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로빈후드 - 뉴욕에서 몬드라곤까지, 지구를 바꾸는 도시혁명가들 도시혁명 프로젝트 2
박용남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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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제12호 2014년9월호

[불온한 서재]

 

도시의 로빈후드/ 박용남 / 서해문집 / 20145/ 17,000

 

양솔규 기획조정실 국장

 

 

우리가 진보정당운동을 하고, 노동운동을 하고, 사회운동을 하는 이유는 우리의 을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우리 삶은 크게 일터삶터’, ‘일하는 시간노는 시간’, ‘돈벌이소비로 나눠진다. 오랫동안 우리 운동은 앞부분, 일터의 문제, ‘일하는 시간에 벌어지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행복’, ‘만족’, ‘자유와 관련한 것은 바로 뒷부분, 여가시간’, ‘삶터’, ‘소비’, ‘정주에서 찾는다. 물론 이러한 구분이 기계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한 사람의 삶은 당연히 총체적이고, 두 가지 부분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교통이 발달(?)하면서 일터와 삶터의 (물리적,심리적)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진 것이 도시의 비극일지도 모른다.

97, 비로소 대중적인진보정당운동이 시작되었다. 익숙한 시야와 습관 때문인지 몰라도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뭔가 쭈삣쭈삣거렸다. 지역 분회모임을 하면 뭘 해야 할지 몰라 서로 머뭇거렸다. 고참 노동조합운동 선배가 얘기하기를 기다리는데, 쟁쟁한 선배들도 주제가 겉돌고 헛기침만 할 뿐이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을 알리고자 하니 두려웠다. 방법도 잘 몰랐다. 마을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프로그램 리플렛을 가져와서는 주민들 속으로 들어갈지 말지 머뭇거렸다. 생전 안 나가던 반상회에 나가니 동네 사람들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고 이에 움츠려들었다.

초기 진보정당운동(민주노동당) 시절, 이렇게 쩔쩔 매고 막막해할 때 혜성처럼 등장한 책이 바로 박용남 선생의 꿈의 도시 꾸리찌바(2000)였다. 이 책은 해를 거듭하면서 필독서가 되었고, 이후 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2006), 꾸리찌바 에필로그(2011) 등으로 이어지면서 진보정당 활동가들과, 백화점식 시민운동을 탈피하고자 하는 시민운동가들의 갈증을 풀어줬던 것 같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막막함을 브라질 노동자당(PT)의 사례를 통해 해소했고, 지방선거와 자치에 대한 상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를 통해 깨달았으며, 우리 삶터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 꾸리찌바를 통해 상상할 수 있었다.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산별노조)과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모델이 초기 진보정당운동에 준거점이 되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브라질과 남미의 경험은 초기 민주노동당 활동가들, 특히 울산과 창원 등의 노동자 밀집 도시 민주노동당 활동가들에게 한번 해보자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신영복 선생의 경구를 빌어 보자면, 진보정당운동 초기의 역사는 박용남 선생의 책을 돌려보면서, 강의를 들으면서, 진보정당이 우리 지역을 어떻게 바꿀지, 무엇을 통해 바꿀지 머리에서 시작해 가슴으로 이해하기 위한 활동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발로 뛰며 지역을 일구고 씨를 뿌리는 활동을 했다. 물론 우리 진보정당운동은 빛나는 성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울산 북구와 동구, 창원의 경험에 대해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성적 평가가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지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튼튼하지는 않더라도 초기와는 달리 진보정당운동의 손길이 느껴지곤 한다. 지역주민들에 뿌리박은 진보정당 지방의원들의 활동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이 책에 소개되는 로빈 후드들의 빛나는 성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소수정당 의원으로서 의미있는 반대와 틈새 조례 제정은 눈물겨운 돌파의 흔적이다.

 

사진: 벨루오리존치의 민중식당, 보고타의 트랜스밀레니오

 

박용남 선생의 초기 저작들의 중심 모델이 브라질의 꾸리찌바였다면, 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2006)와 이번 책 도시의 로빈후드에서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도시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이다. 짧은 임기동안 획기적으로 보고타를 바꾼 로빈 후드엔리케 페냐로사전 시장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기존 상식과는 달리 경제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의 중요성, 어린이들의 안전과 보행자로서의 인간의 권리로 꽉 차 있다. 그의 이러한 생태교통에 입각한 도시계획은 세계 최고의 간선급행버스체계(BRT)인 트랜스밀레니오(TransMilenio)를 만들었고, 매년 2월 첫 번째 목요일을 차 없는 날로 선정해 세계 최대의 차 없는 도시실험을 만들었다. 여기에다 총연장 17km의 보행자 거리 알라메다 엘 뽀르베니르도 보고타의 명물이다.

