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 신달자 에세이
신달자 지음 / 민음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한 아줌마의 진솔한 삶의 모습이 담긴 책이다. 순간순간 울컥울컥하는 느낌이 치솟을 때마다 스스로 그 감정을 다스리려 노력했다.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리며 "불쌍해~" 라고 한 마디 던질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소설이 아니다. 실제했던 삶이다. 그저 한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말, 그런 류의 이야기라면 차라리 나았을 지도 모르겠다. 펑펑 한바탕 울고는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야~" 라고 어줍잖은 감상을 이야기하고 그냥 끝! 하고 선언하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정이란 말은 이 상황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쿨하게 있는 사실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신달자, 그녀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하고 나는 되도록 담담하게 책을 읽어내려갔다. 

마흔이란 나이를 생각해 봤다. 사실 몇 년 남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뤄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
"40이 되기 전에 갈 길을 확실히 정해 놔야 해. 결혼보다 그게 더 중요하다."
존경하는 스승은 늘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형편없는 제자다. 아직까지도 그저 그렇게 시간만 흘려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내 앞에 놓인 인생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동굴 속에 과연 뭐가 있을까 생각만 하고 있다. 발을 디뎌 그 속으로 들어갈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춤주춤하고 있다. 비겁한 나. 나는 어쩌면 상처받지 않으려고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고슴도치처럼.  

나와는 대조적으로 신달자, 그녀는 포기하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잔인한 현실을 온 몸으로 맞받아쳤다. 까맣게 타버린 가슴을 부여잡고 그녀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어떤 것에 대해 "이해한다." 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녀가 흘린 절망의 눈물을 먹고 희망이 싹을 틔웠다. 어쩌면 신은 그녀가 포기하지 않을 걸 알기에 그녀의 그릇에 어울리는 시련을 허락하셨는 지도 모르겠다. 그녀도 그 부분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보인다. 잔인한 운명이라 생각하면서도 신앙의 힘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을 현명하게 대처해 나간다. 나 같으면 헤어나오지 못했을 삶의 고비 고비마다 그녀는 다리 근육에 최대한 힘을 빼고 호흡을 잘 가다듬어 가며 고통의 고개를 넘고 있다. 훌쩍 여유있게 넘어가는 것도 그 앞에 주저앉아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어찌어찌 넘어가고 있다. 그리고는 고백한다.
"어쩌면 나는 불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에 절체절명으로 불행한 일은 없다. 사람들은 아직 벗어날 방도가 있는데도 너무 일찍 절망하는 지도 모른다. 인간은 희망에 속는 일보다 절망에 속는 일이 더 많다." - p. 257

나 역시 너무 일찍 체념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직 마흔이 아니다. 여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늦은 것도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걷는 법을 배우자. 여전히 커다란 아가리를 벌린 채 동굴은 내 앞에 있다. 발을 디뎌 보자. 최소한 해보지도 않고 후회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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