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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의 계절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상상속에만 존재할 법한 세상을 마치 눈으로 보는 듯이 생생하게 그려내기란 참 어렵다. 우리 몸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스러운 느낌마저 들게 만들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이 작가가 그려내는 이계는 참으로 매혹적이다. 게다가 터무니없게도 향수마저 느끼게 한다.
쓰네카와 고타로는 그의 처녀작 <야시>를 통해 처음 만났다. 중편 <야시>와 <바람의 그림자> 두 편이 <야시>라는 제목을 가진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다. 일본 호러소설 대상을 수상했고 나오키상 후보에까지 오를 정도면 완성도에 대해선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당연히 선풍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나 역시 <바람의 그림자>를 읽으면서 기시감을 느낄 만큼 그 책에 깊이 빠져 들었었다. 그래서 그의 첫 장편인 <천둥의 계절>이 나왔다는 소식에 나는 그 누구보다도 기뻤고 곧바로 이 책을 내 곁으로 가져왔다.
쓰네카와 고타로가 만들어낸 또다른 이계인 '온'. 그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4계절이 존재한다면 온에는 하나의 계절이 더 존재한다. 바로 '천둥의 계절.' 천둥의 계절은 신의 계절이다. 그리고 심판의 계절이다. 천둥의 계절이면 어김없이 한, 두 명의 사람들이 신의 심판을 받고 마을에서 사라져 버린다. 아무도 모르게.
어딘가 모르게 남달라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겐야는 천둥의 계절에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누나를 잃고 만다. 누나를 잃던 날 겐야는 자기 몸에 무언가 다른 존재가 찾아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은 바로 정령인 바람 와이와이. 어느 날 우연히 마을에서 일어난 의문의 사건들의 실상을 알게 된 겐야는 바람 와이와이의 인도로 낯선 세계로 들어가게 되고 모험은 시작된다.
이 책은 전편인 <야시>와 마찬가지로 호러보다는 판타지에 더 가깝다. <나니아 연대기>나 <반지의 제왕>을 통해 맛본 서양적인 판타지도 꽤나 매력적이었지만 동양적인 색채를 물씬 풍기는 이 책도 나름 아기자기한 맛에 정이 듬뿍 간다. 도롱이를 입고 귀신 흉내를 낸다거나 동자귀신이 병자의 눈에 보인다던가 하는 부분에서는 전설의 고향이 떠올라서 친근감마저 느껴졌다. 물론 뭔가에 씌인다는 설정은 개인적인 성향상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소설은 겐야와 아카네를 중심으로 시점이 바뀌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서로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던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서로 접점을 찾게 되고, 책을 읽어 내려가다가 떠올랐던 의문점들은 실타래 풀리듯 하나씩 풀려 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작가는 겐야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은 말로 이야기를 끝맺고 있다.
그렇다. 시간은 흘러서 사라진다.
전에 나를 덮쳤던 커다란 파도는 나를 물가로 번쩍 밀어 올리고 나의 소년 시절을 앗아서는 끝없는 대양으로 데려갔다. ... 저쪽에서 또 다른 파도가 밀려올 것이고, 그 파도는 나를 다시 새로운 바다로 데려갈 것이다.
그 옛날 누나의 말처럼 마침내 새로운 계절이 찾아올 것이다. - p.373
책을 덮으며 인생이 우리를 어느 계절로 몰고 갈 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들을 수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거부하기도 하면서 날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또 성장하고 있다. 내 인생에서 천둥의 계절은 언제였을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바로 지금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새로운 계절을 기대하며 짧은 천둥의 계절을 지혜롭게 마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