박용남 선생의 저작들의 중심에는 생태교통이 있다. 그런데 이때 교통은 단순히 도시에 필요한 시스템 중 하나가 아니다. 교통은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구현하는 핵심 열쇠이다. 생태교통은 도시의 에너지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키고, 자동차의 속도와 통행량을 저감시킬 뿐만 아니라 도시의 사회적 관계를 재조정하는 기제이기도 하다. 자동차 이동량의 감소와 사회적 교류의 활성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브라질의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 벨루오리존치(Belo Horizonte)는 세계 최초로 식량권을 인정한 도시이다. ‘벨루오리존치는 기아 문제를 식량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빈곤과 결부된 식량 접근의 결여를 중심으로 바라보고 이의 원인을 시장의 실패때문으로 본다. PT당 소속 시장 파투루스 아나니아스 데 소자93년 시민식량권을 인정하고 시에 조달국을 설치했다. 이후 벨루오리존치는 시민들에게 민중식당(Restaurante Popular)’기초식량바구니’(22개 품목의 꾸러미)를 제공하고, ‘푸드뱅크영양실조 예방 및 퇴치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농산물 직거래 시스템과 로컬 푸드, 가격명세서 공지 시스템, 학교 텃밭 등 먹거리와 관련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정책을 펼친다.

이 책에는 그 밖에도 낙후된 브라질 북동부 포르탈레자 시에서 출발한 파우마스 은행(공동체 은행)과 지역화페 파우마의 사례(조아킴 데 멜로 창립자), 내생적 발전을 추구하는 일본 가나자와 시, 그리고 자동차 없는 도시를 위해 고속도로를 폐쇄하고, 공용자전거 벨리브를 도입했으며, 세느 강의 도로를 막고 해변(파리 플라주)을 만든 파리 시장 베르트랑 들라노에(사회당), 버려진 화물철도형 고가철도를 공원으로 만들어 새로운 랜드마크로 부상한 하이라인(High Line)의 사례, 공용자전거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자동차 없는 뉴욕을 위해 분투하는 뉴욕 교통국장 자넷 사딕-칸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실험들도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새롭게 뿌리내리고, 변형시키는 구체적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신영복 선생의 경구처럼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발로 이어지는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 구상과 실행의 통일, 아니 간단하게(실은 간단치 않은) 우리 모두의 노력이 켜켜이 쌓여야 할 것이다. 생각보다 가까이에 그런 활동가들이 있다. 에너지협동조합을 만들고, 동네 찻집을 운영하며, 지역 라디오방송국을 꾸려 나가는 이들 말이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구체적인 고민들은 이러한 활동가들과의 교류 속에서, 그리고 아래 추가로 소개하는 책들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더 읽을만한 책>

무상교통/ 김상철 / 이매진 / 20145/ 10,000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하승우 외 / 20145/ 13,000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 찰스 몽고메리 / 미디어 윌 / 20144/ 1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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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혁명 - 성 역할의 혁명, 고령화에 대응하는 복지국가의 도전
요스타 에스핑 안데르센 지음, 주은선 외 옮김 / 나눔의집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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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2014년 8월호


불완전한 여성 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복지국가의 도전!


양솔규 노동당 기획조정실 국장




끝나지 않은 혁명/ 요스타 에스핑-안데르센 / 나눔의집 / 20143/ 14,000


73, 다른 당 또는 당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다양한 결사들에 이어 노동당 내에도 드디어 사회민주주의 그룹이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이 출범 선언문에는 우리는 단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사회로부터 기본적인 삶을 보장 받는 보편적인 복지국가의 미래를 꿈꾼다……복지국가의 이상이 구현되는 날까지 노동당 사회민주주의 당원모임은 힘찬 전진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 선언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노동당 사회민주주의당원모임>의 출범 선언문에는 복지국가를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종목표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복지국가는 매우 특수한 세계사적 조건(예컨대 냉전) 하에서 형성된 체제이지만, 현실사회주의 몰락 이후 지금까지 현실성 있는 모델로 강력하게 제시되고 있다. 물론,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작정하고 따지고 들어가면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도 복잡하고 다양하며 명징하지 않은 혼돈 자체이기도 하다. 노동당 강령은 이와 관련해 복지국가라는 빛나는 성취에도 불구하고 이를 훼손하는 자본의 힘을 제압하는 데 실패한 사회민주주의의 한계 또한 극복 대상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 언급은 한편으로는 복지국가를 긍정적인 성과로 인정하는 것이기도 한데, 그렇다면 지금 현실에 맞게 복지국가를 뜯어 고쳐 개선된 복지국가를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또는 복지국가라는 역사적 성과와는 별개로 결과적으로 실패한 책임을 사회민주주의에게 묻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역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만만치 않은 반론이 계속되어 왔다.

 

세계는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구적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를 종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선진국들과 동아시아 국가들은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 출산률 저하, 이혼율 상승, 노동력 부족이라는 인구학적 과제들에 직면해 있다. 자본의 힘을 제압하는 것과 함께 이러한 중차대한 과제들을 함께 해결하지 않고서는 장밋빛 미래는 없다.

