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어질테다
시나가와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인 모양이다. 물론 나는 시나가와 히로시라는 작가의 이력이나 배경을 전혀 모른다.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난 작가니 당연하다. 번역가가 후기에서 그런 거 같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자전적인 소설을 그리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자전적 소설은 가네시로 가즈키의 <GO>다. <GO> 를 기준으로 보면 <비뚤어질테다>는 좀 많이 가볍다. <GO>가 무겁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쓸 수 있을 만큼 작가의 역량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여하튼 <비뚤어질테다>는 우리가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르는 10대의 반항기를 가볍게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어떤 거창한 목표가 있어 반항하는 게 결코 아니다. 이유는 단지 '그냥'이다. 시쳇말로 '아무 이유 없어.'다. 원제는 <DROP>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제목을 바꿨다. '비뚤어질테다'라니... 반항적인 청소년기 아이들의 모습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지 싶다. 

 

말싸움을 시작하면 절대 남에게 지지 않는 주인공 히로시. 그러나 몸싸움은 그 반대. 그래서 늘 비겁한 선제 공격으로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는 게 특기인 녀석이다. 녀석은 어느 날 잘 다니던 사립 기숙사 학교를 그만 두고 만다. 좋아하는 만화를 보고 불량학생이 되기로 한 히로시는 사립학교와 불량학생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를 붙여서 엄마를 졸라 전학을 해버린다. 전학 온 첫 날 그 학교 불량학생들에게 불려 간 히로시.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결국 원하는 대로 그들과 동류가 된다. 그리고 잘 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머리에 든 건 전혀 없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구사할 줄 모르는 불량클럽 대장 다쓰야와 그의 친구 모리키, 야마자키, 안조 등과 어울리면서 화려한(?) 불량학생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인간 관계나 생활도 모두 게임처럼 리셋할 수 있다. 분명 전보다 더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p. 12

사립 기숙사 학교를 들어가면서 리셋했던 히로시의 인간 관계는 사립학교를 나오면서 다시 리셋된다. 히로시의 바람대로 그는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해 간다. 패싸움을 하고 남의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훔치고 심심하면 결석에 땡땡이 심지어는 경찰까지 골탕 먹이는 무서울 게 없는 매일을 보낸다. 생각하는 것도 단순하기 그지 없다. 아니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순간적인 감정에 몸을 맡긴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거 같다. 그렇게 10개월간을 제 엄마 속을 시커멓게 썩게 만들었던 히로시에게 또 한번의 전환점이 찾아온다. 평소 잘 따르던, 누나의 남친 히데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히로시는 다시 한번 자신의 인생을 리셋하게 된다.

 

솔직히 나는 '작가가 만화 작법이 가능했다면 이 스토리로 만화책을 냈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이 책은 일본 학원 만화의 전형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10대 반항기 아이들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속도감 있게 그리고 가볍게 그려 낸 <비뚤어질테다>. 이 책은 일본 문화의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는 측면과 일본의 그것과 닮아 있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는 두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아, 물론 읽는 동안 연방 이마를 치면서 키득키득 웃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고思考는 하지 않아도 되고 감각에만 의지해 한번 읽고 마는 3류 만화를 닮아 있다고 하면 너무 잔인한 혹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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