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노는 아이들 - 상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윤정 옮김 / 손안의책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도서관 신간 코너에 있길래 냉큼. 전작(이라고 해도 될까나..)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를 무척 감명깊게 보았기 때문에 기대를 잔뜩 하고 빌렸다. 몸은 덜덜,눈도 어질어질, 머리는 지끈지끈한 상태에서 이 책을 읽어가다 보니 두통이 더 심해졌다.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노의 허영, 그것에 휘둘리면서도 어쩔 줄 모르는 츠키코, 어디론가 가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교지, 그리고 아사기... 아사기. 아사기. 몰라. 한마디 한마디가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서 말 못하겠어. 그냥 이미 아이들이라고 하기엔 나이를 먹어버린 대학 졸업반, 혹은 대학원 졸업반의 청년들이 극단적으로 방황하고 부딪히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이야기처럼 보였다.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에서도 그랬는데 여기서도 내가 요새 생각하고 있던 것과 너무도 흡사한 인생관을 가진 인간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그게 누구인지는 말 안 할래. ㅡ,ㅜ 내가 생각해도 너무 우울해서 그다지 말하고 싶지 않아. 그런데 나와 그가 다른 건, 그는 정말로 거칠 것이 없고(물론 최소한의 인연은 남겨두었지만), 나는 아직 내 뒤에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 그는 그렇기에 내키는 대로 하지만(좋은 뜻으로든 나쁜 뜻으로든), 나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웅크러들고 만다는 것.

이 사람의 소설을 읽다보면 내 자신이 참 싫어진다. 가슴을 후벼파는 이야기, 평범한, 아니 평범하다기엔 무척 착한 사람들의 안에 숨어 있는 어둠들을 날카롭게 도려내어 눈 앞에 내던진다. 이들에게조차 이런 어둠이 있어. 너는 어떻지? 마치 내게 그렇게 묻는 것만 같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아이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친구가 교직을 준비하는 입장이고, 또 주변에 출산한 사람도 몇 명, 아이 유치원 보낸다는 사람도 있고... 그러다 보니 이 책에 나오는 아동 학대의 문제가 좀더 가깝게 느껴졌다. 전에 로앤오더 성범죄전담반에서였던가? 부모의 냉담함이 아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실험 비디오가 나온 걸 보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 때 그 비디오에서는 아기가 막 울어도 눈 앞의 엄마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처음에는 더 크게 울었다. 애타게 보채고, 보채고 또 보채다가 그래도 엄마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으면 아이는 웃기 시작한다. 방긋방긋 웃고 억지로라도 애교를 부리면서 엄마의 관심을 끌려고 온힘을 다한다. 그렇게 해도, 그렇게 하더라도 엄마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으면 아이는 완전히 침묵한다. 아, 여기 무감정하고 냉혹한 인간 하나가 탄생하는 것이다. 웃음을 잃고, 울음을 잃고 사람의 반응을 기대하지 않게 된 아이. 이 상처는 나중에 아무리 치료를 받고 사랑을 받더라도 고쳐지기 힘들 거라고, 드라마 속의 심리분석가는 말한다.
그럼 직접적인 학대는 어떨까. 어느날은 상냥하다가 어느날은 너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면 미친듯이 두들겨팬다면. 아이는 어떻게 변할까. 서로를 짓밟지 않고서는 자기가 있는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는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자란다면 아이는 어떻게 변할까.

그리고 과연 그렇게 변한 아이가 되.돌.아.올.수.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의 결말은 어찌보면 터무니 없이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이야기이다. 아니면 우리와는 문화적 풍토가 다르기에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소설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학대로 변해버린 아이에게 그런 누군가가 생긴다는 것이, 마음이 맞닿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저 바랄 뿐이겠지. 평범하고 절친한 친구 사이도 너무나 쉽게 틀어지고 다시는 마음이 가닿는 법이 없게 되는 일도 흔하게 일어나는데, 너무나 다르고, 너무나 비뚤어져버린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줄까? 그 비뚤어진 사람이 그 손을 붙잡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너무나 비참한 이야기이지만, 이소설에서는 그런 면에서 굳건한 믿음을 보여준다. 닿을 수 있어. 인간인 이상은, 우리가 우리인 이상은 누구도 상처입지 않는 길을 택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는 거라고.

여기까지 오니 진냥의 시비르가 떠오르네. 그러고보면 츠키코는 레지나와 닮았구나. 그럼 교수님은 크루...(퍽)
......

자 망상은 한 줄로 끝내고,

아무튼 슬픈 이야기이다. 나는 잔인한 연쇄살인까지도 어떻게든 버텨내는 사람이지만, 아이를 괴롭히는 건 잘 못참는다. 그리고 살인이라는 범죄에 대해 정당성을 만들어주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미스터리나 스릴러 같은 걸 좋아하는 것치고는 정의가 승리하는 깔끔한 결말을 참 사랑하는 편이다.(그 '정의'라는 게 참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그래서 나는 이런 이야기는 참 싫다. 아무도 승리하지 못한 결말 따위. 모두다 커다란 상처를 안고 엉망진창이 된 채로 끝나는 이야기 따위는 정말로 싫다. 예전으로는 절대로 다시 되돌아갈 수 없다. 입밖으로 내기 꺼리는 화제가 생기고, 트라우마가 생기고, 어딘가 가슴이 싸해져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이 시시때때로 찾아오고 말 것이다.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사기는 이제는 정말로, 그 피값을 온전히 제 등에 짊어질 수 있을까. 고즈카들은 그런 아사기에 대한 기억을 온전히 견디어낼 수 있을까. 교지는 좀더 삶을 바라볼 수 있을까. 의문만 가득 생겨서 참 오랜만에 괴로운 글 읽기를 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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