 

덴마크 출신의 사회학자 요스타 에스핑-안데르센(Gøsta Esping-Andersen)1990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복지국가의 유형을 탈상품화의 기준과 복지국가 정책에 따라 자유주의 유형(미국 등), 보수주의-조합주의 유형(독일,프랑스 등), 사회민주주의 유형(북유럽 스칸디나비아)으로 분류한 바 있다. 탈상품화는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도 기본적인 복지를 충족할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복지국가에도 상당한 균열과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에스핑 안데르센은 이른바 영미형 수렴론을 경험적으로 반박한다.

이 책 끝나지 않은 혁명은 에스핑 안데르센의 최신작으로서 여성의 역할과 가족의 변화, 이에 대한 복지국가의 대응을 다룬다. 그는 이 책의 초점을 여성의 변화하는 지위이며 이러한 변화가 혁명적인 격동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증가하는 여성 노동시장 참여, 가정 내 노동 분담, 자녀에 대한 투자 등 성 평등적 균형이 형성 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 평등적 균형은 충분하지 않고 혁명은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미완의 혁명이다. ‘미완은 극심한 저출산, 가구소득의 양극화, 부모의 자녀투자에서의 양극화, 성별분업 및 젠더 평등의 양극화와 같은 부정적 결과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시민들 대다수는 매우 불안정한 균형 상태에 놓여 있고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들(최적 이하의 결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것은 바로 성 평등적 균형이 지배적인 규범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히 저소득, 저학력자들 사이에서의 성 평등화가 필요하다. 또한 복지국가의 혁신, 성 평등적인 복지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가족정책이 여성혁명의 성숙을 가속화시킬 필요가있는 것이다. 특히 아동 돌봄과 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사회적 개입은 노년기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결국 노후보장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진다는 것이다. 에스핑-안데르센은 이를 연금 개혁은 아이들로부터 시작된다.’라는 정치 슬로건으로 집약한다. 양질의 돌봄과 교육 평등을 위한 복지국가의 개입이 세대 간 공평성과 세대 내 평등을 동시에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 내공이 집약되어 있는 잘 짜여진 퍼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쟁적인 구석이 없지 않다. 그가 주장하듯이 가족과 여성 역할의 변화가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거나 심화시킨다는(그는 그렇기에 미완의 여성혁명을 복지국가의 조력 속에서 더욱 밀어 붙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다소 도발적인 주장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의 반론이 없지 않을 듯하다. 그가 전제로 받아들이는 다니엘 벨 류의 탈산업사회론도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그가 최종적으로 제시하는 아동 돌봄과 교육에 대한 적극적 개입은 물론 정당하게 강조되어야 하지만 이것이 마치 해결의 유일한 키워드인 것처럼 강조되는 것이 적합한 것인지 검토가 필요하다.

물론, 그가 얘기하듯 지체된 국가 대한민국의 복지 수준을 상기해보면 이들의 이론적 검토와 정책적 실천이 부럽기만 하다. 예컨대 그는 대규모의 이민이 발생했을 때, 이민 자녀들에게 집중적인 교육지원을 하는 스웨덴에서조차도, “이민 자녀의 학업 실패 가능성은 자국민의 5배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 이민 가족 또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의 학업 실패 가능성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지 않을까?

요스타 에스핑 안데르센은 다른 북유럽의 저명한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복지국가론이든, 자본주의 국가론이든, 사회사상이든 영미의 학자들에 의존하는 지적 풍토 속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평가받지 못했다. 그의 역작인 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역시 16~17년이 지나서야 번역이 되었다. 그나마 번역이라도 된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첨언하자면 이 책을 번역한 주은선, 김영미 교수는 북유럽의 복지국가를 다룬 노르딕 모델(삼천리), 가이 스탠딩, E.O.라이트, 빠레이스 등의 기본소득논쟁을 다룬 분배의 재구성등 중요한 저작들을 공동 번역했다. 정말 판매가 가능한 지 모를 정도로 척박한 사회복지 분야의 최근의 논의들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는 역자들의 노고 역시 정당하게 평가받았으면 좋겠다. 진보진영 내에서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론자들의 공세(?)가 약간 주춤한 듯도 한데, 에스핑 안데르센의 저서를 통해 보다 더 실천적인 논의가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노동당은 자극이 필요하다.

 

 

<더 읽을만한 책>

변화하는 복지국가/고스타 에스핑 앤더슨 / 인간과복지 / 19998/ 12,000

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 요스타 에스핑 안데르센 / 일신사 / 20067/ 20,000

복지체제의 위기와 대응 / G. 에스핑앤더슨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71/ 20,000

복지국가론 개정2 / 성경륭, 김태성 / 나남출판 / 20143/ 28,000(복지국가론을 공부할 때 가장 기초적으로 봐야 할 개론서이다.)

