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의 움직이는 성 1 - 마법사 하울의 비밀 하울의 움직이는 성 1
다이애나 윈 존스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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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솔직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새 애니메이션의 원작이라고 해서 펴들었는데, 너무너무너무 재밌는거 있죠. 뭐랄까 로맨스물이지만 닭살스럽지 않아서 좋았어요. 하울씨 10000일(대략 계산해보면 서른정도?)이나 살아놓고 너무 귀엽게 구는 걸요. 저주가 걸려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할머니로만 등장하는 여주인공도 정말이지! 둘다 괴팍하기 이를 때가 없어서 멋졌답니다.

보통 마법사의 성에 우연히 들어가게 되어 마법사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아이라면 뭔가 좀더 전형적인 게 있는데, 저주받아 할머니의 모습으로 들어가서 몸도 마음도 할머니가 되어버린 우리 소피(여주인공)님께서는 터무니없이 괴팍한 짓거리를 해댑니다. 도대체 음침하게 모자나 해골에 말이나 걸고, 미친듯이 청소를 하는 바람에 실험이고 마법이고 다 방해하고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고, 그러고도 뻔뻔스럽게 고개를 치켜올리고 다닌다고요. 게다가 자기가 마법을 쓸 줄 안다는 사실도 몰라서 일을 더 크게 벌려놓죠.

아 그럼 우리의 남주인공 하울씨는 좀 어떨까요. 저렇게 말썽꾸러기 애인을 두고 있으니 로맨스의 법칙대로라면 겉으로 보기엔 괴팍하긴해도 어른스럽고 속이 깊은 그런 남자여야겠지만.... 사실은 겁많고 변덕스럽고 경솔하고 이기적이고 신경질적이에요. 또 허영심이 많아 여자가 자신에게 사랑에 빠질때까지는 열렬하게 쫓아다니면서 그 안풀리는 스트레스를 수제자 마이클과 소피에게 풀어놓고는 막상 사랑이 이뤄지면 냉랭하게 차버리곤 해요. 단지 허영심을 채우려는 것 뿐인 거에요. 게다가 얼마나 뺀질거리는지, 큰일을 맡기 싫어서 도망다니기 위해 움직이는 성을 만들었을 정도라니깐요.

그럼에도 이 둘은 어느샌가 모르게 서로 사랑하고 있어요. 아니 사랑한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나왔고, 그런 분위기도 마지막까지 하나도 안풍겼는데 말이에요. 서로 신경질부리고 소피는 할머니인척하고, 하울씨는 끝까지 허영만 부리다가 어느날 문득 소피가 마녀에게 붙잡혀가니까 그제서야 본성을 드러내는 거에요. 매일 욕실에서 두시간씩 치장을 하던 남자가 헝크러진 머리를 하고 구하러 갈 정도였으니까요. 아 물론 그때도 여전히 소피는 할머니 모습이긴 해요. ㅡ,ㅡ;

또 재미난 것은 마치 해리포터처럼 웨일즈와 이어진 세계의 이야기라는 거에요. 사실 행방불명된 마법사 설리먼이나 우리의 주인공 하울씨는 웨일즈 인이에요. 움직이는 성의 문고리를 맞춰서 열면 웨일즈 하울씨의 누나네 집으로 연결되죠. 한심한 백수 아저씨라고 그쪽에선 소문나 있는 모양입니다. 뭐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요. 아무일도 안하는 주제에 옷만 번지르르 하게 입고다니니까요.

엉망진창에 인간적으로는 사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커플이에요. 모자나 만들면서 궁상만 떨던 주인공이나 이리저리 자신의 책임을 피해다니는데 정신없으면서 치장하는데 두시간씩 걸리는 대마법사나... 그렇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하는 모험이라서 더 정감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직시하고 무서워하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용기를 짜내어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역시 반짝반짝, 흥미진진합니다.

아 그리고 2권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 같지만, 잉거리 왕국 남쪽 술탄이 사는 나라에서 압둘라라는 양탄자장수가 사랑하는 공주를 마신에게 빼앗겨 그를 구출하러 길을 나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죠? 그런데 마신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빼앗아 거기에 공주들을 납치하여 가두고 하울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어요. 게다가 소피는... 음. 이 이상은 스포일러입니다만 아무튼 마법의 양탄자와 알라딘의 요술램프이야기가 조금 이상한 방식으로 비틀어져 있습니다. 뭐 본 구조는 똑같아서 공주는 양탄자장수 압둘라에게 구출되어 서로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만, 조금 다른 듯도 해요. 마신은 다만 동생에게 꼼짝못하는 선한 마신으로 동생에게 이용당하는 걸 역으로 이용, 선한 마신의 역할따위 때려치우고 나쁜 짓좀 해보는 것 뿐이고, 소원을 들어주는 정령은 자신에게 소원을 비는 녀석들을 끔찍하게 싫어하고 귀찮아하며 겁도 많아요. 게다가 소원을 들어줄 때는 꼭 심술맞게 나쁜 일이 같이 터지게 만들죠. 압둘라도 그래요. 밤의 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여쁜 공주님은 궁안에서만 갖혀사는 바람에 처음엔 뭘 모르지만 사실은 사리분별 잘 하고 지혜롭기 그지없는 공주님이란 말이에요. 압둘라는 그거에 비하면 말빨 좋고 좀 소심쟁이에다가 의심도 많죠. 음 물론 공주님을 구하러 나선 그 용기는 대단하긴 합니다. 사랑의 힘이란 한도 끝도 없네요.

1편에서와 마찬가지로 엉망진창 요지경에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애기는 울어대고 개는 물어뜯고 고양이는 할켜대고, 여자들은 분노의 시선을 보냅니다. 하울과 소피, 그리고 소피의 자매 레티와 그의 남편 설리먼까지 등장해서 제각기 소란을 부추기죠.

그 소란을 한바탕 지켜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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