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환상의 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슬프고 우울하면서도 삶에 대한 열망 같은 게 엿보인다는 점에서 전에 읽었던 폐허의 도시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상실과 그 뒤를 이은 회복의 과정이 지난하게 이어지는 것이 정말로 눈물 겹다. 그런데 중간중간 간간히 어색한 어휘사용이나 오타처럼 보이는 것들이 있어서 신경이 쓰이더라. 폴 오스터는 정말로 우울할 때 읽기 좋은 소설을 쓴다.
그리고 읽으면서 다시금 생각나는 소년마법사의 구절.
이런 건 ―…어쩌면 교감같은 걸 지도 ―…모르지만 할아버지… 난 강해서 일어서려는 게 아니에요. 선 채 얼어붙을 정도의 충격도 아파서 일어설 수 없는 상처도 이 느낌보다는 훨씬 나아요. 생존자라는 말에 화를 냈지만 제 마음에도 절망이 어른거려요. 하지만 설령 이것이 그에 맞서는 행위라고해도 그저 주저앉이 있는 편이 힘겨울 때도 있어요―….
왠지 환상의 책과 잘 맞아떨어지는 구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앞으로 나아가는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멈춰서 있으면 더욱더 고통스러워져서 절망에 먹혀버릴 것 같아서,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키고 부딪쳐가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런 삶을 아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