 

어떤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은가?- 대한민국 복지국가 논쟁/ 이창곤 / / 201011/ 15,000(한국 복지국가 성격논쟁 1, 2(인간과복지) 이후 최근의 논의를 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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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 - 자유사회주의와 중국의 미래 현대중국의 중국의 사상과 이론 2
추이즈위안 지음, 김진공 옮김 / 돌베개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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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제8호 2014년4월호

 

중국 신좌파의 불안한 모험?

양솔규 기획조정실 국장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 추이즈위안 / 돌베개 / 20142/ 12,000

 

얼마 전 영국의 좌파저널 <뉴레프트리뷰>에 실린 인터뷰를 모은 책 좌파로 살다(사계절)가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끈 것은 60여년 동안 발행되는 이 저명한 잡지의 수많은 인터뷰 중 <뉴레프트리뷰> 편집부가 누구의 인터뷰를 선별해 실었고, 어떻게 배치했는지였다. 16개의 인터뷰 중 제4부에서는 21세기 비서구 좌파의 사유를 다루었는데 주앙 페드루 스테딜레(브라질 MST)와 아사다 아키라(일본), 그리고 중국의 대표적인 신좌파인 왕후이(汪暉)의 인터뷰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인터뷰는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를 유작으로 남기고 2009년 세상을 떠난 조반니 아리기였다. 이러한 선별과 배치는 20세기와 21세기 초입을 거치면서 전지구적으로 분포된 좌파의 확장을 보여줌과 동시에 중국에 대한 서구 신좌파들의 관심을 보여준다.

추이즈위안(崔之元, 1963년생)은 왕후이(1959년생)와 동년배로서 이 둘은 중국 신좌파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왕후이가 루쉰 연구가로서 인문학적 신좌파를 대표한다면, 추이즈위안은 정치(경제학)학자로서 제도적 신좌파를 대표한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그는 신좌파 중에서도 가장 실천적으로 충칭모델의 성립에 가담했다. (지난 미래에서 온 편지2호에 소개했던 책 중국을 인터뷰하다(창비)에는 추이즈위안의 인터뷰와 중국 신좌파들의 최근 경향에 이론적 영감을 준 자유주의자 야오양, 그리고 이들을 비판하는 첸리췬의 인터뷰를 볼 수 있다.) 이번에 나온 추이즈위안의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은 바로 그 충칭모델의 이론적 자원에 대한 저서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실험은 계속된다

2012년 충칭 당서기 보시라이는 대륙 권력의 핵심인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되기 직전 역풍을 맞고 추락했다. 이로서 중국 신좌파의 충칭실험이 끝난 게 아닌가, 광둥모델의 대항마는 사라진 게 아닌가라는 세간의 평이 존재했다. 그러나 추이즈위안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보시라이와 더불어 충칭모델의 또다른 핵심 주체였던 충칭시 시장이었던 황치판이 중국공산당 183중전회에서 개혁방안의 초안을 작성할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정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는 과연 무엇일까? 추이즈위안에 따르면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의 경제적 목표는 개혁과 기존 금융시장 체제의 전환을 통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하는 것이며, 정치적 목표는 경제적 민주주의정치적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것이다.

추이즈위안을 비롯한 중국의 신좌파들은 (금융) 자본 위주의 경제질서에 매우 부정적이며 이러한 질서를 확립한 서구 보편주의에 부정적이다. 이러한 관점에 따를 경우 제3세계의 다양성과 역량을 사상시킨다. 그렇다고 대척점에 서 있는 문화상대주의자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신좌파들은 양자를 초월하기 위한 관건은 제도의 창조적 혁신이라고 보고 있다. 추이즈위안이 보기에는 이러한 혁신의 총합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또는 자유사회주의이다.

그는 국가소유도 아니고 개인소유도 아닌 중국 농촌의 토지 집단소유가 푸루동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이는 자본주의 대농장이 소농을 모두 잡아먹기를 기다리던카우츠키와 독일 사회민주당과는 다른 중국적 실천이었다는 것이다. 추이즈위안에게 강력한 영감을 준 이론가 중 하나는 제임스 미드이다. 미드의 노자합자기업사회적 배당’(기본소득과 연결되는 개념)을 근거로 추이즈위안은 중국의 주식합자제도가 사회적 배당으로 나아가는 실험을 기대한다.

이러한 추이즈위안의 제도적 설계의 이면에는 사상적 전제가 있다. 바로 자본주의시장경제와 같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반시장적성격을 지녔다는 것이다.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이를 대표하는 이론가는 프랑스 아날학파의 창시자인 페르낭 브로델이다. 이 지점에서 브로델-월러스틴-아리기의 사상적 계보가 중국의 신좌파들로 연결되고 있다.

