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뱅과 공동선 - 프로테스탄트 사회 윤리의 신학적 토대
송용원 지음 / IVP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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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원, 『칼뱅과 공동선』, IVP, 2017



‘공동선’의 렌즈로 칼뱅을 풍성하게 이해하기



1. 들어가기



한 시대를, 한 집단을, 한 국가를 주조한 사상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대표적인 예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책의 저자인 김경일 교수는 그 책에서 한국의 사회적 병폐가 공자에 기인함을 밝히면서 한국의 교조화된 유교적 전통에 날카로운 비판을 더 한다. 하지만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김경일 교수의 저작을 비판하면서 결국 공자라는 유교적 전통의 중요성을 변호하는 책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 개신교의 가장 큰 공통분모는 ‘칼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국 개신교의 주류는 장로교이며 이들은 칼뱅의 전통을 계승했다. 공자처럼 한국 개신교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칼뱅에 대한 평가도 양면적이다. 한 편에서는 칼뱅의 전통에 너무 함몰되어 삼위일체에 칼뱅까지 사위일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전통을 과격하게 전복시키면서 칼뱅의 유산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칼뱅과 공동선』을 보며 드는 질문은 과연 ‘칼뱅이 죽어야 교회가 살까, 칼뱅이 살아야 교회가 살까?’에 대한 것이었다.

‘칼뱅이 죽어야 교회가 살까, 칼뱅이 살아야 교회가 살까?’라는 질문 뒤에는 구체적으로 세 가지의 질문을 설정했다. 첫 째, ‘500년 전 사상가, 칼뱅은 오늘날 한국교회에 무슨 답을 할 수 있는가?’, 둘 째, ‘특별은총에 함몰된 한국교회에 칼뱅의 신학은 무슨 답을 할 수 있는가?’, 셋 째, ‘칼뱅주의 5대 교리, 이중예정 정도로만 유통되는 칼뱅의 신학은 어떠한 풍성함을 담고 있을 것인가?’였다. 이 질문을 가지고 『칼뱅과 공동선』을 읽었다.



2. 『칼뱅과 공동선』



이 책은 크게 서론(들어가는 말)과 1부 신학적 근거, 2부 신학적 적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신학적 근거에서는 칼뱅의 공동선 개념을 구성하는 신학적 토대를 각각 하나님 형상과 공동선, 성화와 공동선, 율법과 공동선으로 추적한다. 이어서 2주 신학적 적용에서는 앞서 밝혔던 신학적 근거를 토대로 공동선 개념을 교회와 인류에 적용시킨다. 이 책을 읽는 데에 있어 들어가는 말은 분량은 적지만 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하려고 한다.

