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
최인호 지음, 김점선 그림 / 열림원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을 꽃밭에 비유한 작가의 말에 가슴이 찌르르했다. 내 꽃밭에는 어떤 꽃이 피었을까. 어쩌면 제대로 호미질을 안 해서 잡초만 무성한 게 아닐까. 너는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모습으로 살고 있느냐, 너는 누구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런 사람이요'라고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느냐, 이런 생각들이 불 땐 굴뚝에 연기 피어 오르듯 자꾸만 떠올라 머리 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최인호란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본다. 부끄럽게도 그가 쓴 수십편의 작품 중 아직까지 단 한 편도 읽어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봐야겠다, 생각한 이유는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환갑이 지난 노작가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돌아보고 있는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명화가가 책에 삽화를 넣었다는 것도 한 몫했다. 곱게 채색한 책 표지가 어여뻐 나는 서둘러 이 책을 만나보았다.

환갑 지난 노인의 글이 아니었다. 글은 싱싱하고 생명력 넘치며 힘찼다.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했다. 그래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연륜이 쌓인 사람들은 최대한 말을 아끼고 실언하지 않으려고 모호한 느낌의 뭉퉁그려진 표현들을 사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작가는 다르다. 나는 이런 사람이요, 하고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까발린다. 못난 구석도 감추지 않고 잘난 구석도 숨기지 않고 그냥 내보인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하다.

세상을 향해 무디지 않은 칼날을 들이댄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재고 따지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잘못됐다 싶으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좋다고 생각하면 좋다고 이야기한다. 호불호가 정말 명확하다. 꽤 고집스러운 노인이겠군, 하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났다.

작가는 아내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게 틀림없다. 50편의 에세이 중 아내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는 글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 아내 되시는 분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할 정도다. 어렴풋이 그 인상마저 눈에 떠오를 정도면 말 다했다.

두 부부의 종교적 신념도 눈에 띈다. 물론 작가는 다혈질이다. 반면 아내되시는 분은 마냥 천사 같다. 종교적 신념을 삶으로 표현하는 그런 사람이다. 현명한 아내는 지는 척하면서 이길 수 있는 법이다. 작가의 아내는 분명 그런 사람이다. 남편은 그래서 아내의 손바닥 안에서 살 수밖에 없다. 가끔 아내 자랑이 지나쳐 팔불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일련의 일화들을 살펴 보면 내 아내는 이런 사람이요, 자랑할 만하다 싶다.

삽화는 글과 잘 어우러져 글에 생명력을 더해준다. 꽃과 나비, 사람과 동물들이 자유롭게 책 속을 부유하는 느낌이다. 뭐랄까, 조금은 현실적이지 않은 느낌? 아무튼 마음에 든다. 그러나 아기자기 예쁜 삽화들을 보면서 한 편으로는 가슴이 아련해지기도 했다. 김점선 화가가 암으로 투병 중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꼭 이겨내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 읽는 즐거움을 어디에 비유하면 좋을까. 더운 여름날 외출했다 돌아와서 마시는 차가운 첫 모금의 물. 체해서 괴로울 때 등을 쓸어 주시는 어머니의 따듯한 손길. 하루종일 힘들게 일한 후 집에 오는 길, 지쳐서 땅을 보며 걷다 문득 발견한 한 송이 민들레꽃. 책은 나에게 그런 존재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즐거웠다. 삶의 한 자락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아졌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제 이 작가의 소설을 만나보아야겠다. 아마도 첫 작품은 <상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에 대한 그의 애착이 책 곳곳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