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시다 - 100권기념 발간시집 세계사 시인선 100
최승호 지음 / 세계사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1
현금이 빠지지 않는다. 손가락이 떨리고
사막의 폭풍은 시작되었다. CNN은 바그다드 시내의 폭발음을
생방송으로 들려주고 있다. 우리는 전쟁도 프로야구처럼
생방송으로 즐기게 되었다. 다국적군의 사기는 높고
현금이 빠지지 않는다. 손가락이 떨리고
수첩갈피에 적힌
BC카드의 비밀번호를 확인해본다. 끼리리릭,
끼리리리릭, 현금자동지급기의 검색은 계속되고
모래 밑으로 묻혀 가는 병사들,
그들은
그렇게 죽어가고
등허리로 땀이 흐른다. 눈앞이 캄캄하게 어두워오고
섬광처럼 지나가는 저 불빛들.
바그다드 상공에선 야간공습이 진행되고
현금이 빠지지 않는다. 비밀번호가 틀렸단 말일까,
거래은행이 온라인망을 닫아버린 것일까,
계기판의 디지털 숫자는
의혹의 눈빛을 풀지 않는다. 누가
이 도시의 온라인망을 쥐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그렇게 묻혀가고
은행잔고가 바닥이 나버린 것일까, 누가
나의 잔고를 빼내간 게 아닐까, 누가
온라인 회로의 끝없는 터널 뒤에서
저렇게 웃고 있는가. 현금자동지급기는
BC카드를 돌려주지 않는가. 자기테이프에 감긴
나의 生,
그들은
그렇게 죽어가고
모래무덤 속으로 영원히 갇혀가고
현금자동지급기는 끝끝내 나를 돌려주지 않는다.

-<현금자동지급기 앞에서의 불안>, 오정국





2
...현금이 빠지지 않는다. 손가락이 떨리고

아까부터 담배를 피고 싶은데 주머니에 돈이 없다. 집에서 용돈을 보내주지 않아 통장은 비어있고, 이미 가까운 친구들과는 심각한 채무관계가 맺어진 지 오래이다. 길바닥에는 십 원 짜리 동전하나 떨어져 있지 않다. 배고픔과 금단 증상으로 손가락이 떨려온다. 빈 주머니 속에서 푸석푸석한 서글픔이 만져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한다. 돈이 곧 생명이고 때로 죽음이다. 이제 우리는 칼이나 총이 아닌, 지갑 속에 들어있는 지폐들에서 죽음에의 강박을 느낀다. 그 종이는 아주 무거우며, 또 神적이다.
자본은 하나의 네모난 틀이다. 우리는 우리의 인간적 가치들을 그 가공의 틀 속에 가둔 채 살아간다. 그 틀은 매우 견고하고, 불투명하다. 처음에 우리가 그 틀을 고안해냈을 때 우리는 그 틀이 그렇게 거대해지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틀은 성장을 거듭했고, 마침내 우리 "안"이 아닌, "밖"으로 나와 우리를 가두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요지경인 텔레비전은 그래서 이 무자비한 틀과 닮아있다.

인간의 날개와 눈물마저도
당신 가슴속에서만 재생산된다니
두려워요 이제 다시는
빼앗긴 꿈의 신화를 찾을 수 없나요
오 놀라운 전능의 네모난 신전
우린 모두 당신의 불쌍한 종이에요

-<텔레비전 광시곡>, 김형술


돈과 자본이라는 감옥에 우리는 투옥되어 있다. 인간적인 자유를 빼앗긴 채, 그 좁은 공간 안에서 자유와 행복을 꿈꾼다. 하지만 천장은 낮고, 바닥은 차갑다.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있지만, 자본이라는 수단을 쟁취하지 못했을 때, 그러니까 경제학적으로 죽었을 때, 우리는 사회학적으로도 죽는다.
자본이 삶과 죽음을 지배한다. 생과 사의 선택권은 우리가 아닌 그들에게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적이지 않다. 숫자와 몇 가지 경제학 공식, 우리의 생은 그 차가운 기준들에 의해 분류된다.

