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어바웃 러브
벨 훅스 지음, 이영기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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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 몇년간 지독한 짝사랑을 하며 지쳐있던 중이었다. 대상은 한 번 바뀌었지만, 상황은 여전했고,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졌었다. 그러면서 사랑에 대한 이런 저런 책들을 열심히 끼고 읽은 것 같다.

 

사실, 남자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는 연애 지침서야, 짝사랑에 시달리는 사람에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내게 지침서에 제시된 상황이 다가오지 않으면 의미도 없거니와 사실 그런 책들에 제시된 사례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는 마당에 그냥 만약을 위한 연애 시나리오를 몰래 써보며 위안과 만족을 얻는 것 뿐이다.

 

그렇기에 실은 정말로 심적인 위안을 주는 건 '사랑'에 대해 깊이,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해 본 다른 사람들의 글인 것 같다. 남자는 이래. 여자는 저래. 연애는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하며 다그치는 책이 아니라...  당신은 '이런 마음 때문에 괴롭게 사랑의 열병을 앓는 거다.'라고 친절히 말해주는 책이 짝사랑에 몸부림 치는 사람을 조금이나마 다독여주는 것 같다. 에리히 프롬의 책, 롤랑 바트르의 책, 그 외 많은 불교나 성서의 사랑 이야기는 짝사랑을 앓고 있는 내게 많은 위안이 되었고,

그리고, 저자의 책 역시 그러했다.

 

특히 무엇보다 [올 어바웃 러브]는 내게 '사랑할 용기'를 주었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남아있다.

 

저자는 모든 열정을 대상에 쏟아붓는 '카섹시스'는 사랑이 아니라고 단언하며 스캇 펙scot peck의 사랑에 대한 정의를 빌어 자신이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것들을 이야기해나간다.

 

스캇 펙은 자신의 저서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사랑을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렇기에 저자는 사랑을 이성간의 강렬한 감정, 우리가 로맨스라고 생각하는 그런 감정이라 말하지 않는다. 제일 마지막 쳅터에서 저자가 로맨스에 대해 언급한 것도 이러한 견해를 정리하기 위함인듯 하다.

 

저자는 우리가 왜, 진실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지 우리의 눈을 가리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거짓말, 돈, 자기에 대한 집중.......

쉽게 말해 사회가 우리에게 부여한 많은 역할과 환상 때문에 우리는 솔직해 지지 못하고, 진정으로 함께 발전해가는 사랑을 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실제로 행할 때 존재한다. 사랑은 사랑하려는 의지가 발현될때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랑은 의도와 행동을 모두 필요로 한다. '의지'를 갖는 다는건 선택한다는 뜻이다. 사랑하려는 의지를 갖고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은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고 사랑에 빠지기만을 기다리는 건, 말도 안된다는 걸 알면서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리는 데 그치는 건 '사랑하기로 결정할 용기'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많은 게 달라진다.

서로를 치유해 주는 사랑, 나와 너(I and thou)를 넘어서 모두에 대한 사랑을 해나가며 삶이 더 성숙해 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해나갔을때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저자가 '상실'에 대해 다룬 것도 그런 맥락에서 였다.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하는 것은 더 큰 성숙의 길이니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하기로 결정하자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결국 저자가 다양한 쳅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용기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으며, 또 진정한 사랑을 해 나가며 더욱더 성숙해진다는 게 아닐까 한다. '진정한'사랑은 물론 저자가 초반에 언급한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그에 대해 깊이 공감한다.

나는 거절을 두려워 하고 있었고, 거절로 인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 하고 있었고,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랑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언제, 어떻게 그게 끝날 것인지마저 무의식중에 재고 있었던 것 같다.

'나'를 위해서.

생각해 보면 내 짝사랑에는 '그'는 없고 '나'만 있었다.

 

저자의 책을 읽으며 나는 그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고민해 보았다.

아니, 고민할 것도 없었다.

어떤 행동도 뒷받침되지 않은 사랑. 그냥 혼자 보면서 좋아하며 번민에 시달리는 사랑. 나는 모든 시간을 '그'에 대해 생각하며 '카섹시스'에 도취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용기를 가지고 결정해보았다.

나는 지금부터, '그를 사랑한다.'고.

 

 

 

2.

책에는 자주 스캇 펙의 저서들이 인용된다.

한 두 저서가 아니라 여러 저서들이 인용되는 걸 보면 저자가 스캇 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검색해보니 그의 저서는 번역된 것은 물론 수입되어 재고가 있는 책도 없는듯 했다.(물론 알라딘 검색 한정이지만.) 아쉽다.

 

3.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사랑을 언급하며 불교나 뉴에이지 영성 서적이나 하여간 이런 저런 것들을 전부 다 뭉뚱그려 쏟아넣을까봐 걱정했었다. 목차상으로 볼 때 저자는 뉴에이지 영성서적이 이야기하는 사랑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뉴에이지 영성서적을 좋게 평가하진 않는다. 그녀는 뉴에이지 영성 서적이란 지배계층을 정당화 하는 것이고, 문제에 대해 '행동'을 취하는 것을 소극적으로 만든다고 평가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사랑을 위해 행동하라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주된 요지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저자의 뉴에이지 영성서적에 대한 이해는 조금 잘못되어 있는 것 같긴 하다. 아니면 이에 대한 이해 자체는 잘 했으나, 이를 잘못 이해한 다수의 사람들을 비판하고자 뉴에이지 영성서적 자체를 비판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냥, 뉴에이지 영성을 잘못 이해하였을 경우 사랑이 '모두에 대한 사랑'이 아닌 '나의 만족을 위한 사랑'으로 변질될 수 있기에 이 점을 경계하고자 언급한 후자쪽일 거라고 생각해본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을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영성적인 것들을 믿는다고 밝히길 꺼려하는데 저자가 자신이 거쳤던 영성과정들을 상담 학생들에게 친절히 말해준 바 있다는 저자의 태도가 용기있게 느껴졌다.

 

4.

오히려 불편했던 부분은 뉴에이지 영성 서적에 대한 저자와 나의 견해차보단 책 곳곳에 묻어있는 저자의 페미니즘적 성향이었는데, 사회 현상 및 몇 몇 책의 저자들이 글로 제시한 부분들을 '남성주의적으로' 살짝 꼬아서 생각한 부분이 문득문득 보인다.

전체적으로 책을 읽으면 상당히 넓은 시야에서 사랑에 대해 조망했는데도 특정 저서를 지칭하거나 소설을 지칭하며 비하한 부분을 비롯해 군데군데 편협한듯한 시각이 드러나는 걸 보면, 저자는 아직은 에리히 프롬 정도의 경지에 오른 것 같진 않다. 요지만 보면 전체적으로 맞는 말을 하는데도 지엽적으로 파고들어가면 싸움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가 저자의 글에는 자주 묻어난다.

 

물론 저자의 글이나 책의 내용을 비하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흑인 여성으로 태어나 공부하며 지금까지의 지위를 쌓기 위해 그녀가 살아왔을 투쟁적인 삶을 생각해본다면(이런 가정은 물론 내 편협한 선입견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녀의 글은 매우 온건해 보인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에리히 프롬은 저자에 비해 편안한 입장에서 자기 입지를 굳혀나가고 인정받을 수 있었겠지만, 저자는 그렇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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