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풍물지 한말 외국인 기록 17
G.W.길모어 지음, 신복룡 옮김 / 집문당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름 재밌었다. 의외로 쑥쑥 읽혀.

그렇지만 선교사, 그것도 자기네 미국과 자본주의 서양의 '근대'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이 인간에게 서울이란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저 어떠한 대상이며 타자에 불과하다. 절대 '우리'가 될 수 없는 누군가. 계몽해야하고 자본주의와 기독교를 전파해야하고 가르쳐야 하고... 외국인이 살기에 좋지만 그것은 '외국인'이 살기에 좋은 것일뿐.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인은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다. 언젠가는 '동등한 동료'가 될지도 모르지만 언제까지고 '학생'이며 '어린 아이'로 남아 있을 것만 같은, 정체된 존재이다. 함께 변화하며 발전할 생각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어보이는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쓰인 책이라 기분이 떨떠름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당시 서울의 사정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외국인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조차 과거가 얼마나 해이해졌으며 관행적인 수탈과 비리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확연하게 드러나서 안타까웠다. 조선이 진짜 망할 때가 되긴 했구나. 그러나 그것은 왕국 '조선'이 멸망하는 것이지 그땅의 백성이 멸망하는 것은 아니리라. 그 혼란한 와중에도 풍속이며 놀이며 문화가 나름대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는 것이 나타나 이상한 기분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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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신기했던 점. 그리고 .. 내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진정한 '전도', '문화 전파'의 자세가 어떠한 것이 옳은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주는 점 하나.

예전에 청에 선교사로 갔던 사람에 대한 위인전을 보았는데, 그사람은 청렴하게 청나라 사람들의 복식을 하고 말을하고 옷을 입으며 살았는데 다른 선교사가 말리면서 '동양에서 기독교를 믿게 하려면 우리가 좋은 옷을 입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 종교를 믿으면 잘 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전도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 주인공 선교사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민하면서도 그대로, 자신이 하던 대로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근데 여기 이 서울풍물지의 길모어는 학교를 운영하였는데, 넓은 양반집에서 기거하며 영국이며 미국이며 프랑스 따위에서 온갖 물품을 들여오고 궁이며 여러곳에서 들어오는 선물로 집안을 꾸미고, 테니스를 치고 서양식 피크닉을 다녔다. 그러면서 다른 선교사들에게 충고하는 장에서, 이 나라 조선에서는 양반 관료들을 귀히 여기고 자신과 같은 신분이라 하면 무시하기 때문에 선교를 위해서는 양반님네들처럼, 아니 그보다 잘 입고 잘 살아야 전도가 쉽다고 하였다. 그렇게 해야 자신들의 발전된 것을 보고 선망하며 그것이 기독교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만 보여주면 믿음을 갖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기독교를 믿는다고 천민, 양민의 생활이 그다지 나아지지는 않는다. 기독교를 믿던 안 믿던 그들은 그저 가난하고 어리석은 백성 이상으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교회 내에서조차도 백정교회와 양반교회가 나누어지는 판국이었다. 그들이 자신을 높이고 진정으로 자유를 얻게 되는 순간은 기독교를 믿고 따랐을 때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때 나타난다. 기독교만 믿으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나? 아니. 서양인들이 도와주나? 아니. 길모어의 선교관을 보면 그냥 교회만 다니게 하면 장땡이라는 것처럼 보여서 조금쯤 무책임하다거나 속물주의라는 생각마저 든다. 진정한 구원, 종교적인 전도란 무엇일까. 그들과 고락을 함께 하고 그들의 곁에서 같이 앞으로 나아가며 얻어지는 것이 아닐까. 자신은 별개 세계의 사람인냥, 가르치고 계도하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s. 단위정도는 표준단위로 환산해주지 그랬니...파운드 야드 피트... 정말 싫다...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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