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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의 도시 ㅣ 환상문학전집 7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평점 :
꽤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다시 읽은 건데, 이번에는 공을 들여서 천천히 읽어보았다. 여전히 깊이있고 아름다운 글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여전히 '싱'의 정체가 궁금하다. 도대체 그것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째서 그렇게 스스로를 고립시키면서까지, 유배당한 것마냥 외따로 떨어져서 타인을 억압하며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단 말인가. 불쌍하고 불행한 종족이라고 문득 생각했다.
그리고 어둠의 왼손에서 겐리 아이는 지구인과 다른 행성..어딘지 잊어버렸지만 아무튼 이종족의 부부밑에서 자란 아이이다. 그러나 둘 간에 아이가 생길 수 없기 때문에 양자를 들인 거라고 했는데. 환영의 도시나 유배 행성에서는 결혼해서 후손을 늘려가는 것도 가능했다. '싱'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족간에 아이가 혹여 태어나더라도 그 아이가 후손을 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러므로 환영의 도시나 유배 행성, 즉 前연맹의 세계에서는 이종족간의 결합이 가능하지만 '싱'만 제외되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어둠의 왼손은 환영의 도시 이후 다시 연맹이 형성된 뒤의 이야기니까...
여기서 가능성 세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 뿌리가 헤인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연맹 내의 종족끼리는 결합이 가능했던 것이다. '싱'은 연맹 밖에서, 즉 헤인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종족끼리의 결합과 후손 남기기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 가설은 환영의 도시 이후 '싱'이 몰락하면서(혹은 전향해서?) 결국 연맹 내에 포함된 게 아닌가 하는 가능성을 남긴다. 헤인 연맹 내의 종족끼리는 후손을 남기는 게 가능한데 겐리 아이의 부모는 후손을 남기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둘 중 하나가 싱의 후손일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이거 나름 해피엔딩이군!
둘, 사실은 '싱'이 뭘 모른 거다. 가능한데 그들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것이다.
이건 제쳐두련다.
셋, 헤인연맹 내에서도 결합 가능한 종족이 있고 불가능한 종족이 있는 것이다. 유배 행성의 원주민과 지구인은 우연히 결합 가능한 종족이었던 것. 그러므로 싱은 환영의 도시 이후 도태되었다.(멸종? 아, 불쌍해) 어둠의 왼손에 나오는 겐리 아이의 부모는 싱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우연히 결합이 불가능한 종족끼리 만난 것. 결합이 불가능한 종족끼리의 결혼에서는 어느 한 쪽의 종족에서 양자를 구하는 관습이 있다고 하니, 이런 종족이 드물지도 않은 모양. 젠장, 싱이 불쌍하지만 이쪽이 더 타당성이 있는 것 같다.
다시 생각해도 싱은 정말 불쌍하다. 진실만이 진정한 무기가 된다는 것이, 정말로 삶의 진리인 것을 그들은 왜 몰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