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다. 아름다운 영화. 그러나 슬픈 영화. 마지막 책장을 넘기자 긴 한숨과 함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밀려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보통 그것을 '감동'이라 부른다. 식상하게도 그렇다. 감동, 감동이다.

 

어린 시절, 별 거 아닌 작은 일에도 나는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랬다. 나는 울보였다. 걸핏하면 울었다. 뭐가 그리 서럽고 아팠을까. 세월이 흘러 나이를 많이 먹고 난 후에야 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세상의 중심부에 자기 자신을 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의 중심부에 자기 자신을 두는 사람은 나 외에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모든 초점이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맞춰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상처를 주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도 상처를 받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나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리고 나 자신 역시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런 사실을 깨달아 아는 지금도 여전히 불완전한 인격을 가진 나는 나도 모르는 새 혹은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연을 쫓는 아이>는 '상처'와 '회복'에 대한 이야기다. 한 개인의 이야기가 한 나라의 역사와 맞물려 전개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끊임없이 '회복'의 노래를 부르고만 싶었다. 아무라도 붙들고 '용서'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용서'라는 말은 인간을 자유하게 할 수 있는 강력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과 대체할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말인 사랑의 바탕에는 용서가 깔려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아미르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는 동안 나 역시 그가 겪는 성장통을 고스란히 맛봐야 했다. 그리고 수없이 쏟아지는 질문의 홍수를 피할 수 없었다. 아미르가 처했던 모든 위기의 순간에 나라면,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아미르는 나약한 우리네 모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비겁하게 몸을 사리며 숨는다. 필요할 때마다 자신과 주변을 속인다. 그리고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에 손을 댄다. 그리고 남에게 그 죄를 덮어 씌운다. 그리고는 정당화한다. 그래서일까. 아미르가 용기를 내어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어했을 때, 절실한 마음으로 그를 응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상처에 얽매인 우리 영혼은 용기를 내서 상대방과 나 자신을 용서할 때 완전하게 회복될 수 있다. 잊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상처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자유롭지 못한 연줄을 끊어내는 것과 같다. 줄 끊어진 연을 쫓아 달리다가 그 연을 가슴에 품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500여페이지가 넘는 긴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한번도 지루해하지 않았다. 탄탄하게 맞물린 짜임새 있는 구성에 일단은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이 한 편의 소설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를 대략이나마 알 수 있었던 것도 좋았던 점으로 들고 싶다. 무엇보다 혼란하고 암담한 시대에 작가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는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고마운 마음으로 후속작인 <천 개의 찬란한 태양>도 내 품에 안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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