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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은 속삭인다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1월
평점 :
이번에도 상처받은 소년이 주인공이다.(모방범을 생각하라) 미야베 미유키는 아무래도 그런 일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범죄 그자체보다는 범죄,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이 어떠한 영향을 받고 또 어떻게 그 영향을 극복해가는지, 그런 것에 대해 세세하게 그리려 하는 것 같다. 공금횡령후 사라져 버린 아버지, 어른들로부터 시작된 극단적인 따돌림을 견뎌내면서 아이는 성장해갔다. 그 아이가 어떻게 그런 일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어쩜 이렇게 굳건하고 바르게 반짝거리는 아이로 자라날 수 있었을까. 너무나 눈부셔서, 나는 문득 그 아이를 괴롭히던 학급 패거리의 마음을 알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그런 일을 겪고도 그렇게 눈부실 수 있니, 나는 네가 질투나. 이런 마음이겠지.
하지만 이런 아이, 이런 눈부셔 보이는 아이의 마음에도 어둠이 있다. 아버지를 죽인 사내에게 살의를 품고, 죽이려했다. 죄인을 용서치 못하고 자기 손으로 그를 구렁텅이로 밀어넣고 싶어하는 음습한 마음, 최면으로 다른 사람의 잠궈진 마음을 멋대로 열어버리는 것과, 꽁꽁 잠궈진 문을 멋대로 따버리는 것은 어찌보면 비슷한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의식, 누군가의 숨기고 싶은 것을 멋대로 꺼내볼 수 있다는 것, 우위에 서있다는 의식... 소년과 범인사이에 있던 공통점. 아주 가느다란 경계선을 두고, 종이의 앞뒷면처럼 그들은 공존한다. 소년은 그 선을 넘어갈 수 있었다. 범인은 이미 넘어가버렸다. 그 선은 인간적인 면이랄까. 자기 자신의 부족함, 자기에게 남을 심판하고 조종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는가 아닌가, 하는 부분이 달랐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뭐 그래도 소년 또한 어느 정도 그런 힘을 써버린 것만은 틀림 없다. 그래서 왠지 좀 씁쓸했다. 미야베 미유키 소설인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