 

신좌파, 공산당의 이데올로그인가?

최근 한국 지식계에서도 오랜만에 중요한 논쟁이 벌어졌다. 논쟁의 중심에는 연세대 조경란 HK 연구교수가 낸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글항아리)가 있다. 조경란 교수는 이 책을 통해 2000년대 후반, 정확히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중국 경제의 성공(이른바 중국 굴기(崛起)’) 이후 왕후이를 비롯한 중국 신좌파들은 더 이상 비판적 지식인도 아니고 국제주의자도 아니라고 비판한다. 중국 신좌파들은 자본에는 비판적일지언정 국가에는 침묵하면서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그가 되었다는 것이다. 왕후이는 2000, “세계 체계의 힘에 주목하고 그 힘에 대항하는 세계적 규모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지만 최근에 와서는 시진핑이 얘기하는 중국몽(中國夢)을 두둔하면서 세계질서 속에서의 중국의 위상 재고, 미국을 넘어서기 위한 전략, 중국모델론, 소프트파워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경란 교수의 이러한 신좌파 비판에 대해 신좌파에 대해서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일당체제가 체제의 출발점인 사회에 대해 서구적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 아닌가등의 반비판이 존재한다.

하지만, 왕후이와 더불어 중국의 대표적인 루쉰 연구가이자, 신좌파에 대해 관대했던 첸리췬의 중국 신좌파에 대한 비판적인 물음을 들어보면 중국 신좌파의 위상과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공산당이 정말로 자기조정의 기제를 가지고 있는가? 중국의 농민은 진정 사회적 주체성을 지니는가? 중국의 당과 정부는 진정 중성적(中性的)이어서 이익집단과 분리되어 있는가?”

예컨대 신좌파들은 야오양의 중성정부(中性政府)’ 이론을 받아들이면서 중국 정부(혹은 중국 공산당)특정한 이익집단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계급이익을 대변한다고 보는데, 이거야말로 국가에 포섭된 지식인의 대표적인 모습 아닌가?

중국 신좌파들이 국가주의화 되면서 이들의 관심은 중국모델론으로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중국모델론은 서구 신좌파들의 관심사와 맞닿아 있다. 바로 미국을 넘어서기 위한 현실 가능한 경로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 말이다. 중국모델론은 미국 중심 체제, 신자유주의 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지만, 또다른 한편으로는 모델로의 정합성과 현실성을 기준으로 지적 자원이 배치되면서 상상력을 제한하고 협소해질 수 있다. 또한 중국 공산당 체제를 옹호해주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다는 비판 역시 주목해서 봐야 한다. 설사 그러한 대안적 중국모델이 성립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서구 중심주의와 마찬가지로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자유주의 좌파로 분류되는 첸리췬의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재구성이 신좌파보다 더욱 좌파스럽게, 더욱 급진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물론 복잡한 대륙의 사상적 지형을 온전히 따라잡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곳으로, 보다 넓은 시야로 옮겨가야 하지만 말이다.

 

<더 읽을만한 책>

중국에서 좌파로 산다는 것/ 좌파로 살다/ 뉴레프트리뷰 엮음 / 사계절 / 20142/ 35,000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 조경란 / 글항아리 / 201310/ 18,000

중국을 인터뷰하다/ 이창휘·박민희 엮음 / 창비 / 20138/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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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장석준 지음 / 개마고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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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제7호 2014년3월호

 

 

지구적 좌파정치의 르네상스를 위한 프리즘

양솔규 기획조정실 국장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장석준 / 개마고원 / 20141/ 15,000

 

19891230KBS 명화극장에서는 낯선 영화 한편이 방영되었다. 칠레 인민연합 아옌데 정권의 등장과 미국 CIA의 사주로 벌어진 피노체트 군사 쿠데타를 다룬 영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가 그것이다. 아무리 87년 민주화 이후였다 하더라도 엄연히 군부독재의 주역 중 한 명인 노태우가 집권한 시기에 이런 영화가 공중파로 상영되는 거 자체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에피소드의 주역은 패기 넘치게 기습 편성해 내보낸 KBS 노동조합이었다. 바로 다음날인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국회에서 면피성대국민 사과 연설을 하던 전두환이 초선 국회의원이던 노무현이 던진 명패에 맞을 뻔한 수모를 겪었다. 명화극장 기습 상영은 광주학살 원흉전두환의 퇴장에 KBS 언론노동자들이 보내는 찬사이자 그간 군부독재의 언론통제 협조에 대한 일종의 반성문이었다. 미국의 개입, 군사독재, 민간인 학살 등 한국 현대사와 겹치는 상황 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기도 했지만, 이 영화는 바다 건너 운동 세력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 하던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한 잔의 샘물이었다.

