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스트레인지와 마법사 노렐 2
수잔나 클라크 지음, 이옥용 옮김 / 문학수첩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전에 1권을 읽고 한참 동안 엄두가 안나서 또다시 쓸쓸하게 버려져 있었던 조나단 스트레인지와 마법사 노렐을 어제 겨우 다 읽었습니다. 원래는 일찍 자려고 마음먹었는데 불행히도 또 재밌어지는 바람에 다 읽고 새벽 두시까지 다 읽고 잠들었어요. 기본적인 감상은, 대략 두권 합쳐서 1400쪽에 가까운 무시무시한 분량 때문에 망설이고 있던 거기 당신! 꼭 읽어요. 읽어야 해요. 동인녀 동인남이라면 더욱더 필수♡... 가 아니라 어쨌거나 무시무시한 분량만큼이나 전대기같은 서술 방식때문에 처음에는 잘 몰입이 안 되지만 한장 한장 페이지를 넘길 수록 영국 마법과 요정의 세계에 빠져들게 됩니다. 줄거리 서술은 아무래도 어렵습니다. 약 1400페이지의 내용을 어떻게 몇줄로 줄일 수 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아요. 19세기 초반의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거기에 마법을 섞어넣은 것이라 정말로 엉뚱하고 매혹적인 분위기가 난답니다. 실제로 우리주위에서 마법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거에요. 각종 주석과 가짜 연대기, 전기식 서술 방식은 그러한 분위기를 더욱 돋구죠.



마법이라고는 사라진줄 알았던 영국 땅에, 영국 마법의 부흥을 위해 진짜 마법사 노렐이 나타나고, 그가 전 국민의 주목을 받을 때에 그에 필적할 만한 재능을 가진 제자 조나단 스트레인지가 등장합니다.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마법이 사용되고, 때때로 요정의 길이 나타나고, 요정의 파티에 매일밤 초대받아 죽어가는 귀부인이 있는, 조금 색다른 세계에서 두 사람은 영국 유일의 마법사로 인정받지만 너무나 대조적인 사상과 성격때문에 사사건건 부딪히고 대립하게 됩니다. 옛날 레이븐 킹 시절의 융성했던 마법에 대한 입장차가 그중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었죠. 노렐은 그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냥, 쓰잘데기없고 의미없는 마법인냥 취급하고 스트레인지에게 가르쳐주지만 명석한 스트레인지는 노렐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정말로 영국마법의 부흥을 위해서는 레이븐 킹 시절의 마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스트레인지는 노렐과 대립하면서 레이븐 킹과 그를 길러냈으며 그의 마법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요정들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월터 폴 경의 부인 레이디 폴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노렐이 불러냈던 요정인 엉겅퀴덤불신사는 레이디 폴과 그 집안의 하인인 스티븐까지 마법으로 조종하여 요정의 파티에 끌어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엉겅퀴덤불신사가 딱히 악의가 있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그는 선악개념이 없는 '요정'입니다. 요정의 파티에 끌려와 반쯤 미쳐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해 동정도 하지 않고, 자신이 멋대로 왕으로 만들어주겠다며 쫓아다니는 스티븐이 얼마나 곤란해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한마디로 순진무구함과 잔혹함, 그리고 그것을 의지대로 행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어린 폭군과도 같은 겁니다. 그래서 정말 나쁜 놈인데 상당히 귀여워요. 제멋대로 굴면서 사소한 것 하나 때문에 사람들을 죽이고 아프게하는 걸 보면 진짜 뒤통수를 후려갈겨주고 싶고, 가끔은 오싹하기까지 하지만 멍하니 보고 있다보면 사람들이 요정에게 매혹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그들은 사람들이 얽매여 있는 온갖 규범들에서 자유롭고, 자신에게 충실합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마법과 같이 그에게 매혹되게 됩니다.


아이고 이야기가 너무 샜네요. 어쨌거나 요정이 스트레인지와 노렐의 곁에서 그런 무지막지한 일을 벌이고 다니는 동안 둘은 대립하느라 정신이 없군요. 그러는 와중에 엉겅퀴덤불신사는 급기야, 스트레인지의 사랑하는 아내마저 죽음으로 위장, 요정의 세계로 앗아가 버립니다. 스트레인지는 슬픔에 잠기죠. 그런데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이 좀 독특합니다. 더욱더 레이븐 킹과 요정들에 대해 연구하는데 정신이 팔린 거에요. 이제는 저지할 사람도 따스한 말 한마디로 정신들게 할 사람도 없어서 스트레인지는 미친것처럼 마법 연구를 계속합니다. 요정을 불러내고야 말겠다고. 노렐이 옛 마법책들은 전부 독차지 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주문을 찾아낼 수 밖에 없었던 그는 급기야 광기에 물든 사람들만이 요정을 보고 대화할 수 있게된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스스로 미쳐버리기에 이르고 맙니다. 여기서가 진짜 멋져요. 사람들 머릿속에 촛불이 하나씩 들어있는 환상, 몸안 가득 파인애플을 싣고 있는 환상, 일그러지고 기괴해진 환상의 세계가 펼쳐지며 스트레인지는 광기속에서 마법의 진리를 깨달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엉겅퀴덤불신사의 마법에 걸려 요정의 나라에 끌려와버렸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계속 대립하던 노렐과 스트레인지는 하나의 목표-노렐은 요정을 불러들여 레이디폴의 목숨을 구한바람에 오히려 마법에 걸리게 했던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스트레인지는 아내를 구해내기위해-를 통해 다시 하나로 뭉치게 됩니다... 만... 그건 마지막의 몇 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군요. 그리고 사실은 그들이 엉겅퀴덤불신사의 최후에 크게 관여하긴 했지만 사실 진짜 그 일을 해낸 사람은 따로 있으니... 으으음... 보통의 판타지와는 많이 다르죠? 악당은 주인공들의 손에 명을 달리하는 게 정상인데말이에요.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톨킨류의 판타지보다는 오히려 요정과 요정의 나라를 소재로 한 메르헨에 근본적으로 맞닿아 있습니다. 톨킨 이후 성스럽고 지혜로운 존재로 곧잘 등장하는 엘프, 즉 요정은 이 이야기속에서 좀더 원시적인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선악에 대한 개념이 없어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하기도 하고 영광스럽게 하기도 하는 변덕스런 존재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도개비가 있다면 영국엔 요정이 있달까, 꼭 그런 느낌이로군요. 잠깐 신선들의 바둑구경을 하고 온 사이에 몇 십년이 지나 도끼자루가 썩어있더라는 우리네(혹은 윗동네) 설화와 같이 황당하고 정제되지 않은 근원적 이야기들이 이 소설 내에서는 하나의 실체로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나단 스트레인지와 마법사 노렐의 신경전도 재밌긴 했지만 그런 것보다는 민담이 실체로서 무게를 가지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묘사와 설명들이 훨씬 매혹적이었던 것 같아요. 전설과 괴담따위를 들으면서 우리가 느끼는 이상한 느낌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거칠고 기괴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매혹적인, 생경한 감정이 잘 살아나도록 세계를 자아냈어요. 온갖 민담과 전설들이 빼곡히 들어차 현실로서 생생하게 숨쉬는 세계, 그리고 그런 세계를 돌아다니는 익숙하면서도 기괴한 보통 사람들... 그리고 나폴레옹, 웰링턴, 바이론, 메리 셸리과 같이 친숙한 역사속의 인물들까지 골고루 나와줘서 정말로 즐거웠어요. 정말 정말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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