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왕
니콜라이 바이코프 지음, 김소라 옮김, 서경식 발문 / 아모르문디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동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은 보통 우화소설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과 세상에 대해 우의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사용되는 방법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위대한 왕>은 일련의 우화소설들과는 사뭇 다르다. 동물의 세계를 다룬 논픽션적인 이야기와도 다르다. 분명히 소설로 분류될 이 책은 주인공인 왕이 태어나서 인간과 문명에 맞서 대립하다 죽기까지의 과정이 사실적으로 잘 그려져 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한 때는 20년도 더 지난 아주 오래전 일이다. 부모님이 사주신 소년 소녀 세계 명작 전집에 이 책이 들어 있었다. 당시 내가 사랑했던 작품들은 <빨강머리 앤>이나 <작은 아씨들>, <15소년 표류기>와 <모히칸 족의 최후> 같은 책들이었지만 이 책 <위대한 왕>도 워낙 소재가 독특했기 때문에 자주 들춰보았던 기억이 있다. 우화를 제외하고 동물이 주인공이었던 유일한 책. 당시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만주 일대를 쥐락펴락했던 호랑이 왕과 현명한 인간 퉁리에 대한 경외감, 문명을 앞세워 숲을 파괴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희미하게나마 떠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완역된 책이라는 소개글을 접하고는 이 책을 만나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사자보다는 호랑이를 더 좋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자와는 달리 호랑이는 우리 땅에 살았던 동물이기 때문이다. 옛날 이야기에 호랑이가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가. 곶감과 호랑이 이야기, 토끼와 호랑이 이야기, 남매와 호랑이 이야기... 효자나 효녀 이야기에도 단골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호랑이다. 때로는 두려운 존재로, 때로는 어리석은 존재로 혹은 신성한 존재로 이야기에 나타난다. 그만큼 친숙하다.

 

그래서인지 니콜라이 바이코프가 그린 호랑이 이야기는 어렸던 내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건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시선이 아닌 호랑이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라는 점, 호랑이가 보통의 옛날 이야기에서처럼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라는 것... 이 책에서 인간은 한낱 어리석은 존재로 그려진다. 한쪽에서는 숲을 파괴하고 문명을 신봉하면서 인간의 우월성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다른 한편에선 자연을 종교화해서 맹신한다. 좁은 울타리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자신의 머리에 손수 굴레를 씌우는 인간의 모습과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만주 일대를 누비며 그 땅의 왕으로 군림하던 왕의 모습이 묘하게 대비되고 있다. 자연의 섭리는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는 극명하게 다르다는 걸 바이코프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지은이 바이코프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만주로 망명해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만주의 밀림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책의 사실적인 묘사는 이러한 작가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가 손수 그렸다는 삽화도 세심한 관찰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훌륭하다. 비록 현 페이지와 연결되는 그림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 한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진짜 한국 호랑이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동물원이나 에버XX에 사는 호랑이들로는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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