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위의 불길 1 - 휴고상 수상작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18
버너 빈지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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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은하는 중심부인 '무사고 심부' 를 축으로 3차원적인 '바깥쪽'을 향해 '무사고 심부', '저속권', '역외권', '초월계'의 네개의 권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 권역을 구분짓는 가장 큰 물리적 성질은 빛의 속도로 이는 기계의 기능성과 생물 신경세포의 전달 속도까지 규정하며 생물의 지능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즉 빛의 속도가 매우 느린 무사고 심부에서 저지능의 생물들만이 살 수 있으며 전자기기의 작동 불능으로 기계식 우주선만이 항행을 할 수 있는 바다의 심연에 가까운 곳이다. 무사고 심부를 도넛처럼 감싸고 있는 저속권은 빛의 속도를 넘어설 수 있는 수단이 전무한 곳으로 인류의 고향인 태양계도 이곳에 속한다. 우주선의 속도나 전자기기의 연산력이 빛의 속도를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점으로 인해 수많은 문명이 고립된 상태에서 흥망을 되풀이하는 곳이다. 더 바깥쪽의 역외권에서는 진정한 자의식을 가진 AI의 구현을 통해 초광속 비행, 초광속 통신, 반중력 장치 등의 하이테크놀로지가 가능한 곳이며 수많은 문명들이 활발히 교류하는 '스페이스 오페라'가 펼쳐지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은하계 맨 바깥쪽과 나선 팔 끄트머리의 초월계는 모든 생물과 기계의 활동 속도가 초월적으로 빨리지는 영역으로 역외권의 문명이 초월화를 통해 집단지성을 가진 행성 규모의 개체로 진화하는-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에서의 인류처럼', 말 그대로 신선들이 노니는 곳이다. 모든 역외권의 문명들은 궁극적으로 이 '신선'이 되고자 한다.

이상은 심연 위의 불길의 극히 일부분의-하지만 매우 중요한- 설정을 묘사한 것입니다. 고대의 사악한,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봉인된 신선의 부활과 이 신선의 은하계 침략, 단일 개체의 지능은 개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지만 이마와 어깨에 있는 판막 형태의 고막의 진동을 통해 고주파의 사고음의 끊임없는 상호교환을 통해 여러 개체의 뇌내 활동을 실시간으로 조율하고 연결함으로써 집단정신을 형성하는 군체생물, 몇십억년 전 해양생물에서 진화한 식물 형태의 지적 생물이며 항성간 교역업에 종사하는 스트로크라이더, 행성 크기의 안테나를 통해 텍스트 메시지를 송수신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은하계 내의 문명들과 이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항성간 통신 정보 회사 등 이 소설은 설정만으로도 소위 말해 '먹고 들어가는' 소설입니다. 다만 단점이라면 일전에 읽었던 부서진 대지 시리즈처럼 첫 권의 감동이 두번째 권에서는 다소 아쉬운 결말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럼에도 이번을 포함해 세번째 읽었을 만큼 SF소설로서의 재미는 충분하며 SF애호가들에게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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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1 : 국내편 퇴마록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그시절 남학생들의 필독서, 퇴마록을 다시 보다

오랜만에 리디북스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이벤트 란에 '퇴마록'이 보였습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1990년대만 해도 도서대여점이 흔했던 시절이었고, 저도 도서대여점을 참 많이 방문했었습니다. 만화도 많이 보았었지만 소설도 만화만큼 많이 빌려봤었는데, 퇴마록은 참 빌리기 힘든 소설 중 하나였습니다. 수 세트씩 구비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래도 여차여차 혼세편까지는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학점 따랴, 취업 준비하랴 나름 바쁘게 살던 때라 마지막 편인 말세편은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벌써 십수 년이 흘렀고, 그동안 퇴마록은 단일 시리즈로 국내에서 제일 많이 팔린 환타지 소설이 되어 있었네요. 그러나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다른 미디어믹스로는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었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1998년 동명의 제목으로 영화화된 퇴마록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원작의 팬인 저에게는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던 작품이었습니다. 이후에도 게임이나 웹툰으로로 나오긴 했는데,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원작자인 이우혁 작가가 아직도 의욕에 넘치는 만큼 아직은 미디어믹스로도 대박을 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보입니다.