우선 이 책은 ‘들어가는 말’에서 일종의 시대진단을 제시한다. 인류의 역사가 발전할수록 공동체의 연대성이 쇠퇴하고 개인의 개별성이 상승한다는 가장 근본적인 진단 위에서 공동체성은 자리를 잃고 있으며, 상대주의, 이기주의, 개인주의, 소비주의로 세상이 분열되고 있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조화를 이루고, 인류가 평화를 영위하기 위해서 공동선(共同善, the common good)의 개념이 주목되고 있음을 주장한다. 이후에 저자는 공동선 개념을 개념정의 한다. 이 공동선 개념은 포괄적이며 누구에게나 선해야 한다. 저자는 이런 공동선의 개념이 하나님은 일반은총(common grace)과 관련됨을 지적한다. 공동선은 개개인에 대한 강조가 있기에 전체를 강조하는 공익과는 다른 개념이며, 공동선은 공(公)과 사(私)를 아우르는 조화를 모색하는 개념이다. 이후에 책은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정치철학, 사회경제적 차원에 나타난 공동선 개념을 서술하고, 신학적 차원의 공동선 개념에 이른다. 신학적 차원에서는 공공 생활에 최우선의 관심을 갖는 하나님을 상정하기 때문에 공동선의 위치가 강조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펼쳐지는 은혜와 사람들 사이에서 나누어지는 선물을 통해 구현되는 창조의 본래 목적이자 질서, 그것이 바로 신학적 차원에서 보는 공동선이다.” 이어서 저자는 신학의 공동선 개념의 독특성에 대해 제시한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로 대표되는 사회의 공동선 사상은 평등과 자유가 양립하기 어렵지만 기독교의 공동선은 신적 은혜에 순종할 대 자유와 공평을 모두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아퀴나스의 자연법 사상을 설명하고, 이어서 칼뱅의 공동선 사상에 대해 서술한다. 저자는 칼뱅이 일평생 공적 이익을 연구하고 권고한 사상가로 평가하고 칼뱅의 사상은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답하는 공공신학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단편처럼 흩어져있는 칼뱅의 공동선에 대한 유산을 칼뱅의 원전을 분석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종교개혁의 공동선의 유산을 복원하고, 이 책을 통해 한국 교회가 잃어버린 종교개혁 사상 안에 담긴 공동선에 대한 신학적·실천적 유산을 환기할 것임을 밝히고 이를 현대적으로 적용해야 함을 제시한다. 명료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결국 “칼뱅을 중심으로 프로테스탄트의 공동선 아이디어에 조직신학적 토대와 적용을 제공하는 것”이며 “도시화되고 지구화된 현대 사회의 수많은 갈등과 과제를 풀어 갈 수 있는 신뢰할 만한 하나의 대안적이고 협력적인 세계관으로 프로테스탄트 공동선을 제안하고자” 하는 것이다.

1부 1장에서 저자는 하나님 형상과 공동선에 대해 논한다. 인간론은 인간의 보편적 특성을 전제함으로써 인간 공통의 의무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칼뱅이 제시한 인간 근본의 존재에 대한 규정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신학적 토대에서 풀어나간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 형상에 대한 세 부분(관계·실체·공동체)에 초점을 둔다. 칼뱅은 하나님 형상 이해는 타락 이전과 이후, 구원이라는 세 단계에 따라 역동성 있게 변화했다. 칼뱅의 공동선 개념은 도덕·사회·인문주의적 개념인 동시에 영적·종교적·복음적 개념이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창조-타락-구속이라는 구속사적 맥락에서 이를 설명한다. 타락 이전의 인간은 하나님의 선하심은 부여받는 존재이다. 동시에 인간은 하나님의 선을 이웃과 공유함으로써 인간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 형상(善)을 반영하고 확장한다. 하나님의 형상의 관계·실체·공동체 측면을 바라보는 것은 중요하다. 하나님 형상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있을 때 두드러지는 특성이다. 하지만 타락이 하나님의 관계를 변화시켰다. 이에 따라 예수 안에서 회복된 하나님 형성을 회복하는 것이 관계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해진다. 저자는 현대신학자인 에밀 브루너와 칼 바르트의 하나님 형상 이해와 칼뱅의 이해를 대조하면서 칼뱅의 이해가 가진 특징을 보여준다. 칼뱅은 하나님 형상의 공동체적 속성을 강조했고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을 향한 공동체 윤리 명령이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고 보았다. 칼뱅은 연대의 근거는 삼위일체적 속성에서 끌어들인다. 칼뱅은 인간이 타락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의 인간 안에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의 존엄성이 옹호될 수 있으며, 기독교의 인간론을 보편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칼뱅은 모든 사람이 공동선의 주제가 될 수 있으며, 공동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이 칼뱅 사상이 갖는 공공신학적 함의이다. 칼뱅은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그리스도를 통해 극복할 수 있으며 이 회복된 형상에서 공동선을 도출해낸다. 회복된 형상으로 새로워진 삶은 공동체적이며 동시에 누군가를 배제하는 공동체가 아닌 모두를 표용할 수 있는 공동체여야 한다. 지속적으로 칼뱅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공통 근거를 중심으로 타인과 타종교인들을, 모두를 포용하는 관점을 강조한다. 칼뱅이 본 하나님 형상의 관계·실체·공동체 속성은 기독교 사랑의 존재론적 토대이다.

