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라디오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그레그 베어 지음, 최필원 옮김 / 시공사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앞부분은 무지 어려웠다. 생전 들쳐본적 없는 유전공학이니 생명공학이니 하는 이야기가 아주 전문적으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몇번이고 앞장을 들춰보면서 주인공들이 토론하는 내용을 10분지1이라도 이해해보려고 발악했다. 내생적 종양 RNA 바이러스라든가 뭐라든가. 아무튼 이론은 하나도 모르겠다. 중반부까지 토론과 논쟁을 거듭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이방인 마냥 방황하는 수 밖에 없었다. 중반부까지 읽고 또 읽고 나서야 대충 이해했다. 사실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새로운 아이들은 그냥 새로운 아이들일 뿐이다. 나는 그게 진화인지 모르겠다. 그것은 인간의 복잡한 의사소통구조와 첨단화된 사회에 최적화된 변이일 뿐이다. 생태계 전반에 걸쳐 보았을 때 그것이 진화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라는 종, 아니 이미 종은 분화되었지만 어쨌거나 그것이 지구라는 커다란 생태계, 커다란 생명체가 유지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방식일까? 아니 애초에 진화라는 건 뭐야? 생존을 위한 변이라는 거지? 그건 세포차원, 생명체 개체의 차원, 종의 차원, 목의 차원, 생태계 전체의 차원에서 모두 이뤄지는 것일까. 아 어렵다. 이정도까지 가면 이미 기술적인 수준을 벗어나게 된다. 일종의 철학, 신학이 되어버린다. 사실 철학과 종교는 모두 세계의 이치를 탐구하는 데에서 온 학문이니까 과학이 극에 달하면 그와 비슷하게 보이는 것도 가능할 듯하다.  
게다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종의 분화같은게 눈앞에서 일어난다면? 신의 징벌로 여기는 것도 우습지만은 않은 일이다. 세상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진실을 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일부의 학자들조차도 자신들의 판단이 옳은지 끝없이 의심하고 두려워한다. 변이는 사람을 두렵게 하는 법이니까. 변이가 질병이냐, 아니면 진화인가. 그것은 결과론적으로밖에 파악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치관에 따라 다른 것이기도 하고. 다운증후군인 아이로 태어난 자조차도 어떤 자에겐 축복이라 여겨지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같은 현상을 가지고도 어떤 이는 불안해하면서도 '진화'로서 그 변이를 받아들이고, 어떤 이는 악마가 퍼트린 질병으로 받아들이는 거겠지.
만약 이런 일이 생긴다면, 정말로 이렇게 되고 말 거야. 변화는 무섭고 불안한 것이긴 하다. 그중에서도 나는 불안증이라고 할 만큼 변화를 두려워 하는 타입이다. 내가 만약 SHEVA의 아이를 갖게 된다면? 나에게 알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난다면? 세계 곳곳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내가 멀쩡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솔직히 잘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조건 아이를 죽이려하진 않겠지만 다른 누군가가 날 해칠지도 모른다면, 내가 SHEVA의 아이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위협받게 된다면 낙태를 결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류의 진화냐 멸절이냐 하는 인류의 존망을 건 결정까지 갈 것도 없이, 그런 상황에서 내 아이에 대한 희망을 유지할 수 있을까. 무사히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죽음의 사신처럼 여겨질 것이 분명한데.  

아무튼, 책은 말한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세계가 패닉에 빠지고 정부는 그것을 해결하겠다고 나치 같은 짓을 저지른다고 하더라도, 사랑은 인류를 진화시키고 지구를 구하는 법이라고.

그래 사랑은 우주를 구하는 법이지. 

*PS-나만 그렇게 느꼈나 했더니 번역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군. 나는 어차피 시공사에는 희망을 접은 지 오래라서 말이지. 띄어쓰기 오타 오역. 시공사는 겉보기엔 크지만 직원 막 굴리고 일정 빡빡하게 잡기로 유명해서 교정 교열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내가 받아봤던 번역 원고는 이보다 더한 상태로 출판사에 도착했다. orz 그러니까 제대로된 번역원고는 그 후 번역자와 편집자가 서로 계속 부딪쳐 가면서 만들어 내는 셈인데 출판사 시스템이 좋지 않으면 그 작업이 허접하게 굴러가게 되고, 책이 허접하게 나오게 된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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