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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김미향 지음 / 넥서스BOOKS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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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엄마를 떠나보내고 쓴 애도의 기록. 


저자는 줄곧 꿈에 나타나는 엄마의 모습, 생전의 기억, 그리고 기구한 삶을 살다 간 엄마의 전 생애를 온 힘을 다해 기록합니다. 애도의 기록은 꿈과 현실,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엄마를 기억하고 조명하려는 저자의 시도가 엿보이는 대목이에요. 엄마란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절절하게 마음을 울리는 구절이 곳곳에 있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진심을 다해 그의 존재를 기억하고 보존하려는 행위, 최선의 애도란 바로 그런 것이라는 점을 이 책이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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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김미향 지음 / 넥서스BOOKS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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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엄마를 떠나보내고 쓴 애도의 기록. 저자는 줄곧 꿈에 나타나는 엄마의 모습, 생전의 기억, 그리고 기구한 삶을 살다 간 엄마의 전 생애를 온 힘을 다해 기록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그의 존재를 기억하고 보존하려는 행위, 최선의 애도란 바로 그런 것이라는 점을 이 책이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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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돼지 에스더
스티브 젠킨스 외 지음, 고영이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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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공장더불어에서 나온 <대단한 돼지 에스더>를 읽었다. 평소 이런 류의 에세이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내용과 소재에 사로잡혀 읽게 됐다. 반려동물, 채식, 동물권. 언제나 눈을 사로잡는 키워드들이다.


미니돼지인 줄 알고 입양했지만 실은 덩치가 어마어마한 사육용 돼지인 ‘에스더’와의 좌충우돌 동거 이야기인데 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는지 생생하고 유쾌하게 보여준다. 육식주의자에서 채식인으로, 학대 받는 동물들을 구조해 돌보는 활동가로 나아가게 된 것 또한 ‘에스더 효과’ 덕분이었다. 


동물권 운동의 성격과 노선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는 부분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발단은 페이스북에 에스더 페이지를 만들게 된 이후부터였다. 팔로워 수가 급격히 늘면서 동물권과 채식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유입되다보니 그 안에서 싸우는 일이 비일비재해진 것이다. 그 고민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 특유의 밝고 긍정적인 면모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에스더 운동’의 의미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는 개를 먹지 않는다. 이제는 베이컨도 먹지 못할 것 같았다.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 이거 못 먹겠어.” 잘못 들었는지 데릭이 다시 말해 보라고 했다. “이거, 베이컨, 먹지 않을 거라고. 너무 끔찍해.” “나도 못 먹겠어.” 데릭의 대답에 나는 깜짝 놀랐다. 기분이 묘했다. 데릭은 내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자기에게 맞는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단체만의 독특한 활동 방법을 존중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단체는 특정한 사람이 모여서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끊임없이 공격해서 진절머리 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에스더처럼 웃는 얼굴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평범하고 다양한 사람을 대상으로 페이지를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에스더 운동은 접근이 쉽고, 서로 대립하지 않고, 누구나 환영한다는 점에서 모든 비채식인에게 매력이 있었다.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해 주고, 동물복지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스더 운동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리라. 게다가 에스더 운동은 동물활동가와 기존의 채식인에게도 매력이 있었다. 계속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나는 현실을 접해야 하는 보통 동물운동과 다르게 우리에게는 밝고 긍정적인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에스더 인증’ 생활방식대로 살고 있지 않았고, 그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우리는 300킬로그램짜리 돼지를 집에서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되었다. 보호소로 만들 농장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전 세계의 사람 수천 명이 우리를 도울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었다. 따뜻함은 마술과 같다. 에스더의 웃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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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을유세계문학전집 17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김현균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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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파시즘'이란 테마를 이처럼 세련된 블랙 코미디로 형상화할 줄 아는 작가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은 사회적 명성 또는 영혼의 안식처를 위해 문학을 도구 삼아 파시즘에 부역하는 온갖 군상을 보여준다. 군상이라 하면 작가 태생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중남미 전역, 더 나아가 북미 대륙의 인물까지도 포괄한다.  


이 소설은 파시즘에 부역한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인명사전 형식으로 나열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과 같은, 부역자들에 대한 인명사전이 과거 청산을 위한 사료로서 지니는 가치를 떠올려 보면 왜 이 소설이 인명사전의 형식으로 쓰여야 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물살이 완만하고 좋은 자전거나 말을 가지고 있다면 같은 강물에 두 번(개인의 위생적 필요에 따라 세 번까지도) 멱을 감을 수 있다.


