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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설계자들 - 어떻게 함정을 피하고 탁월한 결정을 내릴 것인가
올리비에 시보니 지음, 안종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6월
평점 :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가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올리비에 시보니의 <선택 설계자들>은 이 문장을 빌려와 "모든 성공적인 전략은 제각각이지만 전략적 실패는 모두 엇비슷하다."라는 말로 자신의 주장을 펼쳐간다.
올리비에 시보니는 전략적 의사결정 분야의 권위자로 30년간 탁월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실용적인 도구와 솔루션을 찾기 위해 노력해 그 연구의 성과를 <선택 설계자들>에 담았고, 이 책은 2019년 맨파워재단으로부터 최우수 경영서상을 수상했다.
비행기에 석유 냄새를 탐지하는 특수 장비를 설치해서 굴착 작업 없이 매장된 석유를 찾을 수 있다며 두 사람이 프랑스 국영 정유회사인 엘프아키텐을 방문했다. 석유 냄새를 맡을 수 있다니 일반인인 나는 어이없는 이야기라 생각되지만 엘프아키텐의 경영진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들은 1977년부터 1979년까지 4년간 무려 10억 프랑을 두 사기꾼에게 지불했다. 그런데 2004년 똑같은 사기에 골드만 삭스 등의 유명 투자 기업들이 5억 달러를 투자했다.
도대체 왜 수많은 사업을 성공시킨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이런 바보 같은 결정을 하게 된 걸까? 올리비에 시보니는 이런 실패들을 분석해 보니 의사결정자들이 비슷한 함정에 빠진다는 것을 알았다. 즉 합리적인 결정을 한다면서 실제로는 편향된 결정을 하는 것이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넛지>는 이런 편향을 활용해 타인의 행동을 내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방법을 알려준다면, <선택 설계자들>은 우리가 의사결정에서 자주 빠지는 편향들을 분석하고, 편향을 극복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합리적 결정을 가로막는 9가지 함정
1. 스토리텔리의 함정
단순한 우연도 일관성 있는 이야기로 만들면 의사결정에 문제를 일으킨다.
우리가 의사결정에서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기존 신념과 모순되는 정보를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확증 편향 때문이다.
2. 모방의 함정
모델을 좇는 것은 우리에게 영감을 줄 수 있지만 길을 잃게 할 수도 있다.
생존자 편향은 성공 사례에만 초점을 맞추고 실패자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게 한다.
3. 직관의 함정
직관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확실성이 높은 환경 속에 있어야 한다.
전략적 의사결정은 확실성이 낮은 환경에서 일어나며, 의사결정자들에게는 제한된 경험과 지연되고 불명료한 피드백만이 있다.
4. 자기과신의 함정
낙관주의에 대한 본능적 욕구는 생산적인 낙관주의를 과도한 자신감으로 바꾸곤 한다.
낙관주의자들은 정상에 올라간 뒤에 자신의 능력과 직관 그리고 의사결정을 지나치게 과신하게 된다.
5. 관성의 함정
우리는 현상유지 편향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무언가를 결정하기보다는 결정하지 않는 쪽을 편하게 여긴다.
관성의 더 극단적인 형태는 몰입 상승 효과다. 이는 실패한 시도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게 한다.
6. 위험인지의 함정
안타깝게도 낙관주의는 사업이 대규모일 때 더 쉽게 허용되는 반면, 위험 회피는 소규모 사업일 때 더 중요해진다. 소심한 선택과 대담한 예측의 결합은 흥미로운 기회가 부족하다며 현금을 쌓아두면서도 과감하게 모험적인 투자를 하게 한다.
7. 기간의 함정
내일의 이익을 기대하며 오늘의 손실을 선택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단기목표가 달성되지 못하면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간주된다.
단기성과주의는 손실회피와 현재 편향이 합쳐진 것이다.
8. 집단사고의 함정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는 노련한 경영인들조차도 충분한 이유가 있는 비판을 표현하는 대신 집단이 화합을 유지하는 쪽을 선택한다.
9. 이해충돌의 함정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이로운 행동을 한다. 자신의 이익이 판단을 흐리게 한다.
이런 편향들은 하나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다. 하나의 편향이 유일한 오류가 아니라 여러 편향들이 동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다른 요인과 결합해 실패를 만들기도 한다.
편향을 제거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게 편향들 때문이라면 이런 편향을 제거하면 될까? 저자의 답은 "자신의 편향과 그것을 줄이는 방법에 집착하는 것을 시간 낭비"라는 것이다. 우리가 편향을 인식하는 것도 어렵지만 설령 편향을 안다 해서 미리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편향을 극복할 방법이 없다면 그저 운에 맡겨야 하는 걸까?
여기서 저자의 놀라운 통찰이 나온다. 저자는 개인과 조직이라는 두 가지 차원을 구분하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얘기한 편향은 대부분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조직 안의 전략적 오류는 개인들에 의해서만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조직의 오류를 조직을 이끄는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이것은 과도한 단순화다. 아무리 창의적인 개인을 모아두어도 시장에 성공적인 혁신 제품을 내놓지 못한다는 것을 떠올려 보라. 기업이나 정부의 실수도 개인의 편향 탓으로 돌리기 전에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개인의 선택이 조직의 의사결정을 바꾸는 메커니즘에 대해서 말이다.
<선택 설계자들>은 우리가 판단을 할 때 빠지는 편향을 제거하는 법이 아니라 이런 편향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만드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즉 합리적 '선택자'가 되는 법이 아니라 합리적 '선택 설계자'가 되는 법에 대한 것이다.
지혜는 개인이 아니라 프로세스를 통해 나와야 하고, 협업과 프로세스는 건전한 의사 결정의 토대가 된다. 기업들은 자사 제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엄격한 프로세스를 갖고 있는데 왜 의사결정에는 이와 동일한 품질 기준을 적용하지 않느냐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기업들이 전략적 의사결정에 '협업과 프로세스'의 원칙을 적용한다면 회사에 손해를 입히는 바보 같은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선택 설계자를 위한 40가지 실용적 기법
혼자는 최적의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 리더는 중립적으로 똑똑한 판단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의사 결정 방법을 정하는 '의사결정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3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실질적인 대화를 촉진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고, 역동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한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40가지 실무 기법을 제시한다.
똑똑한 리더에 의해 조직의 운명이 정해지는 시대는 지났다. 과거보다 더 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결합하여 영향을 끼친다. 이런 모든 것을 다 파악해서 결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조직 안에 합리적 결정을 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돌파라는 최고의 무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선택 설계자들>은 그 무기를 날카롭게 벼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