 

박정희 18년 독재와 전두환 정권 7년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세력과 좌파세력에게 암흑의 시기였다. 단지 폭압과 착취 때문만이 아니다. 한국의 군사독재는 다른 여타 군사독재정권과 마찬가지로 해외의 모든 정보를 통제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우편물은 검열을 거쳤다. 좌파 서적 비슷한 거를 국내에 반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오죽하면 막스 베버(Max Weber)와 마르쿠제(Marcuse)의 책을 들고 다니다가 경찰서에 끌려갔다는 우스갯소리까지 회자되겠는가? 국민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정권이 선별해 제공하는 정보 밖에는 없었다. 외신이라고 해봤자 미국, 일본의 통신사와 언론사 외에는 없었다. 시각은 좁아지고 시력은 떨어졌다. 보통 사람들에게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전국민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진 것도 8911일 이후에나 가능했다. 그 이전 시기에 여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으로 여겼다. 해외 사람들과 손에손잡고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장소는 잠실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으로 한정되어 있던 것이다. 그나마 한국을 알고 있는 소수의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아프리카 변방에 있는 독재정권과 비슷한 나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은둔의 나라, 폐쇄적 공화국은 한반도 북쪽 뿐만이 아니라 남쪽도 마찬가지였다.

 

한반도 남쪽으로 좁혀진 시야와 시력은 조정되어야 했다. 그러나 민주화가 시작된 이후에도 여전히 이러한 한계는 극복되기 어려웠다. 주체사상과 정통맑스 레닌주의는 한반도 남쪽의 변혁을 꿈꾸는 사람들의 시각을 옭아맸다. 어쩌면 진정한 조정의 계기는 87년 민주화 뿐만 아니라 911231, 소련의 해체 이후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소련과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는 한국의 좌파들에게(또한 전 세계 좌파들에게) 저주이면서 동시에 축복이었다. 90년대가 사상적으로 혼돈의 시기였는지는 몰라도, ‘조정은 늘 혼돈을 동반하기 마련 아닌가.

계기는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좌파들의 현재성에 대해 그러나 우리는 많이 알지 못했다. 브라질노동자당(PT)의 활약상이 소개되고, 만델라의 석방과 ANC의 집권을 뉴스를 통해 접하긴 했지만 말이다. 장석준은 이러한 정보불균형정보비대칭의 시대에 세계 좌파정당의 동향에 대해 일찍부터 소개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장석준과 일군의 젊은 활동가들은 <카피레프트 모임>을 결성하고 외국의 좌파저널 중 논쟁적인 글들을 번역해 읽을꺼리라는 자료집으로 묶어 냈는데, 읽을꺼리5호는 세계 진보정당의 이념/구조/운동이 주제였다.(http://copyle.jinbo.net에 가면 당시 카피레프트모임의 읽을꺼리를 다운받을 수 있다.) 이 자료집은 민주노동당 창당 일정을 염두에 둔 것이었는데, 이후 만들어진 민주노동당 기관지 이론과실천에 장석준은 역사 속의 진보정당들등의 코너를 통해 꾸준히 세계 좌파정당들의 동향을 소개해 왔다. 2005년 공공연맹에서 세계 진보정당 운동의 교훈과 한국 진보정당 운동의 과제라는 자료집을 냈는데, 그 중 상당수의 글이 장석준의 글이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좌파들의 힘이 약화되고, 우여곡절을 겪게 되면서 세계 좌파정당들의 공시적(共時的) 실천을 소개할만한 여유와 지면이 부족하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한겨레21>에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코너가 마련되었고, 여기에 실린 글을 묶어서 낸 게 바로 장석준의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이다.

새로운 세계 좌파정당 입문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는 이전의 좌파정당 동향 소개와는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지리적 초점의 이동이다. 글의 개수로만 보면, 30개의 글 중 16개가 유럽을 다룬 것으로, 여전히 서구중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변화가 눈에 띈다. 유럽 내에서도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그동안 주목받지 않았으나, 유로존의 위기 한가운데 있는 남유럽 국가들의 좌파들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또한, 아이슬란드나 러시아, 덴마크 등 새로운 좌파가 부상에 주목한다. 심지어 스웨덴,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이른바 사민주의의 선도국가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수 좌파들의 약진과 재구성에도 주목한다.

 

이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아프리카와 중동 등 아랍의 봄의 핵심 지역과 인도에서 독재와 근본주의 모두에 반대하며 부상하고 있는 세속 좌파들에 대한 분석, 그리고 좌파연대를 통해 지구적 반신자유주의 중심으로 부상한 남미의 베네수엘라, 브라질, 우루과이, 칠레 등에 대한 분석 등이다. 이러한 지리적 초점의 이동의 이면에는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생-청년 세대의 불만의 표출과, ‘아랍의 봄’, ‘남유럽 점거운동등 새로운 공세적 거리정치의 등장이 있다.

