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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힘
성석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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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임진왜란, 병자호란... 전화의 시기에 네번이나 가출을 한 시골 촌뜨기 선비 채동구의 일대기이다. 성석제씨의 글은 판소리 같이 구수한 맛이 있다. 약하고 어리석은 인간 그자체인 채동구가 살아가는 방법을 보면 왠지 그냥 이렇게 초라한 나라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이런 멍텅구리, 이런 미친 놈,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나서긴 왜 나서. 하고 투덜거렸지만 읽다보니 이런 삶도 나쁘지 않구나 싶다. 무섭고 또 무서운데도, 배고플까 걱정되어 청군 몰래 육포들마저 바리바리 숨겨들여놓은 주제에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당신들한테 무릎꿇을 순 없다고 소리치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질끔나오기도 했다. 명나라에 사대를 하느니, 청에 사대를 하느니 사실은 어디에 사대를 하든 우리가 보기에는 다를바 없고, 그래서 광해군이 이리 저리 사정 보아가며 출병을 미루는 걸 실리외교라고 칭송하기도 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이런 장면에서는 상관 없다. 한없이 어리석더라도 이렇게까지 하나를 붙들고 추구할 수 있는 고집이 인간의 힘이다. 지금의 우리 시각에서는 바보 같은 허명을 쫓고 있는 것도 같지만 그 일관되게 쫓아가는 모습이 아름답게 비치는 건 아마도 이것이 인간의 힘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무엇보다 사람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