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기담이란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뜻하는 말로 다른 말로는 기화라고도 한다. 이상 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기담을 좋아한다. 풀벌레 소리 요란한 여름 밤 이불 뒤집어 쓰고 친구들과 귀신 이야기를 하면서 꺅꺅거린 적도 있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불 꺼 놓고 TV에서 방영하는 호러 영화를 보며 내 심장 뛰는 소리를 즐기는 짓(?)도 해봤다. 해마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공포를 소재로 한 영화, 만화, 소설이 시중에 쏟아진다. 그리고 올 여름 일본 중견 작가 아사다 지로가 기담집을 들고 우리 곁을 찾아왔다.

 

<장미도둑>이란 단편집을 통해 처음 만난 아사다 지로의 첫인상은 '매끄러움'이었다. 장편도 좋지만 사실 나는 단편을 더 좋아한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간결한 맛도 좋고, 짧은 스토리 안에 담긴 작가의 단순 명료한 메시지를 듣는 것도 굉장히 즐겁기 때문이다. 아사다 지로의 매끄러운 글 솜씨는 단편뿐 아니라 장편에서도 잘 드러난다. <장미도둑>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자 지인이 그의 장편 중 <지하철>을 소개해 주어서 읽어 보았다. 역사가 오래된 일본의 지하철을 소재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미한 소설 <지하철>은 굉장히 독특했다. 지하철을 중심으로 얽히고 설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단 두 편으로 이 작가에 대한 신뢰가 제법 쌓였다. 그리고 세 번째로 만나게 된 작품이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이다.

 

서두가 길었다. 본론은 간단히 말하자면 이 책, 평작 이상은 된다. 전편들을 통해 검증된 그의 매끄러운 입담이 이 책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사실 기담의 소재가 아주 독특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같은 이야기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재미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어디서 본 듯한, 약간은 식상한 듯한 소재의 글들을 모았음에도 제법 맛깔스러운 이유는 아사다 지로의 재구성 능력이 그만큼 남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렇지만 제목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제목만 보면 굉장히 슬프고 아주 무서울 거 같지만 이 책은 약간만 슬프고 조금 무서울 뿐이다. 아련한 느낌이 가장 강하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단편 중 <여우님 이야기>가 있다. 아주 많이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7편 중 가장 무섭고 슬프고 아련한 느낌을 주었다. 전설의 고향의 소재로 써도 손색이 없을 거 같다. 어느 부잣집 귀한 아기씨에게 여우 귀신이 붙어서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는 이야기였는데, 순간 순간 오싹해지는 장면들이 꽤 많았다. 많이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나 아닌 다른 무엇이 나를 지배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촤악 돋을 지경인데 작가는 너무나도 생생하게 몹쓸 것에 잠식되어 가는 아기씨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이 책을 읽고 이 작가에 대한 신뢰도가 조금은 더 쌓인 느낌이다. 아직 접하지 못한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봐야겠다. 작가 특유의 매끄러운 입담으로 나를 즐겁게 해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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