장석준은 에필로그를 통해 한국 진보좌파정치도 세계 좌파정치와 마찬가지로 기나긴 재구성의 과정에 놓여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한국 정치가 마주했던 결정적 계기들을 짚는다. 예를 들면 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진보좌파의 독자적 정치구심 결성 여부가 이후 브라질과 한국의 진보좌파 정치의 경로를 좌우했다는 것이다. 또한 남아공과 한국 모두 민주화 과정과 신자유주의 시기가 중첩되면서 자본 독재와 겹쳐진 민주주의가 결국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기회들은 존재했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새로운 대안 제시를 통해 명실상부한 제3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2007년 대선시기와, 2011년의 글로벌 점령 운동의 설익은 한국판 버전이었던 2008년 촛불항쟁이 그러했다. 그러나 진보좌파정치는 민주대연합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남은 것은 새 출발이다. 그러나 새 출발은 재건복원과는 다르다. ‘단절이 전제되어야 한다. 장석준은 단절의 과제로 자유주의 세력 중심의 연합 흐름과의 단절’, 그리고 주체사상과의 단절을 주장한다. 단절 뒤에는 좌파정치의 철저한 실험과 개척, 정비를 통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단언한다. 조바심은 금물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련의 시간이지 시간 단축이 아니다. 현재를 비관하되 미래를 비관하지 말자. 기나긴 시간 지평 속에서, 지구적 시야를 통해 자본주의 문명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사유를 가지고 실천하자. 바로 지구 곳곳에서 우리 동료들이 그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더 읽을만한 책과 자료>

 

위기 반란 대안 1,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엮음, 책세상, 20131, 12,800

유럽의 경제위기와 정치 변동 : 남유럽을 중심으로, 김종법, 내일을 여는 역사47(20126)

북아프리카 민주화운동의 성격과 전망, 엄한진, 비판사회학회, 경제와사회90(2011년여름)

유럽통합의 모순과 재정위기의 정치경제, 박상현, 비판사회학회, 경제와사회97(2013년봄)

라틴아메리카의 중도좌파 붐, 이성형, 역사비평사, 역사비평96(2011년여름)

라틴아메리카: ‘종속배제에서 해방의 혁명으로, 안태환, 문화과학사, 문화과학67(2011년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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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비타 악티바 : 개념사 28
장석준 지음 / 책세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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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2014년1월 신년호

 

 

사회주의-역사 속 가능성의 퍼즐 맞추기

 

양솔규 노동당 기획조정실 국장

 

사회주의/ 장석준 / 책세상 / 201311/ 9,500

 

퍼즐을 맞춰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행의 우여곡절을 경험해봤을 것이다. 수없이 되풀이되는 선택과 실수 속에서 끊임없이 과거로 회귀하고 마는 속수무책의 과정을 반복하다가도 어느 순간 실마리를 잡으면 순식간에 진도를 빼기도 한다. 이러한 우연한 발견의 쾌감, 그리고 잘못된 선택 속에서 어렴풋이 드러나는 정합의 실루엣이 퍼즐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단순한 퍼즐조차도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할진대 우리가 마주하는 역사라는 저 도저한 흐름 안에는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응축되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역사의 방향은 어떤 선택과정을 통해 채택되는가? 단지 우리에게 경로의존성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조건에 구속된(것으로 상정되는) 현재의 선택을 단순하게 승인하는 역할만 부여되는 게 아니라면, 우리는 역사 속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고, 채택하며, 실현해야만 할까?

노동당은 지난 623일 정기당대회를 통해 강령을 채택했다. 강령 <노동당 선언>에 따르면 노동당은 생태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 소수자 운동과 결합된 사회주의를 천명하고, “평등·생태·평화 공화국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강령에서 말하는 사회주의가 어떤 역사적 경험과 지적 반성을 거쳐서 도출된 개념인지, 80~90년대 수없이 외쳤던 슬로건으로서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고 같은지 짧은 당 강령만으로는 알기 어렵다. 말하자면 강령 형성의 이해 수준은 울퉁불퉁하기에 복기 과정은 공평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노동당 강령 작성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 중 하나인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의 지적 작업을 들여다봄으로써 당 강령 형성의 맥락에 한발 다가갈 수 있다. 장석준 부대표는 올해 여름 <적록서재>(뿌리와이파리)를 통해 자신의 지적 행보를 일별한 바 있다. 그리고 11월 마지막 날, 자신의 지적 자원을 <사회주의>라는 하나의 개념을 통해 버무렸다.

그러나 개념을 정리하는 작업은 수많은 논쟁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이견(異見) 없는 개념이란 없다. 언어적 개념이 지칭하는 역사적 내용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개념은 정의의 대상이기 이전에 무엇보다 해석의 대상이다. 해석에는 왕도가 없으며, 정통도 없다. ‘정통을 뒷받침하는 권위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적 개념을 단단한 실재로 바라보기보다는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품은 언어적 구성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일베가 받아들이는 민주화의 개념과, 이른바 386 세대가 받아들이는 민주화의 개념이 다르며, 19세기의 사회민주주의20세기 후반 사회민주주의는 다른 파장과 깊이를 간직하고 있듯이 말이다.

