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로빈후드 - 뉴욕에서 몬드라곤까지, 지구를 바꾸는 도시혁명가들 도시혁명 프로젝트 2
박용남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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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제12호 2014년9월호

[불온한 서재]

 

도시의 로빈후드/ 박용남 / 서해문집 / 20145/ 17,000

 

양솔규 기획조정실 국장

 

 

우리가 진보정당운동을 하고, 노동운동을 하고, 사회운동을 하는 이유는 우리의 을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우리 삶은 크게 일터삶터’, ‘일하는 시간노는 시간’, ‘돈벌이소비로 나눠진다. 오랫동안 우리 운동은 앞부분, 일터의 문제, ‘일하는 시간에 벌어지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행복’, ‘만족’, ‘자유와 관련한 것은 바로 뒷부분, 여가시간’, ‘삶터’, ‘소비’, ‘정주에서 찾는다. 물론 이러한 구분이 기계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한 사람의 삶은 당연히 총체적이고, 두 가지 부분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교통이 발달(?)하면서 일터와 삶터의 (물리적,심리적)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진 것이 도시의 비극일지도 모른다.

97, 비로소 대중적인진보정당운동이 시작되었다. 익숙한 시야와 습관 때문인지 몰라도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뭔가 쭈삣쭈삣거렸다. 지역 분회모임을 하면 뭘 해야 할지 몰라 서로 머뭇거렸다. 고참 노동조합운동 선배가 얘기하기를 기다리는데, 쟁쟁한 선배들도 주제가 겉돌고 헛기침만 할 뿐이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을 알리고자 하니 두려웠다. 방법도 잘 몰랐다. 마을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프로그램 리플렛을 가져와서는 주민들 속으로 들어갈지 말지 머뭇거렸다. 생전 안 나가던 반상회에 나가니 동네 사람들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고 이에 움츠려들었다.

초기 진보정당운동(민주노동당) 시절, 이렇게 쩔쩔 매고 막막해할 때 혜성처럼 등장한 책이 바로 박용남 선생의 꿈의 도시 꾸리찌바(2000)였다. 이 책은 해를 거듭하면서 필독서가 되었고, 이후 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2006), 꾸리찌바 에필로그(2011) 등으로 이어지면서 진보정당 활동가들과, 백화점식 시민운동을 탈피하고자 하는 시민운동가들의 갈증을 풀어줬던 것 같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막막함을 브라질 노동자당(PT)의 사례를 통해 해소했고, 지방선거와 자치에 대한 상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를 통해 깨달았으며, 우리 삶터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 꾸리찌바를 통해 상상할 수 있었다.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산별노조)과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모델이 초기 진보정당운동에 준거점이 되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브라질과 남미의 경험은 초기 민주노동당 활동가들, 특히 울산과 창원 등의 노동자 밀집 도시 민주노동당 활동가들에게 한번 해보자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신영복 선생의 경구를 빌어 보자면, 진보정당운동 초기의 역사는 박용남 선생의 책을 돌려보면서, 강의를 들으면서, 진보정당이 우리 지역을 어떻게 바꿀지, 무엇을 통해 바꿀지 머리에서 시작해 가슴으로 이해하기 위한 활동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발로 뛰며 지역을 일구고 씨를 뿌리는 활동을 했다. 물론 우리 진보정당운동은 빛나는 성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울산 북구와 동구, 창원의 경험에 대해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성적 평가가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지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튼튼하지는 않더라도 초기와는 달리 진보정당운동의 손길이 느껴지곤 한다. 지역주민들에 뿌리박은 진보정당 지방의원들의 활동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이 책에 소개되는 로빈 후드들의 빛나는 성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소수정당 의원으로서 의미있는 반대와 틈새 조례 제정은 눈물겨운 돌파의 흔적이다.

 

사진: 벨루오리존치의 민중식당, 보고타의 트랜스밀레니오

 

박용남 선생의 초기 저작들의 중심 모델이 브라질의 꾸리찌바였다면, 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2006)와 이번 책 도시의 로빈후드에서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도시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이다. 짧은 임기동안 획기적으로 보고타를 바꾼 로빈 후드엔리케 페냐로사전 시장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기존 상식과는 달리 경제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의 중요성, 어린이들의 안전과 보행자로서의 인간의 권리로 꽉 차 있다. 그의 이러한 생태교통에 입각한 도시계획은 세계 최고의 간선급행버스체계(BRT)인 트랜스밀레니오(TransMilenio)를 만들었고, 매년 2월 첫 번째 목요일을 차 없는 날로 선정해 세계 최대의 차 없는 도시실험을 만들었다. 여기에다 총연장 17km의 보행자 거리 알라메다 엘 뽀르베니르도 보고타의 명물이다.

박용남 선생의 저작들의 중심에는 생태교통이 있다. 그런데 이때 교통은 단순히 도시에 필요한 시스템 중 하나가 아니다. 교통은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구현하는 핵심 열쇠이다. 생태교통은 도시의 에너지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키고, 자동차의 속도와 통행량을 저감시킬 뿐만 아니라 도시의 사회적 관계를 재조정하는 기제이기도 하다. 자동차 이동량의 감소와 사회적 교류의 활성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브라질의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 벨루오리존치(Belo Horizonte)는 세계 최초로 식량권을 인정한 도시이다. ‘벨루오리존치는 기아 문제를 식량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빈곤과 결부된 식량 접근의 결여를 중심으로 바라보고 이의 원인을 시장의 실패때문으로 본다. PT당 소속 시장 파투루스 아나니아스 데 소자93년 시민식량권을 인정하고 시에 조달국을 설치했다. 이후 벨루오리존치는 시민들에게 민중식당(Restaurante Popular)’기초식량바구니’(22개 품목의 꾸러미)를 제공하고, ‘푸드뱅크영양실조 예방 및 퇴치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농산물 직거래 시스템과 로컬 푸드, 가격명세서 공지 시스템, 학교 텃밭 등 먹거리와 관련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정책을 펼친다.

이 책에는 그 밖에도 낙후된 브라질 북동부 포르탈레자 시에서 출발한 파우마스 은행(공동체 은행)과 지역화페 파우마의 사례(조아킴 데 멜로 창립자), 내생적 발전을 추구하는 일본 가나자와 시, 그리고 자동차 없는 도시를 위해 고속도로를 폐쇄하고, 공용자전거 벨리브를 도입했으며, 세느 강의 도로를 막고 해변(파리 플라주)을 만든 파리 시장 베르트랑 들라노에(사회당), 버려진 화물철도형 고가철도를 공원으로 만들어 새로운 랜드마크로 부상한 하이라인(High Line)의 사례, 공용자전거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자동차 없는 뉴욕을 위해 분투하는 뉴욕 교통국장 자넷 사딕-칸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실험들도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새롭게 뿌리내리고, 변형시키는 구체적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신영복 선생의 경구처럼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발로 이어지는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 구상과 실행의 통일, 아니 간단하게(실은 간단치 않은) 우리 모두의 노력이 켜켜이 쌓여야 할 것이다. 생각보다 가까이에 그런 활동가들이 있다. 에너지협동조합을 만들고, 동네 찻집을 운영하며, 지역 라디오방송국을 꾸려 나가는 이들 말이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구체적인 고민들은 이러한 활동가들과의 교류 속에서, 그리고 아래 추가로 소개하는 책들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더 읽을만한 책>

무상교통/ 김상철 / 이매진 / 20145/ 10,000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하승우 외 / 20145/ 13,000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 찰스 몽고메리 / 미디어 윌 / 20144/ 1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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