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나카무라 코우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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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나서 그 사람 - 그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그녀의 엄마 하지만 그도 엄마, 라고 부르는 장모님이다- 과 함께 살게 되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나카무라 코우의 <여름휴가>는 내가 기대하는 그 이상의 뜨겁고 나른하고 의욕이 넘치지만 사실은 조금 피곤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년 내내 기다리는 나의 '여름휴가' 그만큼의 에네지가 그득하다. 조금은 지루한 듯 흘러가지만 간결한 문체는 오히려 생동감을 말하며 진지함에서 묻어나는 유머는 읽는 내내 즐겁고 호기심 나게 하였다. 어쩌면 나는, 일생일대(一生一大)의 거사(巨事)를 게임의 승부로 결정하려는 그들의 무모함이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삶에 대한 간절한 열의가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삶에서 감정을 조금 배제하고 한발 물러서서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그들의 냉정함이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들은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리라. p.59 비극이라고 하면 비극이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그게 우리의 인생이었어.

소설 <여름휴가>는 청약주택에 입주하는 것이 꿈인 평범한 신혼부부인 마모루와 유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유키의 절친한 친구인 마오코와 그의 남편 요시다 군의 이야기다. '꽈리고추를 먹었을 때 첫번째에 매운 게 걸릴 확률'에 상응하는 경쟁률을 뚫고 마모루와 유키는 청약주택에 입주하게 되었고, 그렇게 일상은 잔잔히 흘러가는 듯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요시다 군이 '열흘 정도 집을 비웁니다. 꼭 돌아오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라는 쪽지를 남기고 사라지고, 유키와 마오코, 마모루는 요시다 군을 추격하기 위한 여름휴가를 계획한다. 고요한 수면 아래 내재되어 있던 문제들이 조용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성인이 되어 가정을 이루었지만 아직은 채 성장을 마치지 못한 어른아이들의 해프닝들을 유쾌하나 진지하게 꼬집는다. 요시다 군의 갑작스런 컴백홈, 으로 그들의 계획은 꼬이고 꼬여 마모루와 요시다의 온천여행이 되어 버린다. 어색한 두 남자의 어리숙한 온천여행은 동성애자로 오해받으며 귀엽기까지 하다. p.192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습니다. 사태는 최악이라고 말해도 좋을지 몰라요. 하지만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가출이라든가 여행 같은 걸로 뭔가가 변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돌아왔으니까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작가는 부모세대의 과잉 사랑의 결과물로 어쩌면 혼자서는 어떠한 것도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불안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던걸까? 유치원을 졸업하며 '엄마'라는 단어와도 졸업하는 분위기 때문에 노란색 세면기에 수도 없이 연습했어도 결국은 '엄마'라고 부르는 길을 선택한 유키와 '장모님'이라는 글자를 겁내고 아내를 따라서 장모님을 엄마라고 부르는 마모루. 마모루와 사귄지 2년쯤 되었을 때 프로포즈를 받았다며 어떻게 할 지 고민하는, 결혼할 상대를 엄마의 선택에 맡기는 유키(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였겠지만). 강변을 바라보고 맥주를 마시며 이혼할 때는 동시에 하자는 약속을 하는 마모루와 요시다. 요달랑 쪽지 한 장 남기고 가출하는 요시다는 그 이유 또한 가관이다. 요시다 군이 가출해서 한 일은 위클리 맨션에 잠복에 카메라를 분해한 일 뿐이다. 그런 요시다 군에게 난투게임으로 결투를 신청하는 유키와 마오코. 좀 어이가 없기도 해서 나는 마구 피식피식 웃어버렸다. 어쩌면 삶에 이렇게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삶에 과도하게 진중한 편이라서 이러한 가벼움이 마냥 신기하고 부럽다p.125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인생의 절반은 성공이다.

평온한 듯 지리한 그러나 뜨거운 여름날 금방 녹아내릴 듯한 살얼음판 위처럼 위태로운 일상을 지난다. p. 228 극복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시다 군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공평함을 극복했다. 요시다 군은 집을 나와서 결의하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 뒤에 패배하고, 껍집을 깨고 나온 것이다. 요시다 군은 두번의 난투 끝에 결국 승리를 거뒀다. 마모루도 사실은 유키와 마오코도 원하는 결과였으리라. 요시다 군이 조금 더 삶에 열의를 가지길 바랐으리라. 아마도 그들은 삶은 난투 후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와 있을테지만 그 안에서 한 뼘 더 쑥- 자라있을 것이다. 어떠한 성장소설 못지 않은 성장(成長)에 관한 이야기. p.161 그것은 여름휴가와 마찬가지로, 언젠가 끝나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켜줄 것 같았던 엄마의 가출 선언. 모르게 깊은 정이 든 마모루는 눈물이 핑, 돌지만 우리보다 개인적인 성향이 짙은 일본의 이야기라서 그럴까. 나의 엄마, 나의 장모님 이전의 그 삶을 존중하기로 한다. p.240 수컷 늑대는 어느 날 갑자기 무리를 나간다. 무리는 거것을 받아들인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전폭적인 신뢰와 애정이 기반이 되어 있지 않으면 그 자연스러움은 자리할 수 없다. 요즘 애청하고 있는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을 보면서 뭉글뭉글 왈칵왈칵 거리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부모는 가장, 아내, 부모라는 이름표가 제법 무거운 거 같아서 괜스레 죄송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숨겨 품어왔던 꿈을 위해 도전하는 머리 희끗한 진짜 청춘을 보면서 부끄럽기도 하였다. 이제 아흔을 바라보시는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꿈을 무엇이였을까. 오늘 저녁에는 꼭 전화를 해서 여쭤봐야지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여름휴가, 라고 하면 해수욕장이나 유명한 관광지을 바랐으나 어느 순간 정말로의 휴(休:쉴 휴, 따뜻하게 할 휴)를 가고 싶어 졌다. 그러한 휴가와 잘 어울리는 소설 <여름휴가>, 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나카무라 코우를 만나서 참 반가운 시간이였다.   



 p.204

"승부를 거느냐 마느냐, 인생은 그것밖에 없어." 



녀, 어른이되다.

copyright ⓒ 2011 by. Y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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