이어지는 2부 성화와 공동선에서 저자는 칼뱅의 '신자의 자기부정'과 '삼위일체'에 초점을 맞춰서 내용을 전개해나간다. 칼뱅에게 신자의 자기부정은 개인 윤리와 공동체 윤리를 포괄한 개념이다. 개인의 내면적 윤리와 성화에만 집중하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성화는 삼위일체를 중심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이 중심에는 참여와 접목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자기부정은 칼뱅에게 중요한 개념이다. 자기부정은 자기사랑의 반대개념이다. 칼뱅은 자신의 공동선 신학에서 자기부정을 직접 논하지 않았지만 그는 성화와 공동선 신학을 연결했다. 그에게 자기 자신을 비우고 모든 피조물을 섬기는 것은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었다. 기독교인들의 자원은 가난한 이웃과 교회를 섬기는 이들을 위한 희생으로 쓰여야 한다. 칼뱅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부정의 표본이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회복된 하나님 형상은 새로운 인간의 토대가 되고 그리스도의 자기부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또 그리스도는 연대의 토대로 작용한다. 그리스도와 인간은 공통된 본성을 공유하는데, 이를 통해 연합이 가능해진다. 칼뱅은 이 연합과 자기부정을 긴밀하게 연결하려고 노력했다. 그에게 사랑은 모든 사람을 포함한 개념이다. 그는 자기부정의 전제로 봉헌과 헌신을 이야기했고, 이웃의 유익을 위한 자기부정으로 겸손과 존중을 강조했다. 또 영성으로서 청지기 전신을 통해 한 형태를 제시했다. 내가 핵심적으로 느낀 것은 자기부정이 부정 개념 이상의 것이라는 것이다. 자기부정은 ‘죽게 하는 것’(mortification)만이 아니라 ‘살게 하는 것’(vivification)도 내포한다. 자기부정은 교회의 공동선을 추동할 수 있는 동력이며, 이웃사랑과 교회의 공동 유익을 위해 살아가는 신자의 모습은 자기부정을 실행하는 증거이다.

다음 3장에서는 율법의 다양한 용법과 그 관계에 대한 통합적 재고를 통해 논지가 전개된다. 이 장에서는 율법의 세 가지 단계, 십계명 이해를 공동선의 렌즈로 풀어낸다. 먼저 칼뱅은 율법을 타락 이전 모든 인류의 공동선을 위한 신적 선물을 나누고 공유하는 삶의 방식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타락 이후에 율법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간극을 인식하게끔 하는 도구로써 작용하는 데 이를 율법의 제1용법이라고 한다. 이는 공동선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예비적 단계이다. 율법을 통해서 신자들은 사회적 삶을 통제하고 이를 통해 사회의 공동선 유지를 위한 직접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것이 율법의 제2용법이다. 끝으로 율법의 마지막 단계인데, 이 단계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자들에게 율법은 신자들이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칼뱅에게 십계명은 율법의 구체화이면서 율법의 제3용법과도 관련이 있다. 율법의 제3용법은 자기 과신을 통제하는 것과 연관 있다. 칼뱅은 우리의 자기 확신과, 공로를 뽐내지 않으려면 제3용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 째 돌판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상호관계가 강조되고, 둘 째 돌판에서는 인간의 사회적 삶에 대한 해답이 있다. 십계명은 모든 사람을 위해 주어진 계시이다.