볼라뇨는 소설 첫머리에 아우구스토 몬테로소의 말을 인용하여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제를 비튼다. 이 구절에서 시대를 막론하고 파시즘의 잔존 세력이 언제든지 득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아우구스토 몬테로소와 볼라뇨 모두 정치적 망명을 통해 문학적 삶을 영위했으며 다양한 문학 기법을 동원해 현실을 풍자했다는 점이다.


볼라뇨는 문학의 주류가 아닌 변방에서 끊임없이 배회하는 인물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변변찮은 작품을 내놓으면서도 자기 나름의 문학적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을 그린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정치 권력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거나 사회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개중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거나 존재감이 미미한 인물들도 다수 있다. 달리 말하면 이 세계에는 권력과 기성 문단에 영합하는 인물들이 반드시 극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볼라뇨는 이 소설을 통해 적어도 자신의 문학관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자신만의 문학적 세계관을 구축하는 성취를 이뤄냈다. 하나의 실험실 같은 이 소설 이후 <야만스러운 탐정들>, <먼 별> 등의 작품들이 가지를 치듯 뻗어 나왔고 작품들은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며 '따로 또 같이' 존재한다. 바로 그 점이 볼라뇨에게 매료될 수밖에 없는 요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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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핑 뉴스
애니 프루 지음, 민승남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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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ipping News』. 『브로크백 마운틴』의 저자로 잘 알려진 애니 프루의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근근이 먹고 살다 새 출발을 위해 조상들의 고향인 뉴펀들랜드로 향하는 어느 중년 남성의 정착기 내지는 성장담이다.  


가진 것 없고 자존감 낮은 30대 중반의 쿼일. 뉴욕의 삼류 신문사에서 불안정한 고용 형태로 일하던 그는 연이은 불의의 사고로 삶의 전환기를 맞는다. 병든 부모는 동반 자살하고 아내는 정부와 달아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경기 침체를 이유로 직장에서도 잘린다. 두 딸을 홀로 키우게 된 쿼일은 애그니스 고모의 조언을 따라 함께 뉴펀들랜드로 가 새 삶을 시작하기로 한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저마다 깊은 상처로 인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린 채 살아간다. 게다가 뉴펀들랜드 특유의 광포한 기후와 척박한 토양은 쿼일을 더욱 암담하게 한다. 그러나 사정이야 어찌됐든 삶은 계속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쿼일은 밥벌이를 위해 지역 신문사인 '개미 버드(Gammy Bird)'에 취직해 자동차 사고와 해운 소식 취재를 담당한다. 그 신문은 반드시 자동차 사고 소식과 사진을 1면에 싣고 그 지역에서 벌어지는 성범죄나 온갖 가십을 다루는 걸 원칙으로 한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gammy bird는 뉴펀들랜드에서 흔히 발견되는 솜털오리를 뜻한다. 그 유래가 재밌다. 오리들이 꽥꽥거리는 습성이 바다의 어선들이 소리를 질러 서로 소식을 전하던 모습('gamming')과 유사하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것. 

그런데 아내를 앗아간 자동차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와 물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는 쿼일이 자동차 사고와 해운 소식 담당이라니. 가혹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은 진지하거나 무겁지 않다. 쿼일은 그럭저럭 잘 해나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은 해운 칼럼을 써 내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줄거리만 보더라도 예상 가능한 전개와 결말대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빤한 이야기인데도 이 소설의 흡입력은 상당하다. 나는 왜 이 소설에 매료됐을까. 암울한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주인공의 성장 서사에서 느낄 수 있는 흐뭇함과 따스한 결말의 여운? 단지 그것만이라면 어찌 애니 프루가 대가라 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의 매력은 상처를 덮고 외면하고 싶어하는 인물들이 상처를 대면하게 한다는 점이다. 불행은 우리 삶의 일부이다. 보기 싫다고 못 본 척하는 것만으로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닐 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결말부의 천연덕스러운 기적. 신문의 1면은 관행을 깨고 자동차 사고 소식이 아닌 이 기적적인 소식으로 대체될 것이다. 이 기적을 삶의 한 단면처럼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건 전적으로 이야기를 유려하게 빚어낸 작가의 역량 덕이다. 

나는 이 소설이 좋다. 어떤 작위가 아닌, 이토록 담담한 이야기에서 삶의 진실을 보게 한다는 것, 그것은 허투루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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