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이 두 글자는 모든 회사원들이 싫어하는 단어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있는 '회의'란 것은
쌍방향이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아닌,
상급자의 목소리가 가장 크고 그들의 의견만을 듣는 일방향적인 측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그러한 고정관념을 어느정도 탈피시켜 주었다.
책에서 나온 회의의 모습은
직급을 탈피하여 나온 아이디어들이 버무러져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런 작품이 나온 배경에는,
비단,
소위 톡톡튀는 '아이디어'를 중시한다고 알려진 광고회사였기 때문이 아니라,
직급에 상관없이 평등함을 내세운 상급자와
직급에 상관없이 자신감을 내세운 직원들이
'공존'하였기 때문이다.
(덧, 저번에 박웅현 ECD가 회사에 강연을 하러 왔을 때 했던 말인데,
회의를 할 때 상급자의 역할은 자유롭게 나온 아이디어 중에서 좋은 것들을 건져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마치 낚시를 할 때, 아이디어라는 물고기 중에서 월척을 건져내는 낚시꾼 처럼-)
이런 회의도 있구나- 라는 점을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또한,
이 책은 너무 재미있다.
TV, 극장 등에서 입을 벌리며 감탄해왔던 그 광고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여과없이 보여진다.
(특히 나에게는, 군대 내무반에서 처음 보았을 때 멍- 때리게 만들었던,
SK브로드밴드의 'See the Unseen' 이 만들어진 과정이 있다는 점이 정말 좋았다 ㅎㅎ)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글 잘쓰기로 유명한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에 의해 묘사되었다는 점이
책을 손에서 떼어놓지 못하게 만든다.
다음에 명기하는 것 중에서 자신에게 해당되는 점이 있다면,
이 책을 읽으시면 좋을 것 같다.
1. 아, 우리 회사 회의는 너무 졸려.
맨날 x부장님만 이야기하고 우리는 듣기만 하지.
무언가 이상적인 회의의 모습은 어떠할까?
2. SK텔레콤의 '사람을 향합니다.'
LG전자의 '엑스캔버스를 하다.'
SK브로드밴드의 'See the Unseen'
대림산업의 '진심이 짓는다.'
를 보고 입 벌린적 있다.
3. 창의성은 어떻게 나오지?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지?
매번 고민한다.
(이 점은, 책에서 매우 적나라하게 말해줍니다. ^^)
4.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
광고회사가 대략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것은 책에서 말해준 '회의의 7대 원칙' 이란다. :)
(모든 것을 외워서 지킬 필요는 없고, 원칙이 주는 메시지만 알아채면 좋을 것 같다ㅋ)
1. 회의에 지각은 없다. 10시 3분은 10시가 아니다.
2. 아이디어 없이 들어오는 것은 무죄,
맑은 머리 들어오는 것은 유죄.
3. 마음을 활짝 열 것.
인턴의 아이디어에도 가능성의 씨앗은 숨어있다.
4. 말을 많이 할 것.
비판과 논쟁과 토론만이 회의를 회의답게 만든다.
5. 회의실의 모두는 평등하다.
누가 말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말했느냐의 문제다.
6. 아무리 긴 회의도 한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7. 회의실에서 나갈 땐 할 일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이것은 다음 회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빌려주셔서 좋은 자극을 주신 우승우 수석님 감사합니다. :)
# 인상깊은 구절
신기하게도 인상깊은 구절이라고 생각한 것이
모두 하나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다.
p.38
광고를 통해 SK텔레콤만의 색깔을 가져야만 했다.
숏커트 소녀가 나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던 TTL 같은 광고는 한물 간 접근이었다.
이제는 아무리 '선영아 사랑해'라고 외쳐도 사람들은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시끌벅적한 쇼로는 누구의 관심도 끌 수 없었다.
껍데기뿐인 깡통은 1위답지 않았다.
프레임이 바뀌어야 했다.
모두가 함께 각축을 벌이고 있는, 통신 회사들의 이전투구 현장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프레임 자체를 바꿔서, 우리 중심으로 판을 새롭게 짜야했다.
우리가 짠 판 위에서 경쟁사들이 놀도록 만들어야 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1위였으니까.
우리에게는 SK텔레콤이라는 브랜드를 단순한 '명사'가 아닌,
어떤 가치를 지닌 '동사'로 만들 의무가 있었다.
p.268
1위가 1위의 자리를 더 공고하게 지켜내는 것.
그게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 경우에는 1위가 만들어 높은 싸움의 판 위에서
2,3,4,5위 모두 싸우고 있는게 문제였다.
모두가 1위가 만들어 놓은 '프리미엄'이라는 싸움의 판에서 싸우고 있었으니,
다른 회사가 아무리 광고를 해도 결과적으로는 1위의 프리미엄을 높여주는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냉정하게 판단을 내려야만 했다.
아무리 프리미엄을 잘 이야기해도 1위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이 판에서 이기겠다는 건 비현실적인 목표였다.
그 때 말없이 조용히 앉아있던 카피라이터가 동그라미와 선 하나를 그렸다.
그러더니 선 반대쪽에 점을 하나 찍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되면 되는 거잖아요.
래미안과 아이들이 왼쪽에 모여있다면 우리는 선을 긋고 반대쪽에 있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다.
비슷하게 갈 바에야 아예 안 가는게 나았다.
이왕 갈 거라면 다르게!
그렇게 우리는 우리만의 땅을 구축해 나가면 되는 일이었다.
p.350
하지만 우리를 가장 기쁘게 한 소식은
e편한세상이 아파트 광고시장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모두가 '진심이 짓는다' 광고를 보며 속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이제라도 이런 광고가 나와서 기쁘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존 아파트 광고들의 스텝이 엉키기 시작했다.
우선 유명 모델들이 아파트 광고에 등장하지 않게 되었다.
혹 유명 모델이 나오더라도 예전처럼 무턱대고 고급스럽다는 이미지 광고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은 뭘 말하기 시작했냐고?
글쎄, 그게 문제였다.
강력한 팩트가 없으니, 그들은 공중에 떠다니는 친환경이니, 에코 같은 말들을 하거나
혹은 e편한세상의 광고처럼 팩트를 말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에게 e편한세상 광고를 따라한다는 비판을 받았음은 물론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