앞선 1부 ‘신학적 근거’에서 저자는 칼뱅의 신학을 가지고 공동선 개념을 도출시켜 재구성해냈다. 이어지는 2부 ‘신학적 적용’에서 저자는 ‘교회와 공동선’, ‘인류와 공동선’이라는 주제로 논지를 펼쳐나간다. 이 부분은 칼뱅의 신학을 적용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먼저 교회와 공동선에서 칼뱅의 사상에 있어 교회가 갖는 위치에 대해 설정하고 시작한다. 칼뱅은 일반은총을 강조했지만 자연 세계와 구별되는 교회에 주안점을 두었다. 칼뱅에게 신자의 성화는 교회와 연결된 개념으로서 중요하다. 신자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교회공동체의 교제 속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칼뱅은 교회의 공동체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 점은 이후에도 강조된다. 칼뱅에게 교회는 유기적 교제와 영적 연합 그리고 실질적인 물리적 연대까지 구성하는 신비한 몸이다. 이 교회는 세상에 하나 된 선물을 나누는 공동체로 받아들여진다. 신자들의 은사는 다양하게 맡겨지고 구현된다. 따라서 신자들은 연대, 상호의존해야 한다. 또한 칼뱅은 기도, 세례와 성찬에 대한 견해는 기독론적 공동선의 역할과 교회론적 공동선 역할의 연결고리 파악할 수 있다. 칼뱅에게 기도는 공적이며 타자지향적인 기도이다. 연대성을 가지며 교회 중심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주기도문을 강조했던 칼뱅은 기도를 ‘교회의 공동 유익을 위한 영적 소통’, ‘물리적 나눔’의 두 축으로 이해한다. 더불어 칼뱅은 세례를 공적 사건으로 이해했으며, 이를 통해 신자는 영적 뿐만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칼뱅은 성찬을 일방적인 선물 수여 시스템으로 이해하지 않고 상호참여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독특한 점은 칼뱅이 성찬을 교회 안에서의 사건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교회 밖의 어려움을 처한 사람들을 구하는 것으로도 보았다는 점이다. 뒤에는 칼뱅의 미사에 대한 비판과 교회 공동선을 위한 공적 직무와 재산이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이제 막바지로 인류와 공동선에 대한 칼뱅의 신학이 나온다. 먼저 저자는 칼뱅신학에 있어서 일반은총의 위치를 논한다. 저자는 일반은총을 강조하는 신칼빈주의 전통과 일반은총은 과소평가하고 특별은총을 강조하는 입장을 서술하면서 이 둘은 비판적으로 극복한다. 저자는 칼뱅에 있어서 일반은총은 전자들의 분석처럼 크지도, 후자의 분석처럼 미미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조화의 관점에서 인류와 공동선을 조망한다. 그러면서 정리하기를 칼뱅에게 신의 진리의 및은 모든 세계 속에 찬연히 빛나며, 자연적 은사는 신적 은혜와 대조적이거나 분리되지 않는 것이다. 뒤 이어 정치적 공동선에 대해 이야기가 나온다. 칼뱅은 세네카 연구를 통해 최상의 정치는 공동선과 깊은 연관관계를 갖는다고 보았다. 더불어 공동선의 관점에서 정부의 권력은 선한 행위를 가르치는 동시에 공익을 해치는 행위를 통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기억 남는 부분은 칼뱅이 종교적 문제에 제한된 것이긴 하지만 저항권을 행사할 것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이어지는 경제적 공동선에서 칼뱅의 경제에 대한 이야기들이 진행된다. 칼뱅은 인간의 본성은 탐욕적이기에 경제활동을 왜곡한다고 보았다. 그는 ‘경제적 성화’라는 특유의 개념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사업을 통해 미덕이 증가되거나,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 일부는 희생하는 행동이다. 칼뱅은 노동을 영적으로 의미 있는 것이며, 공동체적 기여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또 칼뱅은 임금이 신의 은혜라고 정의했고 이에 따라 고용인도 신의 선물을 전달하는 정도의 역할일 뿐이었다. 칼뱅은 실제로도 낮은 임금을 개선하는데 분투하는 사회적 행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이어 ‘상업’, ‘이자’, ‘경제 사상 논쟁과 공동선의 부상’, ‘박애적 공동선’, ‘종합구빈원’ 등의 주제를 통해 칼뱅의 사상이 설명된다.