국내에서의 장르 소설의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된 작품

정말로 유명한 작품이니만큼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그래도 이 작품이 초면이신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소개해 보자면, '귀신이나 주술로 고통받은 사람들을 초자연적인 힘으로 도와주는 퇴마사들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현암, 박신부, 준후, 승희 네 명으로 각자가 기구한 사연과 이력을 가진 영능력자들로, 각각 기공과 어검술(현암), 영적 오오라(박신부), 주술(준후), 고대신의 화신(승희)의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가 읽은 '국내편'의 첫 편인 '하늘이 불타던 날'에는 승희를 제외한 나머지 세명이 등장하는데, 주인공인 준후의 사연이 이야기의 주된 내용 중 하나입니다. 첫 에피소드 이후부터 이들은 함께 생활하게 되고 본격적으로 퇴마사로서 활동하게 됩니다. 중간 이후의 '초상화가 부르고 있다'에 등장한 승희까지 이들 일행에 합류하게 되면서 이름 없는 퇴마사 집단이 완성되게 됩니다. 국내편은 옴니버스 방식의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방식이며 분량은 짧게는 이십여 페이지에서 길게는 수백여 페이지까지 제각각입니다. 이 소설의 기원이 전문 작가가 아니었던 원작자 이우혁 씨가 PC통신에 심심풀이로 올리던 글이었다는 점을 보면 납득이 가는 부분입니다. 이영도 작가의 드래곤라자도 동일한 케이스였던 것을 보면, 역시 한국인들은 '판을 깔아줘'야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민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슈스케가 이후 알고 보니 전국에 노래 잘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는 사람들의 농담 섞인 말과도 일맥상통한 셈입니다.

중요한 것은 문장이 아니라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

아무튼, 퇴마록이 전문 작가가 쓴 글이 아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보이는 단점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비문과 문장력, 설정의 오류입니다. 처음 읽을 당시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맞춤법이나 문장의 오류, 문장력의 부족으로 인한 이야기의 부실한 전개가 눈에 뜨일 정도입니다. 거기에 이야기의 근간이 되는 여러 동서양의 신화와 전설 등을 차용함에 있어 치밀함이 부족함에 따른 설정의 오류나 지나친 국뽕(이른바 환빠 논란) 때문에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보아도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와 단순해 보이지만 명료하며 탁월한 서사구조로 인한 엄청난 몰입감이 이 소설이 가진 단점들을 모조리 씹어먹을만큼 대단하기 때문에, 마지막 장을 덮은 저는 어느새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치기 어린 학생 시절로 돌아가 현암의 엄청난 파괴력의 기공술과 준후의 휘황찬란한 주술이 악당들을 퇴치하고 박신부의 물리력까지 발휘하는 실드 겸 공격수단인 오오라가 악령들을 찢어버리고 승희가 자신에게 깃든 애염명왕의 힘으로 동료들에게 버프를 걸어주는 모습을 보여 열광하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읽을 다음 편인 세계편에는 또 어떤 이야기로 열광시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또한 꾸준히 다른 미디어믹스를 통해 퇴마록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우혁 작가에게도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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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런틴 워프 시리즈 4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 허블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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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출간되는 그렉 이건의 '쿼런틴'과 다른 소설들>

본서 '쿼런틴'은 국내 번역된 웬만한 SF소설은 거의 다 읽어 본, 나름 SF 애호가인 제가 지금까지 수차례 읽었을 정도로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입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인스타그램에 리뷰를 꼭 써보고 싶었던 소설인데 마침 이번에 허블에서 리뉴얼하여 출간하였습니다. 작가인 그렉 이건의 다른 출간 예정 작품들이 포함된 허블의 '워프'시리즈로 말입니다.

