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전 - 고려대학교.중국학총서 18
고지마신지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5년 5월
평점 :
절판


 

  많은 사람들이 홍슈취안과 태평천국 운동을 평가 절하할 때 가장 많이 지적하는 점이 있다. 그것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아서, 근대적인 사회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일면 타당한 면이 있지만, 그것에 대해 조금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가령 이슬람 국가들의 경우,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지 않지만 국가는 잘 굴러가고 있다. 종교가 정치적인 영역을 반드시 간섭하고 방해한다고만은 볼 수 없는 것이다. 조금 다른 경우이기는 하겠지만,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국가 신도를 발전시켜 근대적인 사회를 만들었다. 그런데 태평천국 운동에 종교적 요소가 많다고 해서 비난만 할 수 있을까?

  물론 지금 상황에서 태평천국 운동처럼 농민반란이 일어나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태평천국의 사상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전근대적’이고 ‘위선적’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태평천국 운동이 발생하게 된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홍슈취안은 그렇게 헛된 이상에 목숨을 던졌던가? 열심히 책상 앞에서 과거 시험만 준비하던 그가 무엇 때문에 사람들을 모으고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가? 홍슈취안의 꿈이 단지 헛된 망상에 불과하였다면, 그렇게 많은 민중들이 호응을 보낼 수 있었을까? 혹시 고통스러운 현실에 절망하여,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목숨을 버려가며 청 왕조에 반항하였던 것은 아닐까?  태평천국 운동이 진압된 지 15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는 갈등을 겪고 있다. 게다가 최근 한국의 많은 청년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미래와 현실의 암울한 상황에 절망하고 있다. 홍슈취안을 단순한 이상주의자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그와 태평천국에 참가하였던 많은 민중들을 ‘정신이상자’와 ‘폭도들’로 매도하기 전에, 그들의 절망에 가까운 탄식에 귀 기울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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