세상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라고 작가는 한탄한다.

 

2장에서는 가족, 친구, 사제간의 특별했던 만남에 대한 일화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그 중 나는 허균과 기생 계랑의 우정이라는 부분에 관심이 갔다. '조선시대에도 남녀간에 우정이라는 것이 존재했을까, 더구나 상대는 기생인데?' 하는 의구심이 제목을 보면서 떠 올랐다. 계랑은 미색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지만 멋과 정이 넘치는 기생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와 허균은 시문에 대한 공감, 거문고의 흥취, 불교에 대한 심취까지 공유하는 부분이 많았기에 우정을 나눌 수 있었고 계랑이 병을 얻어 죽은 뒤에 허균은 시를 지어 애도했다고 한다.

"그대는 음란함을 즐기지 않았고 나는 난잡함에 미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오래 우정을 지속할 수 있었다."

허균의 솔직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좋은 우정을 나누던 이성 친구를 잃은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씁쓸해지면서도 부러웠던 대목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지식인들이 선문답하던 모습이 인상에 깊이 남는다. 사물을 보는 특별한 시각과 지혜에 혀가 저절로 내둘러진다. 단순한 지식의 차원이 아니다. 세계와 우주를 아우르는 소소한 듯 보이지만 광대한 어떤 것이 담겨 있다. 특히 정약용 선생의 그림자 놀이에서 나는 놀이 이상의 무엇을 보았는데 나는 선생이 천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가 세검정을 구경하는 법을 보면서 우리가 놓치고 살고 있던 여유와 멋에 잠시나마 한껏 취할 수 있었다. 저자가 "그의 마음자리를 그리워한다."고 책에 적었는데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또 조정 일을 일명 땡땡이치고 유람을 떠났던 다산의 모습에서 나는 피식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인정은 비슷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며칠 바빠서 읽지 못했던 이 책을 오늘 몇 시간동안 마무리하면서 참 즐거웠다.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땐 흡사 딴 세상에 갔다 온 사람처럼 잠시 멍해졌다. 나는 왜 이다지도 마이너들에게 마음이 끌릴까, 이유를 생각해 보기도 하고이제부터라도 미칠 수 있을까 고민도 해 보았다. 요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 미칠 수 있는 게 아닐까? 거기에다 나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친구든, 스승이든 누군가를 만난다면 제대로 미칠 수 있을 거 같다. 아니, 이미 내 가까이에는 나를 미치게 하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또한 미쳤던 사람들은 대부분 책과는 뗄레야 뗄 수 없던 사람들이었다는 점도 다시 상기해야 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