<'쿼런틴'의 스토리>

2034년 11월, 지구의 밤하늘에서 별들이 돌연 사라지게 됩니다. 이는 정체불명의 거대한 검은 구체인 '버블'이 태양계를 완전히 감싸 안았기 때문인데, 이를 기점으로 전 세계는 극단의 혼란과 폭력의 사태를 겪게 되었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 지구에 사는 이들은 버블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지구를 아득히 초월한 지적 문명이 만든 구조물인 버블에 의해 태양계 전체가 우주로부터 갇히게 된 것이라는 설명만 할 수 있을 뿐, 이것이 왜 태양계를 둘러싸고 있는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지구는 나노테크놀로지와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속칭 '모드'라고 하는 일종의 생체 컴퓨터 혹은 스마트폰의 역할을 하는 도구를 인간의 대뇌에 삽입하여 스스로의 능력과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전직 경찰로 현재는 사립 탐정으로 활동하고 있는 주인공 닉은 익명의 의뢰인의 부탁으로 엄중한 감시와 보안을 자랑하는 병원에서 돌연 사라져 버린 지적장애를 가진 여성 로라 앤드루스의 행방을 찾나 나서게 됩니다. 자신의 머리에 깔려 있는 여러 모드들-경찰용 정신 최적화 프로그램과 워크스테이션 급 컴퓨터 및 최신의 각종 모드들-을 활용해 단서를 찾아낸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의 신규 독립국가인 '뉴홍콩'에서부터 로라를 추적하게 시작합니다.

뉴홍콩에서의 탐사 끝에, 이 실종 사건이 'BDI(Biomedical Development International)'라고 하는 의학 기업과 연관되었다는 결론을 내린 닉은 BDI로 잠입을 시도하나, 첨단 장비와 모드로 무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BDI의 경호를 맡은 이들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마취에서 깨어난 그는 BDI의 배후라 할 수 있는 '앙상블'이라는 조직에게 충성을 강요하는 모드가 삽입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모드는 육화된 정신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는 아무런 생리학적/심리적 거부감을 갖지 않은 채 앙상블을 위해 일하게 됩니다. 잠입 능력을 인정받은 닉은 BDI에 스카웃되어 보안 요원으로 일하게 되었고, 수개월 후 ASR이라는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어 텔레키네시스로 추측되는 모드에 관한 모종의 임상 실험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 과학자 포콰이의 경호를 담당하게 됩니다...


<단 한 권의 소설에서 펼쳐지는 다양하고 매력적인 에피소드의 향연>

나름 요약을 하였지만 여기까지가 겨우 소설의 전반부인 1/3 지점입니다. 양자역학과 나노테크놀로지 등의 소설 속 첨단 과학기술과 버블에 갇힌 태양계라는 논리적 비약의 세계관에 익숙해지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약 400여 페이지라는 분량 대비 상당히 많은 이야기들이 빼곡히 들어가 있기 때문에 상당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어야 합니다. 단편 소설로서 완성도가 보장될 것이라 장담할 수 있는, 책을 다시 읽지 않고도 당장 떠올릴 수 있는 에피소드를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버블의 도래와 전지구적인 혼란, '모드'의 작동 원리와 다양한 '모드'의 시연, 혼란을 틈탄 '나락의 아이들'이라는 무차별적 테러 조직의 준동, '나락의 아이들'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주인공 닉의 고통과 고뇌, '앙상블'의 존재의 이유와 목적, 양자 역학의 근거한 '앙상블' 모드의 작동 원리, 최종 빌런이라 할 수 있는 '뤼'-닉이 가담한, 앙상블에 반하는 모임의 주도자-이 앙상블 모드를 탈취하려는 진짜 목적, 결말부에서의 앙상블 모드의 폭주로 인해 발생한 국지적인 확산의 역병....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이 에피소드의 중심에는 '불확정성의 원리로 대표되는 반직관적인 결론 때문에 현대 과학 문명 자체를 떠받치고 있는 이론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난해함과 신비로움의 너울을 완전히 벗지 못'하고 있는 '양자 역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쿼런틴'을 이 양자 역학의 관점에서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확률론적으로 전개되며 물질의 존재가 측정자의 주관적 관측에 의해 결정되는 양자 역학 기반의 세상에서, 인간이 자유 의지로 관측 결과(소설 내에서는 '수축'으로 표현함)를 선택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자 역학의 세계관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거의 유한한 미래의 순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수많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들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무한히 살리거나 죽일 수 있는, 슈퍼맨 이상의 엄청난 능력을 가진 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을 읽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소설의 해설의 말마따나 '대중 소설'인 쿼런틴의 읽기 위해 특별히 전문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그저 작가가 인도하는 대로 소설 속 닉과 포콰이의 대화를 잘 따라가기만 할 수 있다면 이야기를 즐기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것이며, '파격적인 사변을 전개'하며 이 과정에서 '황당무계할 정도로 거시적인 논리의 비약'과 '그것을 떠받쳐 주는 편집증적일 정도의 과학적 성실함'을 추구하는 그렉 이건의 글쓰기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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