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독성 좋은 역사 추리물

열하광인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세 번째 이야기 ㅣ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9월

주변에서 하도 김탁환, 김탁환 노래를 불러대는 사람들이 많아서 신작이 나왔다는 소리에 책을 구해서 읽었다.

흔히 역사 추리물 혹은 팩션이라 불리우는 장르의 책들을 읽어볼 기회가 내게는 별로 없었다. 다 합쳐서 한 손가락 안에 들까 말까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이 잘 씌여진 괜찮은 작품인지 그냥 그런 책인지 제대로 구별할 능력은 안 될 거 같다. 하지만 소설이 뭔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생에 있어 어떤 진리나 진실함을 생각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장르 소설이라고 예외는 아닐 듯싶다. 꼭 교훈을 짚어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문학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이라도 더 넓게 해주는 구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보았다. 물론 추리물이니만큼 구성이 얼마나 치밀한가, 작가가 준비한 반전이 내 뒤통수를 얼마나 아프게 때리는가도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일단 소재가 박지원의 <열하일기>라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물론 나는 <열하일기>를 읽어 보지 못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는 '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소재로 한다는 사실에 무척 고무되었다. 흥분된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갔고 나는 금세 이 책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먼저 이 작가, 문장력이 참으로 돋보인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데다 시원스러운 힘마저 느껴지는 문장. 참 좋다. 서술이나 묘사, 대화 어느 부분 하나 빠지지 않게 잘 쓴 느낌이다. 특히 대화 부분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읽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감정몰입이 잘 되는데다 운율감마저 느껴지는 멋스러운 대화체가 참 인상적이다. 역사물이다 보니 작가는 순우리말이나 한자어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생소하게 느껴지는 단어들을 접할 때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때도 있지만 웬만한 건 주를 달아 주어서 사전의 도움없이 그럭저럭 읽어낼 수 있었다.

스토리 자체는 좀 평이하지 않나 싶다. 물론 구성이 허술하다거나 뭔가 모자란다거나 하는 그런 의미는 아니다. 너무 전형적이랄까. 물론 읽는 동안에는 흥미진진했지만 다 읽고 난 후 조금은 뻔하구나, 싶었다. 내가 처음부터 범인으로 지목했던 사람이 역시나 범인이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열하광인은 <열하일기>에 미친 사람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이명방과 그의 애인 명은주 그리고 함께 열하를 읽는 김진, 조명수, 덕천, 홍인태 등과 거기에 박제가, 박지원, 이덕무 등이 등장한다. 정조의 눈을 피해 열하를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열하의 의미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무엇이리라. 그래서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않고 열하를 탐독하는 것이리라. 자송문을 짓기만 하면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이킬 수 있음에도 완성된 자송문을 찢어버리고 끝내 숨을 거둔 이덕무의 모습을 보며 참으로 안타까웠다.

자신의 신념을 목숨과 바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나는 늘 숙연해진다. 신념을 지킨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혹은 모든 것을 잃고 억압당하게 되는 상황에서 끝까지 자기를 잃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우리는 숭고함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이 백탑파 시리즈라는 사실도, 그 중 마지막 책이라는 것도 나는 몰랐다. 작가가 10년을 바라보며 쓴 이 시리즈를 처음부터 하나씩 천천히 탐독하고 싶다. 그리고 이후 이 작가의 행보도 주시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