사막의 폭풍은 시작되었다. CNN은 바그다드 시내의 폭발음을
생방송으로 들려주고 있다. 우리는 전쟁도 프로야구처럼
생방송으로 즐기게 되었다. 다국적군의 사기는 높고
현금이 빠지지 않는다. 손가락이 떨리고



절망이 거기에서 온다. 우리는 현금 인출기 앞에서 명세서의 잔고 액수를 보며 절망한다. 그 숫자들이 우리 인생의 많은 부분들을 지배하고 있기에, 우리는 명세서를 받아들고 그것이 마치 신의 지령인 듯 긴장한다. 이 긴장은 우리 사회의 아주 거대한 부분이다. 자본은 우리의 생과 사를 결정하는 것에 더해, 이러한 식으로 우리 삶의 방법 역시 강제한다.
그 방법에 따르자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어서는 안된다. 동물적이어서도 안된다. 디오니소스는 잊고, 아폴론을 극단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기계를 닮아야 하며, 본능이나 감정 대신 이성을 극도로 발달시켜야 한다. 인간에게 내재한 본연의 코드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 쉽게 말해, 우리는 "인간"을 버려야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태초에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났으며, 멸망의 그 날까지 인간일 수밖에 없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틀이다. 인간이 창조해 낸, 그 불합리한 틀이다.
그런데 이 틀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그 틀의 본질을 알 필요가 있다. 문제는 틀의 주인이다. 자본이라는 거대한 강박 역시 무엇엔가 귀속되어 있다.

...누가/이 도시의 온라인망을 쥐고 있는 것일까
...누가/나의 잔고를 빼내간 게 아닐까, 누가/온라인 회로의 끝없는 터널 뒤에서/저렇게 웃고 있는가.

모순적이게도, 다수의 우리들에게 비합리한 삶의 방법을 강제하는 틀의 주인 역시, 인간이다. 그 틀에 효과적으로 적응한, 소수의, "우리들"이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결국 우리인 것이다.
연속된 실패는 체념은 부른다. 하지만 계속되는 시도는 실패를 언젠가는 극복한다. 체념은 그래서 아직 이르다. 김수영 시인이 이야기한 "풀"은 아직 죽지 않았다. 황지우 시인이 이야기한 "풀잎 뒷면의 은빛"도 아직 살아있다. "흑염소"는 여전히 자신을 속박하는 "줄을 더욱 세게 잡아당기고" 있다.

혁명은 꼭 완성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역 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저탄더미
환승 기다리는 승객들에게 검게 말한다
.......
함께 누운 원시림들 엄청난 지압 견디며
물먹은 목질 켜켜이 불꽃 채워 숨기며
그 때 이미 혁명은 시작된 것이었다...

-<저탄더미를 보며>,김윤배


시인의 말처럼 기다리는 일은 분명히 고되긴 하지만, 변화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틀 속의 우리들이 그 틀의 본질을 깨닫고, 연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뭉치는 것은 언제나 힘이 된다. 힘이 처음부터 힘이었던 것은 아니다. 일단 작은 힘들이 모여야 큰 힘이 된다.

묶이는 것도 하나의 기쁨이 되는가.
......
낟알이 털어지면서
빈 짚단 더미가 되어
삭풍받이로 쌓였다
......
꿈꾸는 낟알들을 위해서는
묶이는 것도 황홀한 기쁨이 된다.

-<볏단>, 이근호

[내 몸이 시다]는 89년부터 흘러온 우리 시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시집이다. 이 시들은 앞서 말한 "틀"에 대한 각기 다른 여러 가지 자세들을 표출하고 있다. 어떤 시도 틀을 떠날 수 없다. 시는 현실이며, 우리의 현실은 그 틀을 벗어나서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의 진실은 현실의 그러한 양태들을 무엇보다도 극명하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시는 틀의 본질을 본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시인의 생각들을 함축하여 제시한다. 독자는 그 시대의 시들 속에서 시대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모든 것들이 계산되고 짜여지는 이 공장 같은 세계에서 시는 이 견고한 틀의 "틈"을 공략하는 하나의 무기다. 시는 우리가 있고 있는 인간적 가치들을 일깨운다. 우리는 잊고 있던 "잃은 것"들에 대한 기억을 시 속에서 찾아낸다.

비 맞고 서 있는 나무들처럼
어디
안길 수 있을까
비는 어디 있고
나무는 또 어디 있을까
그들이 만드는 품은 또
어디 있을까

-<품>, 정현종

시는 꿈의 설계도다. 정현종 시인의 시 속에서 나는 이 무자비한 틀의 틈을 본다. 시인의 "품"은 분명히 그 자신의 시 속에도 있다. 그의 시를 보며 나는 깨닫고, 위안 받고, 행동한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시 역시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는 명령들이다. 하지만 그 명령들은 강제적이지 않다. 우리는 시 속에서 서로의 현실을 인식하고 저마다의 방법론들을 펼쳐나간다. 시의 힘이 거기에 있다. 우리는 각기 다른 그 설계들 속에서,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변화에 대한 굳은 신념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시는 내 꿈의 몸이며, 그래서 내 몸이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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