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안부 바다의 마음
김운하 지음 / 필로소픽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래의 안부, 바다의 마음>은 답사에세이형태를 취하는 김운하의 철학서다. 고래는 안녕한가. 멜빌과 다윈이 갈라파고스제도를 방문한 후 세상을 이해하는 차이는 엄청났고 고래의 안부를 묻는 바다의 마음에 동참하고 있다. 철학서가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다니, 놀랍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 세계를 담은 한 권의 책이 있다면
김운하 지음 / 필로소픽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를 담은 한권의 책이 있다면..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라고 말하고 싶다. 뭐라 더 표현할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 세계를 담은 한 권의 책이 있다면
김운하 지음 / 필로소픽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꼭꼭 닫혀 있던 세번째 서랍이 열리면서 나는 살아지고 있다. 가끔씩 네번째 서랍이 열려 그 세계가 넘나드는 것도 모른채. 어쩌면 내가 살아지는 것은 다른  서랍들이 열린곤 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는 못했으나 존재하는 그 서랍들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은 한 마디로 설레임이다.

그러고 보니 작가가 말하듯 나는 어느새 책과 연애를 시작한 것인가?

 

폼나게 읽지 말고 즐겁게 읽어야겠다.

그렇게 읽다보면 내가 읽는 책들은 어느새 고전이 되어 있겠지.  모든 시작은 지금 여기에서다. 작가가 말하듯, "칸트의 그 위대한 책 <<순수이성비판>>은 흄의 그 '신간'이 아니었으면 결코 나올 수 없었다"(41)

 

"마치 꿈에 그리던 여인을 만난 듯한 설렘과 기대로 책을 가슴에 안고 서둘러 단둘이만 있을 수 있는 장소로 달려"가서 "마침내 단둘이 되면 나는 책의 육체를 마음껏 탐닉한다"(104) 는 작가의 말은 그저 비유인 것만은 아닌 듯.

 

내가 살아지고 있는 이 세계는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물질성, 육체성의 세계이며, 그 물질성은 살아숨쉬는 향기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니 몸을 가진 나는 이 세계와 관계하며 살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네번째 서랍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이야기하는 마법의 타자기"(211)가 펼쳐내는 세계는 나의 세계라는 것.

 

그래서 이 책은  철학책이다. 작가의 특유한 언어로 펼쳐내는 철학책.

 

"각각의 예술작품은 유일무이하고 대체 불가능한 한 개성의 표현이며, 그런 의미에서 가장 인간적인 무엇인다."

"책은, 특히 언어의 예술인 문학은, 인간이란 존재가 지닌 정신적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가장 탁월하게 표현한 그 무엇이다"(2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마담 보바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녀상열지사. 최근 개봉된 영화제목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보봐리 부인을 읽고 '사랑'이라는 단어보다는 '남녀상열지사'라는 말이 먼저 떠올랐다. 플로베르는 남녀간에 있을 수 있는 일을 소재로 하여 당시의 풍속을 한 여자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사랑'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에게 투영될 뿐, 그것의 진짜 모습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사랑은 때로는 남녀간의 낭만적인 사랑으로, 때로는 어머니의 희생을 요구하는 사랑의 모습으로, 때로는 치자의 정당성을 위한 포장으로 나타난다. 어쨌든 사랑은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것들의 대명사로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마담 보봐리>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굳이 찾자면 엠마가 그리는 환상의 현실화정도.

엠마는 농부의 딸로 태어나 의사에게 시집가서 부르주아 대열에 끼이게 되지만, 그녀를 부르주아라고 볼 수 없다. 때문에 부르주아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것은 약사 오메가 된다. 오메는 루소의 사상을 숭배하는 부르주아로, 엠마는 부르주아와 대립되는 앙시앵 레짐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 엠마는 상류층의 방탕하고 향락적인 생활을 동경하며, 현실을 부정한다.

플로베르가 부르주아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건 간에 이 소설은 상당히 부르주아적이다. 그것은 엠마가 파멸하는 것과 반비례로 오메의 승승장구하는 것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소설의 끝에서는 엠마가 시체로 변하고 오메는 훈장을 수여받는다. 게다가 엠마의 죽음은 사랑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돈 때문이다. 자신의 환상을 실현시켜줄 돈이 없어지고, 환상에 의해 가려진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엠마는 즉시 현실로부터 완전히 도피한다. 그녀의 사랑에 관한 환상도 그녀의 죽음도 결코 낭만적이지 않으며, 또 비현실적이리만큼 아슬아슬하거나 공포스럽지도 않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하고 리얼하게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

엠마의 사랑은 부르주아 시대의 사랑에 反하였다. <풍속의 역사Ⅰ>(까치)에 따르면 부르주아 시대의 사랑은 '참된 정열로써 때묻지 않은 개인적인 성애'(169)를 통해 결혼이라는 최고의 단계로 올라가야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엠마는 환상 속에서 사랑을 꿈꾸었고, 결혼 생활에는 그러한 사랑이 없음을 알게 된다. 엠마는 오직 한 사람의 상대를 향한 영원의 정열이 아니라, 환상 속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정열을 불태울 뿐이다. 엠마에게 있어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 아니었다. 결혼 이전의 단계여야만 할 연애가 엠마에게 있어서는 결혼 이후에도 지속된다. 그러므로 부르주아 시대에 요구되었던 '부부상호간의 절대적인 정절'(169)은 엠마에게 있어 그다지 중요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의사 부인이라는 사회적 신분과 경제적인 지위로 보자면 분명 엠마는 부르주아지만, 그녀는 귀족적인 것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있다. 아이를 낳은 후 몸조리 기간에만 아이를 유모의 손에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로돌프와 몰래 만난 후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세무 관리에게 '애를 맡겨놓은 유모한테 다녀오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지배계급이 육아를 타인에게 맡기는 것을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앙시앵 레짐에서는 자식은 결혼생활에서 가장 귀찮은 존재로 취급되어 지배계급은 육아를 타인에게 맡김으로써 가능한 한 빨리 그 귀찮은 존재를 쫓아버렸다. 이에 반하여 부르주아 사상에서는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이 가장 높은 도덕적 의무였다.'(171) 루소의 사상은 당시의 부르주아에게 힘을 실어주는 사상이었다. 그의 교육론은 자연주의였는데, 그것은 그의 <에밀>에서도 보듯이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마담 보봐리>에서는 중요하게 드러날 것 같지 않던 오메가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그는 엠마 그리고 신부와의 대립적 구도 속에 있다. 이러한 대립구도는 <마담 보봐리>의 이중성을 끝까지 유지하게 한다. 오메와 신부의 대립적 구도는 비합리적 영역으로서의 종교와 합리적 영역으로서의 과학적 세계관의 대립이다. 그러나 소설의 끝은 엠마의 죽음과 보봐리의 죽음으로써 과학적 합리주의적 세계관이 열리고 있음을 쓸쓸히 보여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