3.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의 저자 송용원은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칼뱅 신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데이비드 퍼거슨의 지도 아래 칼뱅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했다고 한다. 저자는 칼뱅 전공자답게 칼뱅의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높았던 것 같다. 저자가 밝히 듯 아퀴나스 같은 신학자와 달리 칼뱅은 ‘공동선’을 자신의 저자 한 부분에 할애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작업 속에 녹여놓았다. 그래서 이런 작업은 칼뱅의 전체 작업에 능통하지 않으면 어려운 작업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기에 칼뱅의 유산을 충분하게 이해하고 이를 위해 그의 원저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논지를 전개시키는 느낌이었다. 레퍼런스 또한 탄탄하다. 이런 장점 때문인지 책이 약 360여 페이지 되는 책이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중간 중간 쉬어가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쉴 새 없이 밀도 높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더불어 이 책이 다루는 주제가 지닌 희소성을 언급해야 될 것 같다. 저자 또한 아퀴나스의 자연법 사상을 다루는 책들은 많았다. 개인적으로도 여러 책을 비교하기 위해 도서관에 갔는데 법철학이나 여타 책들에서도 아퀴나스의 자연법에 관한 논의는 빈번히 찾을 수 있었지만 칼뱅에 관한 논의는 많지 않았다. 특히 있더라도 공동선에 대해 논의는 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해외의 논의에 대해서 나는 정보가 없어서 할 말이 없지만 이 책에서 저자도 칼뱅의 공동선에 대한 저술이나, 칼뱅과 교회의 공동선에 대한 연구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 그 점에서 이 저술은 희소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저자 고유의 독특한 관점을 제시한다는 것도 장점이다. 저자는 책에서 칼뱅에 대한 다양한 이해의 맥락을 제시하고 이 둘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의 관계에 대해, 칼뱅은 귀족주의적 공화주의자 였는가 민주주의적 공화주의자 였느냐 등의 상이한 칼뱅주의 맥락에서 창조적으로 자신만의 관점을 서술하기에 읽으면서 이 점이 흥미로웠다.

다만 아쉬운 점들도 존재하는데 어떤 부분에서 시대를 진단하는 부분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초반에 있었던 “신자유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는 세계개혁교회연맹의 아크라 고백처럼 레디컬한 내용이 제시되어서 조금은 급진적인 칼뱅사상을 기대했는데 본문은 건실한 개혁주의자 칼뱅의 모습이 중점적으로 조망되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적용을 현대적으로 끌고 오지 못하는 것도 아쉬운데 이것은 책의 주제의 일관성을 고려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아크라 고백까지 할 수 있었던 세계개혁교회연맹의 개교회들은 어떤 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 개신교는 프로테스탄트 공동선 사상으로 신앙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신학적 토대를 강화하고, 목회자와 평신도가 수평적·유기적 파트너십을 이루어 교회의 교회다움을 이루며 영적 공익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세습 등의) 중세 가톨릭적 폐단을 청산하고, 중소형 교회와 대형 교회의 양극화 추세를 총체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사회의 일반은총 영역을 하나님의 주권과 자비가 미치는 곳에서 재발견하여 시민사회와 더불어 지구화된 자본주의 아래 신음하는 약자들을 보호하고, 공정한 경제 질서를 세루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개신교의 공공성 회복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일상이 프로테스탄트 공동선 사상을 곱씹으며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닫는 과정으로 채워질 때 비로소 가능할지 모른다.” 279-280p.



이 책 서두에서도 언급하듯 결국 지금 칼뱅의 공동선 사상을 조망하는 것은 현재에 이유를 갖기 위함이다. 이 책을 통해 이중예정, 5대 교리로만 소비되던 칼뱅의 신학이 풍성하게 이해되고 칼뱅의 공동선 윤리를 통해 한국교회의 새로운 공동선의 에토스가 발현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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