 

장석준은 170여 쪽에 불과한 짤막한 입문서를 통해 사회주의 운동의 중간결산을 시도한다. 프랑스 혁명과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문명을 대체할 수 있는 운동으로 사회주의를 발견(?)했다. 당시의 사회주의란 E.O.라이트의 표현대로 하자면 사회중심 사회주의였다.

당시의 사회는 그러나 자본주도의 문명이 아직 만개한 사회는 아니었다. 따라서 사회주의 문명 탐색은 자본주의 문명 이후에나 가능한 시계열적 연속선상에 있지 않았고, ‘자본주의 문명대신에 선택 가능한 근대 문명의 또 다른 길이었다.

그러나 이후 사회주의의 종합을 시도한 맑스와 엥겔스의 시대는 자본주의 대승리의 시대였다. 증대하는 사회적 생산력은 불평등의 원천이 아니라 해방의 힘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맑스, 엥겔스의 사상은 정통 마르크스주의로 정리되었고, 역사유물론은 사회주의를 자본주의의 운명에 결박시켰다. 1917년 혁명을 통해 등장한 국가사회주의에게 사회주의란 자본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궁극적 성취에 이르러야 하는 체제가 되었다.

 

물론 맑스에게 그러한 혐의를 과도하게 소급해 씌울 필요는 없다. 초기 사회주의자들이 그러했듯이 맑스에게도 사회주의에서의 사회가 어떤 형식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는 하나의 과제였다.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를 대체하는 협동조합적 생산을 코뮌주의의 구성요소로 제시하기도 했다. 맑스 뿐만이 아니다. 레닌도 말년에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과제는 주민을 협동조합 결사체로 조직하는 것뿐이라고 일갈했다. 그람시의 평의회 운동 역시 자본을 대체할 사회적 실체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국가 = 사회라는 공식은 도그마일 뿐이다. 장석준은 전통적 맑스주의자들의 입을 빌러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발전을 계승하는 운동이 아니라 자본주의 근대 문명 전체의 치유전환그리고 새 출발을 위한 프로젝트라고 정식화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실체들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지구적 생태위기가 단지 자본주의만이 아니라 인류문명 자체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는 지금, ‘사회(주의)’의 목표는 경제적 성장이 아니라 사회적, 생태적 합리성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멈퍼드와 일리치의 역동적 균형’(멈퍼드)다중 균형’(일리치)이 사회주의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목표에 풍부한 거름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중심) 사회주의를 실체화하고, 새로운 문명을 추구할 주체는 누구인가? 저자는 현실의 노동자 계급을 자동적으로해방의 주체로 상정할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맑스가 프롤레타리아를 해방의 주체로 바라본 까닭은 기존 사회의 이해관계로부터 떨어져 있는 거리에서 비롯되는 자유’” 때문이지, 생산력 증대를 담지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결박당한 노동자계급이 아니었다. 체제에 결박당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중들 스스로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기로 결단하는 것이 필요하며, 결단을 실천할 주체가 없다면 발명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정치적 과제라는 것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쿠바혁명, 차베스를 비롯한 남미 사회주의의 새로운 모색 등 사회주의 운동 속에서 국가사회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운동들에 대한 검토, 자본주의 내에서의 급진적 변화를 추구한 스웨덴 임노동자기금 모델, 영국과 프랑스 등의 구조개혁 노선에 대한 검토, 앙드레 고르, G.D.H.콜 등 수많은 현대 사회사상가들의 상상력 충만한 이론들에 대한 검토는 사회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재구성하기 위한 재료였다. 사회주의 역사를 다시 반추하면서 실현되지 못한 가능성들을 환기하는 것, 가능성을 조각모음 해 새로운 퍼즐로 조합하는 것은 사회주의 운동의 새 출발에 필수적이다.

 

개념은 무엇보다 해석의 대상이며, 언어적 구성물이라고 앞서 말한 바 있다. 말하자면 개개인들이 간직하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다양한 사유들, 검토 가능한 모든 역사적 운동들을 가지고 우리는 더 많은 사회주의 퍼즐 조합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자본주의 문명을 극복하려는 사회주의 문명의 등장에는 더 많은 자양분이 필요할 것이다. 노동당 강령도, 사회주의라는 역사적 개념도 더 많은 해석과 논의, 그리고 실천을 필요로 한다. 도약하자! 그리고 사유하자!

 

<더 읽을만한 책>

거대한 전환/ 칼 폴라니 / / 2009/ 38,000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생각의나무 / 앙드레 고르 / 2011/ 15,000

적록서재/ 장석준 / 뿌리와이파리 / 2013/ 1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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