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 신대륙 발견부터 부시 정권까지, 그 진실한 기록
하워드 진.레베카 스테포프 지음, 김영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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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은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라는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쓴 리뷰의 영향으로 접한 책이다. 하워드 진을 노엄 촘스키와 함께 살아있는 미국의 양심이라 부르는 이유를 책을 보고 나서야 이해했다. 양심있는 지식인,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 우뚝 선 그를 이해하는 데 책은 큰 도움이 됐다. 더불어 그가 쓴 <미국 민중사>를 꼭 읽어야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뒀다. 그게 벌써 일 년 전 일이다. 그랬다. 나는 아직도 <미국 민중사>를 손에 넣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그가 젊은 세대를 위해 다시 쓴 <미국 민중사>를 읽게 된 것이다. 


미국의 역사는 침략과 약탈로 얼룩진 역사였다. 콜럼버스는 개척자가 아닌 약탈자였으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인디언 종족을 말살한 장본인이다. 미국의 독립은 민중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하게 가진자를 위한 퍼포먼스였다. 링컨은 노예해방을 위해 남북전쟁을 일으킨 게 아니었다. 링컨에 반기를 든 남부연합을 연방에 복귀시키려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노예 폐지론을 이용한 것이다. 이쯤되면 하워드 진이 어떤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가진자와 지배자의 편이 아닌 민중의 입장에서 책을 서술했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에 묵직한 돌 하나 단 것마냥 나는 답답했고 또 울분에 사로잡혀야 했다. 왜냐하면 나는 가진자가 아닌 못가진 자며 민중이기 때문이다. 가진자들의 생각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으며 그것을 용납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철저하게 경제논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자국의 이익이라는 명목하에 (사실은 몇몇 소수 특권층의 이익을 위한 것) 수많은 전쟁을 일으켰고 많은 약소국들을 좌지우지하며 그 나라들을 도탄에 빠지게 만들었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들에게는 철저하게 보복 혹은 제재를 가했다. 심지어는 자국민들까지 속여가며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 우리나라 역시 미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6.25 전쟁으로 국토는 초토화되었지만 결국 반목과 불신의 상태에서 50년이란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반공, 멸공이란 미명하에 민주화를 철저하게 탄압했던 우리의 역사는 미제국주의(저자 역시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말하고 있다.)와 무관하지 않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잘못과 과오를 범한 미국. 그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자본주의라는 경제논리 아래 지금도 침략과 약탈의 역사를 계속해서 쓰고 있다. 왜 미국은 동네 골목 대장 노릇을 자처하는 것일까?

우리는 새로운 것을 자각하고 있다. 강력함에 대한 자각, 즉 새로운 욕구, 우리의 강력함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 말이다. ... 그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제국의 취향이라는 것이다. - p. 155

미 정부는 과시욕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나는 짧은 역사를 가진 어린아이에 불과한 미국이 갑작스레 너무 많은 부와 힘을 갖게 되었기에, 그 힘을 바르게 사용할 수 없는 미숙함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누가 얘 좀 말려줬으면...)


차를 탔을 때 시야가 좁은 경우(특히 관광버스) 어지럼증을 느끼며 멀미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멀미하는 사람들은 시야가 확 트인 앞자리를 선호한다.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 역시 넓은 시야를 가질 필요가 있다. 다양한 시각을 가진 책들을 읽으면서 시야를 넓히지 않는다면 어지럽게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갈 길을 잃고 어두컴컴한 낯선 곳에서 토악질을 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90을 바라보는 노학자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과 수고로 만들어진 이 책이 많은 젊은 세대들에게 세상을 바르게 바라보고 사고할 수 있는 힘을 주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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